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시마는 일본 4대 섬 중 남서쪽에 있는 규슈 제일 남쪽에 있는 소도시다. 규모는 작지만 그 역사적 의미는 작지 않다. 근대 일본 역사가 시작된 곳이기 때문이다. 가고시마 공항에 내리면 “일본 근대화의 새벽은 이곳에서 시작됐다”고 적힌 포스터가 자랑스럽게 걸려 있다.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요도미 파와 싸워 이긴 후 250년 간 일본을 지배해온 도쿠가와 막부는 1854년 미국 페리 제독의 압력에 굴복해 문호를 개방했다.
이 사건은 막부의 무능함에 대한 분노와 함께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힘을 기르지 않으면 일본은 식민지로 전락할 것이란 우려를 불러 일으켰다. 일본의 근대화와 생존을 위해서는 기존 막부 체제로는 안 되고 천황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중앙 집권 국가 수립이 필요하다는데 많은 사람들이 생각을 같이 했다.
그 결과 일어난 것이 소위 1868년 메이지 유신이다. 그리고 그 중심이 현 가고시마의 옛 이름인 사쓰마와 현 야마구치의 옛 이름인 조슈였다. 사건의 발단은 조슈가 지금의 동경인 에도의 막부에 반기를 들면서부터다. 도쿠가와 막부는 1차 진압에 성공한 후 2차로 아예 조슈 집권 세력의 뿌리를 뽑으려 했다. 이에 조슈는 메이지 천황 친정을 명분으로 사쓰마와 동맹을 맺고 막부에 저항했으며 막부군은 홋카이도 하코다데에서 장렬한 최후를 맞고 만다.
권력을 잡은 메이지 세력은 전통적인 사무라이 제를 국민 개병제로 전환하고 의무 교육제를 도입하는 등 근대 국가 건설의 토대를 마련한다. 일본이 아시아 국가로는 유일하게 19세기에 근대화에 성공해 서구 열강에 맞먹는 힘을 갖고 독립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메이지 유신 덕이다.
일본에서는 변방 중의 변방인 가고시마가 어떻게 이런 대업의 중심적 역할을 하게 됐을까. 변두리였던 점이 오히려 서양 문물을 앞장서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다. 가고시마 남쪽 다네가시마 섬은 1543년 조난당한 포르투갈 인이 처음 상륙한 곳이다. 이곳에서 서양 화승총의 위력을 목격한 일본인들은 기술을 전수받아 10년 동안 30만 자루의 총포를 만들어냈다. 전국 시대 오다 노부나가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첫 번째 패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그 힘을 이용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막부 집권 후 일본은 쇄국 정책을 폈지만 그러면서도 나가사키에 인공 섬 데지마를 만들어 네덜란드의 인과의 접촉을 허용하며 서양의 문물과 동향을 파악하고 있었다. 나가사키는 가고시마에서 멀지 않다.
격동의 시대를 산 사쓰마의 번주 시마즈 나리아키라는 자신의 별장인 선암원 옆에 공방을 짓고 서양식 기계 제조를 연구했으며 일본에서 처음 서양식 조선소를 건설했다. 이런 그의 서양 문물에 대한 관심은 할아버지 시게히데를 본받은 것으로 시게히데는 일본 번주 중 처음 알파벳으로 일기를 쓴 인물이다.
메이지 유신과 가고시마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에 사이고 다카모리가 있다. 하급 무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조슈와의 동맹을 성사시키고 막부 토벌에 성공한 후 낙향해 야인의 삶을 산다.
그러나 신정부의 사무라이 폐지 정책이 본격화되자 이에 불만을 품은 세력이 그를 앞세워 반란을 일으키며 그는 어쩔 수 없이 반란군의 리더가 된다. 1877년 일어난 소위 서남 전쟁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신식 무기를 갖춘 정규군의 상대가 되지 못했고 사이고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지금도 가고시마 뒷산에는 그가 최후를 보냈다는 작은 동굴이 유적지로 남아 있다.
한 때 반란의 수괴였지만 천황제를 옹립하고 일본 전통을 지키려다 죽은 사이고는 일본인들의 영웅이다. 2003년 나온 탐 크루즈 주연의 ‘마지막 사무라이’는 그의 일생을 소재로 한 것이다.
페리가 준 치욕을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 국가 수립으로 되갚은 일본은 아시아 각국 중 유일하게 독립을 지켰고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의 승리에 취해 문을 굳게 닫은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로 추락했다. 일본에게 조선을 병합할 힘을 준 메이지 유신은 한국인들에게는 기분 나쁜 사건이지만 기분 나쁜 것과 역사적 중요성은 구별돼야 한다.
올해는 메이지 유신이 일어난 지 150주년이 되는 해다. 개혁과 개방을 거부하는 사회는 역사의 흐름에 뒤쳐지고 결국 몰락한다는 사실을 동아시아의 근대사는 확인시켜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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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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