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척박한 환경에서만 만들어지는, 향신료와 음식의 요술 같은 맛에
▶ 이슬람 문화 선입견이 싹~ 천일야화보다 매혹적인 할랄의 맛
요르단 음식점 페트라에서 판매하는 요르단식 램찹과 라이스. 잇쎈틱 제공
페트라의 램 아라이스. 피타빵 위에 양고기를 잘게 다져 올려 오븐에 구워낸다. 잇쎈틱 제공
올인어컵의 치킨 삼부사와 팔라펠 삼부사. 우리나라 튀김 만두와 비슷한 모양으로 요거트 소스를 찍어 먹으면 부드러움이 배가된다. 잇쎈틱 제공
페트라의 치킨 파테. 치킨과 빵 조각 위에 하얀 요거트가 한 가득 뿌려져 나온다. 잇쎈틱 제공 요르단 음식점 페트라에서 판매하는 요르단식 램찹과 라이스. 잇쎈틱 제공
올인어컵의 치킨 만디. 바스마티 라이스에 위에 전통 오븐에 구운 닭고기를 올려 같이 먹는다 잇쎈틱 제공
삼부사를 찍어먹는 소스. 고수, 토마토, 양파, 고추가 들어가는 매콤한 소스다. 잇쎈틱 제공
TV에서 외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생전 저 음식을 먹어 볼 기회가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낯설게만 느껴졌던 음식이 있을 것이다.‘먼나라 이웃나라’라는 이원복 교수의 책이 있듯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교통의 발달로 먼 나라도 이제는 모두가 이웃인 시대다. 음식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깊게 그리고 가깝게 만들어주는 큰 힘을 갖고 있다. 관심이 없어 지나치던 음식도 입 안에서 황홀함을 느끼는 경험을 하는 순간 문화에 대한 선입견이 무장해제 될 것이다.
2,3년 전부터 한국에서 ‘할랄’이라는 말이 곳곳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한국에 인증마크가 제도화 되고, 또한 한류에 힘입어 아랍권에 우리나라 음식을 수출하기 위해서도 할랄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에게 할랄은 이슬람 종교를 믿는 사람만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자칫 흑백을 가르듯 터부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할랄은 이슬람 율법에 의해 무슬림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반면, 이슬람 율법으로 먹어서는 안되는 음식을 하람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돼지고기 같은 음식이다. 할랄음식은 무슬림도, 무슬림이 아닌 사람도 누구나 먹을 수 있다. 전세계에 18억명(세계인구의 24%)의 무슬림이 있다. 무슬림에게 이슬람은 종교이자 삶이고 문화이다. 할랄 음식도 각 나라의 환경에 따라 맛도, 만드는 방법도 너무나 다양해 알면 알수록 어릴 때 읽던 아라비안 나이트 동화같이 신비롭다.
특히 중동의 할랄음식에는 농지보다 사막이 많은 농사 짓기 척박한 자연 환경에서 만들어 내는 요술 같은 맛들이 숨어있다. 우리나라와 다른 환경에서 나는 향신료와 음식들은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에서 “열려라 참깨~!”를 외치며 동굴의 문이 열리듯, 이제껏 갖고 있던 선입견을 뒤로 하고 새로운 미각의 세계로 여러분을 안내할 것이다. 혀끝에서 녹아 내린 매력적인 맛은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된다.
이슬처럼 촉촉한 고기, 만디의 매력
2년 전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에 자리를 잡은 사우디아라비아 레스토랑 ‘올인어컵’. 작은 공간이지만 검은색과 금색으로 장식된 이곳은 원유가 풍부한 중동 부자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진다.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서 온 알라 만도라(Alaa Mandora)는 2016년 홍대에 처음 카페를 열고 커피와 티 등 간단한 메뉴로 시작했다. 에너지가 충만한 그녀는 고향의 음식도 한두 가지씩 시작했다. 한국에는 할랄마크가 있는 곳이 꽤 있지만 사우디아라비아 음식을 하는 곳은 거의 없기에 이곳의 의미는 남 다르다.
만도라씨를 처음 만난 건 카페를 연지 얼마 안 됐을 때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지원 장학금을 받아 한국에 온 첫 유학생으로, 서강대에서 MBA 과정을 마친 그녀는 한국의 매력에 빠져 버렸다. 메카 출신의 여성이 한국에서 레스토랑을 혼자 운영하는 것은 조금 놀라운 일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자국민에게 태어난 순간부터 평생 연금을 주는 여유 있는 나라지만, 어느 이슬람 국가보다 여성에게 엄격한 율법의 잣대를 대는 나라다. 외출 시에는 반드시 히잡을 써야 하고, 식당도 남자 구역과 가족 구역이 나뉘어 있을 만큼 여성의 바깥 활동이 제한돼있다. 하지만 요즘은 곳곳에서 여성의 활동 범위가 확대되는 중인 듯하다. 밝고 유쾌한 만도라씨의 성격은 나의 선입견이 틀렸음을 여실히 증명해 주었다.
사우디 여성들의 자유로운 만남은 대부분 친구의 집이나 친척 집에서 이루어진다. 히잡 뒤에 숨겨진 아름다운 메이크업과 의상들을 뽐내며 여자들만의 모임을 갖는다. 그래서 그 어느 나라보다 식당 밥보다 집밥이 훨씬 맛있는 나라다. 만도라씨는 어머니의 레시피로 레스토랑의 메뉴를 구성했다. 특별하거나 화려하지 않아도 소박한 엄마의 메뉴 속에 진짜가 숨어있다.
가장 대표적인 음식은 만디(Mandi)이다. 만디는 원래 예멘에서 시작된 음식이지만 지금은 걸프만 근처의 나라들이 주식처럼 먹고 있다. 결혼식이나 잔치가 있을 때도 빠지지 않는 단골메뉴다. 바스마티 라이스에 향신료를 곁들여 밥을 짓고 그 위에 기호에 따라 소고기, 양고기, 닭고기 등을 전통오븐에 구워 같이 먹는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땅을 파서 그 안에 장작을 지펴 화덕을 만든다고 한다. 집마다 마당 한 켠에 땅을 파서 화덕을 만들거나 집안에 화덕을 위한 공간을 만든다. 이렇게 땅에서 구워진 고기는 훈연의 향이 가득하고 살코기는 촉촉하고 부드럽다. 집안에 큰 행사가 있을 때는 땅속에 양 한 마리를 넣고 구워서 먹는다. 원래 만디는 아랍어로 이슬이란 뜻으로 그만큼 촉촉한 고기가 만디의 매력이다. 만도라씨는 가게 공간의 여건상 땅속화덕을 만들 수는 없지만 엄마의 비법으로 특유의 훈연의 향을 밥과 고기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요리한다. 매콤한 맛을 좋아한다면 고수와 양파, 토마토가 들어간 매콤한 소스와 함께 먹으면 더욱 맛있다.
우리나라의 만두와 비슷한 삼부사(sambusa)는 누구나 한번 도전해 볼 만 하다. 인도에 삼각형 만두에 소를 채운 사모사가 있다면 사우디아라비아는 삼부사라 부른다. 밀가루와 물로 간단히 반죽한 도우를 밀대로 펴서 그 안에 치즈와 커민으로 양념한 닭고기로 소를 넣고 만두처럼 끝을 손으로 말아준다. 녹두를 갈아 동그랗게 빚어 튀겨낸 팔라펠을 소로 넣어도 색다르다. 보기에는 튀김만두와 비슷한 모양이지만 요거트 소스에 찍으면 부드러운 맛이 더해진다. 에피타이저나 간식으로 소금을 살짝 넣은 마시는 요거트와 함께 하면 간편한 한끼가 된다.
식사의 마무리로는 파인애플티를 마신다. 생파인애플과 생강청을 넣어 따뜻하게 마시는 과일차다. 파인애플이 소화를 돕고 생강청이 몸을 따뜻하게 해줘 냉방이 강한 현지에 딱 맞는 디저트라고 할 수 있다. 맛은 흡사 겨울에 마시는 생강차와 비슷한데 단맛보다는 파인애플의 상큼한 향이 더해져 식사의 기분 좋은 마무리가 된다.
중동 최고의 미식지, 레반트 지역
중동음식으로 팔라펠과 훔무스는 이제 한국에서도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 조금 더 지역색이 묻어 있는 음식을 먹어보고 싶다면 중동지역 중 가장 미식이 발달한 레반트 지역 음식을 추천하고 싶다. 레반트는 지중해를 끼고 있는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팔레스타인 주변 지역으로, 일찍이 1만년 전부터 문명을 발달시켜 세계 어느 지역보다 식문화가 발달했다. 이 곳 음식을 레반틴 요리라고 한다. 녹사평역 사거리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시원한 뷰를 자랑하는 페트라(Petra)에서는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온 야서 가나엠(Yaser Ghanayem)씨가 레반틴 요리를 선보인다. 부모님이 팔레스타인 베들레헴 출신이어서 어린 시절 그의 식탁은 언제나 풍성한 요리로 가득했다.
열 살 무렵부터 주말마다 어머니와 음식 만드는 것을 즐겼던 그는 호주 유학시절부터 친구들을 초대해 요르단 음식을 대접했다. 페트라는 한국의 첫 번째 아라빅 할랄 레스토랑으로서 의미가 있다. 한국에서 아라빅 할랄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주방을 거쳐갔다.
그가 처음 한국에 온 2002년에는 해외교민들이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외국 음식점이 하나씩 생기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하지만 외국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 있게 안내해주는 곳은 별로 없었다. 그는 페트라에 오는 손님들에게 같이 먹으면 잘 어울리는 음식, 먹는 방법 등을 조금은 깐깐하게 제대로 알려주고자 한다. 이것이 페트라를 다시 찾는 이유가 된다.
식사는 가볍게 쇼르바트 아다스(Shorbat adas) 스프로 시작해 보자. 렌틸콩과 토마토로 만든 스프로 한 그릇으로도 한끼가 될 만큼 단백질이 풍부하다. 여기에 레몬 한 조각을 짜 넣으면 새콤한 맛이 식욕을 돋운다. 특히 채식주의자들에게 좋은 메뉴다. 요르단에서는 주말 저녁식사는 간단히 먹지만 점심은 가족과 같이 하며 여러 가지 음식을 즐긴다. 이때 쇼르바트 아다스는 빠지지 않는 음식이다.
예로부터 유목민 생활을 많이 했던 중동지역은 요거트가 들어간 음식이 다양하다. 치킨 파테(Chicken Fa’taa)는 처음 테이블에 올라오는 순간 하얀 요거트가 접시에 한 가득 나오는 듯해 어떤 맛일지 상상하기 힘들다. 하지만 한입 넣는 순간 바삭함과 고소함 그리고 과일의 시큼함까지 미각이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을 모두 갖고 있다. 파테는 빵 조각이란 의미로 현지 가정에서는 전날 먹고 남은 빵이나 피타를 넣어 만든다. 하얀 요거트 아래 잘게 찢은 치킨에 고소한 병아리콩과 바삭하게 구운 빵 조각, 아삭한 파프리카와 수막(sumac)의 새콤한 조합이 새롭다. 여기에 한국사람들이 좋아하는 참깨로 만든 타히니 소스가 들어가니 고소함은 입에 기분 좋은 여운을 남겨준다. 위에 올라가는 빨간 가루는 수막이다. 새콤한 맛의 수막은 팔레스타인과 요르단의 산에서 나는 베리의 일종으로 건조 후 가루로 만들어 음식에 살짝 뿌리면 식욕을 돋운다.
요르단의 테이블에서 양고기가 빠지면 서운하다. 램 아라이스(Lamb Arayes)는 피타 위에 양고기를 잘게 다져 올려 오븐에 구워낸다. 서양의 피자와도 비슷한 듯하지만 양고기와 토마토, 양파가 들어가며 일부 지역에서는 위에 피타를 한겹 더 올려 샌드위치처럼 먹기도 한다. 양고기가 부드럽게 다져 들어가니 남녀노소 누구나 먹을 수 있다. 같이 나오는 훔무스 소스를 곁들여 먹으며 새콤함이 배가된다. 램찹은 한국인 손님들이 가장 즐겨먹는 메뉴 중 하나다. 구운 양갈비가 바스마티 라이스에 올라오는데 불에 구워지면서 기름이 빠져 담백한 양고기에 요거트 소소가 촉촉함을 더해 준다. 매콤한 맛을 원한다면 중동 칠리로 만든 샤타소르를 같이 먹으면 감칠맛이 돈다.
지금 한국의 미식문화는 무한발전 중이다.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세계 곳곳의 음식을 맛 볼 수 있다. 멀게만 느껴졌던 아랍권 중동의 신비로운 음식도 전철 한번만 타면, 바로 그 나라에 있는 듯 내 눈앞에 펼쳐진다. 낯설고 새로운 것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 도전해 볼 가치가 있다. 도전할수록 세상의 모든 음식이 나의 음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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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드 샘플ㆍ박은선 잇쎈틱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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