산으로 나무하러 간 마음씨 착한 노인이 목이 말라 옹달샘 물을 마셨더니 청년처럼 젊어졌다. 그는 할망구 아내에게도 그 샘물을 마시게 해 두 사람은 신혼부부가 됐다. 이웃 욕심쟁이 노인이 소문을 듣고 달려가 샘물을 마셨다. 하지만 배가 터지도록 마신 탓에 그만 갓난아기가 돼버렸다. 맘씨 착한 나무꾼 부부가 그 아기를 안고 내려와 아들로 키웠다.
누구나 들었음직한 한국 전래동화 ‘젊어지는 샘물’ 이야기다. 사실은 동화(童話)가 아니라 옹화(翁話)다. 다시 젊어지고 싶은 동서고금 모든 노인들의 심상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어서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회춘의 묘약이 실현될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깊은 산속 옹달샘물이 아니라 요즘 대부분의 노인들이 복용하고 있는 종합비타민과 비슷한 알약이다.
최근 미국 의약협회의 ‘내처 메디신’ 저널에 흥미 있는 연구보고서가 실렸다. 사람이 늙는 것을 자연현상으로 치부하지 않고 일종의 질병으로 간주, 특수한 약으로 노화세포를 암세포처럼 파괴하면 늙는 과정을 지연시키거나 중지시킬 수 있다는 이론(senolytic)이다. 따라서 이 약은 회춘의 묘약보다는 진시황이 백방으로 구했다는 불로장수 약에 더 가깝다.
명문병원 메이요 클리닉의 노인병 전문가 제임스 커클랜드 박사가 인간나이 75~90세에 해당하는 늙은 쥐들에게 다사티닙(백혈병 치료약)과 케르세틴(영양제) 성분을 섞어 5일간 먹인 결과 노화세포가 맥을 못춰 쥐의 수명이 대략 2개월(36%) 연장됐음이 밝혀졌다고 협회지에 보고했다. 쥐의 2개월 수명은 인간에겐 10년 이상에 해당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특히 이들 쥐는 연장된 수명동안 걸음걸이, 장악력, 매달리기 등에서 약을 먹지 않고 상대적으로 젊어서 죽은 쥐들만큼 건강한 상태였다고 했다. 커클랜드는 이 연구의 목적이 ‘회춘샘물’을 개발하거나 수명을 턱없이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노후를 건강하게 살다가 죽도록 돕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인의 인기 유행어 ‘구구팔팔이삼사’와 딱 들어맞는다.
오래 살고 싶은 사람들이 솔깃해할 연구결과가 또 하나 있다. 최근 이탈리아의 105세 이상 노인 3,836명을 조사한 통계학자들(의사들이 아니다)은 신이 허락한 수명을 인간이 다 채우지 못하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사망 위험성이 65세부터 매년 2배씩 늘어나다가 80세부터는 점차 줄어들기 시작하고, 105세 이후엔 아예 정지상태가 된다고 이들은 분석했다
그래서 ‘인생 100세 시대’라는 말도 구차하다. 지금까지의 최장수 기록은 122세다. 프랑스의 장 루이 칼멩 할머니가 세웠다. 세계적 장수국가인 일본엔 100세 이상 노인이 6만6,000여명을 헤아린다. 한국은 1만7,500여명이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 100세는 청춘이다. 유대인 조상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은 나이다. 아담의 7대손인 므두셀라는 969년을 향수했다.
노인인구는 어느 나라에서나 급속하게 늘어난다. 골골하는 노인들도 있지만 젊은이 뺨치는 노익장도 많다. 지난 12개월간 일한 경험이 있는 85세 이상 미국노인이 25만5,000여명이나 됐다. 미국역사상 최다기록이다. 횡단로 안내원 같은 자원봉사자들도 있지만 트럭 운전사 노인도 1,000~3,000명이나 됐다. 농장과 목장에서 일하는 노인들이 가장 많았다.
미국의 파이저 제약회사가 남성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를 개발해 떼돈을 번 후 전 세계 유수 제약회사들이 노화방지 약 개발에 올인하고 있다. 미국의 유니티 바이오텍 사는 가장 흔한 노인질환인 골관절염 약을 기초로 시제품 ‘UBX0101’을 개발했다. 유니티 사는 이 약이 노화세포를 제거할 잠재력을 갖춘 것으로 판단하고 곧 임상실험을 벌일 채비다.
하지만 ‘구구팔팔이삼사’ 시대가 도래했다며 즐거워할 건 아니다. ‘UBX0101’ 따위의 신약이 언제 시장에 나올지 모른다. 모든 신약의 판매가부 결정권을 가진 연방 식품의약청(FDA)이 노화를 치료 가능한 질병으로 판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노인들이 약을 기다릴게 아니라 당장 일어나 걷는 것이 상책이다. 장수는 약이 아닌 첫 발걸음으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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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시애틀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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