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뜨는 유행가 중에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노래가 있다. 옛날에는 유행가라면 좀 천박하다는 인식 때문에 잘 듣지도 않았는데 이제 나이가 들고보니 유행가 만큼 절실하게 인생을 표현한 것도 없다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백세시대를 맞이해서 사람들이 팔십을 못채우고 죽으면 너무 일찍 떠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나는 몇달 전에 그림 그리기를 다시 시작했다. 사실 사십 년도 더 전에 나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그림을 한 이년 정도 그렸던 적이 있다. 수십년 동안 손을 놓고 있다가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처음엔 눈이 나빠져서, 너무 나이를 먹어서하며 여러가지 핑계를 대고 요리조리 피했지만 결국 용기를 내서 다시 붓을 들었다. 이제 삼개월 조금 지나서 벌써 열개를 그렸다. 내가 생각해도 신통하고 대견하다.
그림을 그릴 때는 무아지경에 빠진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른다. 처음에 나는 한적한 시골의 낡은 반(창고)이나 꽃이 만발한 예쁜 집들을 그렸으나 얼마전 산과 물과 나무와 돌들이 있는 풍경화를 그려봤더니 제법 그럴듯하게 나와서 내 자신이 놀랐다. 이 그림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한테 드려야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렇듯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에 재능이 있는지 무얼 가장 잘 할 수 있는지 해보지 않고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은 시도도 하지 않고 포기한다. 용기가 없어서, 돈이 아까워서, 또 게을러서 아무 것도 못하고 세월을 낭비한다.
내가 이 말을 막내 아들한테 했더니 “엄마! 그게 보통 사람들이예요.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엄마가 특별하고 엄마가 좀 유별난 사람이야”라고 말해 한대 뒤통수를 맞은 듯 했다. 난 한번도 내가 좀 유별난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보면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운동도 열심히 하는 편이고 아직도 음식 만들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을 우리 집에 불러서 대접하기도 좋아하는 편이다. 그러나 지금은 차츰 사정이 달라지고있다. 남편의 건강이 조금씩 나빠지면서 내 생활 패턴도 변하고 있다. 내가 좋던 싫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리들도 변화하게 마련인가보다.
내 주변의 친구들도 나이가 먹었다는 핑계로 아무 것도 하지않고 세월만 축내는 사람들이 많다. 은퇴를 한다는 것은 시간이 많아져서 물론 쉬는 것도 좋지만 그동안 젊어서 바빠 못했던 것들을 새로 시도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말하자면 다시 찾아온 제2의 인생을 보람있게 보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물론 춤을 춘다던지 발란티어로 남을 돕는다던지 하며 활기있게 사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잘 사는 사람들이다. 자신을 내던져서 남을 돕고, 또 못해본 것들 중에 새로운 기쁨이나 행복을 얻는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내 이웃 친구 중 한사람은 나이가 팔십이 넘었지만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를 시작해 얼마 전에 시조로 한국 문단에 등단했고, 그림도 열심히 그리고 도자기 만들기와 서예와 보석 만들기 등 이곳 라스모어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섭력해 주위를 놀라게 만들었다. 이런 사람들을 나는 존경하고 좋아한다. 자신이 잘하든 못하든 최선을 다해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 자신이 나를 좋아하게 될 때, 내가 자신이 참 괜찮은 사람이구나 생각될 때 행복감을 느낀다. 내가 좀 게으름을 필 때는 이렇게 시시하게 살고 있어도 괜찮은가 하는 질문을 하며 스스로 짜증이 난다. 이제 팔십을 넘겼지만 아직도 해보고싶은 게 많다. 여행도 많이 했지만 아직도 내가 가보지 못한 오지나 아프리카를 가보고 싶고, 기차를 타고 시베리아의 벌판을 달려가 보고 싶다.
얼마 전 한국에 사는 구십세의 언니가 “얘! 우리가 인터넷을 찾아보니 네 이름이 나오고 네 신상에 대해 나온 것을 보고 기분이 묘했다. 네가 자랑스럽다!”하시며 호들갑을 떠셨다. 나는 한번도 내가 성공했다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책 몇권을 써서 이름이 좀 알려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게 대단한 성공이라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내 자식들 넷이 모두 평범하게 살고 있지만 모나지 않고 원만한 성품들을 가지고 이 사회에서 씩씩하게 살면서 제 자식들 잘 키우면서 사는게 성공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사람들은 한번 태어나면 모두들 죽을 때가 있다. 이게 우리 인간들의 운명이다. 그렇다면 살아있을 때 자신이 살았던 어떤 흔적을 남겨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 때문에 내가 다시 그림을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죽을 때 많은 물질을 남기지도 못한다. 내가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우리 자식들 거실에 내가 그린 그림이라도 한편에 멋지게 걸려있을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것이 비록 대단한 것이 아닐지 몰라도 적어도 나는 열심히 살았다는 족적을 남긴 것은 아닐까
글을 쓰다가 눈이 피로해 산책을 나섰다. 그림을 시작해보니 주위의 한송이 꽃이나 풀잎이나 날아가는 새들도 유심히 살피게 된다. 갑자기 핸드폰이 울린다. 내가 좋아하는 후배 엘리자벳의 전화다. 우리들은 만나자고 약속을 한다. 그러자 갑자기 활력이 나면서 어느새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언덕길을 내려가고 있다. 가슴에는 행복의 바이러스가 꽉차오르는 기분이다. 내가 얼마를 더 살지 모르지만 나는 사는 그날까지 내 나이가 어때서를 목청껏 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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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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