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층-100평 아파트 살았지만, 갑갑함 느끼며 살았는데
▶ 거실에 모였을 때 차분히 보이게, 거실은 2층에, 방들을 1층으로
경남 하동 월계재. 지리산 자락에서 만난 녹차밭에 반해 귀촌을 결심한 한 50대 가장의 집이다. <일상건축사사무소 제공>
2층 거실에서 본 녹차밭. 이 녹차밭 때문에 집주인이 귀촌을 결심했다. <일상건축사사무소 제공>
1층 실내 복도. 복도를 따라 3개의 방이 나란히 배치돼 있다. <일상건축사사무소 제공>
멀리서 보면 장난감 집 같다. 흰 우유곽, 문구점, 비닐하우스 등 온갖 가볍고 귀여운 것들을 연상케 하는 저 집은 사실 저택의 일부분이다.경남 하동군 월계재는 우연히 지리산 자락에 왔다가 녹차밭 한 뙈기에 반해 나머지 인생을 이곳에서 보내기로 한 어느 50대 가장의 집이다. 그는 고래등 같은 저택 보다는 최대한 작아 보이는 집을 원했다.
지리산 자락에서 만난 녹차밭
전북 전주에서 개인 사업을 하던 건축주가 지리산 화개골로 간 건 아파트 살이에 답답함을 느껴서다. 고층 아파트 꼭대기에 자리잡은 집은 전망이 막힘 없이 좋았다. 면적도 복층까지 합치면 실평수가 100평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갑갑함은 해결되지 않았다. 건축주는 중학생 딸을 포함한 가족들을 이끌고 지리산 화개골에서 1년 간 살아보기로 결정했다.
하동군에 속한 지리산 화개골은 우리나라의 차 시배지다. 지금은 전남 보성이 대표적인 녹차 재배지로 알려졌지만 가장 먼저 차를 심어 가꾼 곳은 하동이다. 지리산 자락에 둘러싸여 앞으로는 계곡물이 흐르고 뒤로는 야산을 접한 땅에 자리를 잡은 뒤에야 건축주의 마음이 트였다.
넓은 아파트로도 해결되지 않은 갑갑증을 해결해준 건 집 뒤쪽의 녹차밭이었다. TV 광고에 나오는 것처럼 질서정연하지도 않은, 가슴이 탁 트일 만큼 넓지도 않은 야생 녹차밭이었지만 그는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다. 1년 뒤 울룩불룩한 녹차밭을 뒤로 하고 도시로 돌아가야 했을 때 그는 다시 올 것을 다짐했다. 나머지 생을 아예 이곳에서 보내기로 한 것이다.
“집을 지을 때 건축주가 가장 강조한 게 북쪽의 저 녹차밭이었어요. 집에서 녹차밭을 어떻게 볼 것인가가 관건이었죠. 원래 있던 집을 허물고 새로 짓기로 한 이유도 대지에 비해 녹차밭이 4m 정도 높아서 제대로 즐기기 어렵단 거였어요.”
설계를 맡은 일상건축사사무소 김헌ㆍ최정인 건축가의 말이다. 김 소장에 따르면 건축주는 먼저 땅과 집을 샀고 그 다음에 녹차밭까지 사들였다. 행여 다른 사람이 녹차밭을 사서 용도를 바꿀까 봐서다. 설계의 초점은 당연히 녹차밭이었다. 멀리서 볼 것인가, 가까이서 볼 것인가, 1층에서 볼 것인가, 2층에서 볼 것인가.
먼저 나온 안은 녹차밭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2층짜리 집을 올리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위층 아래층 어디서나 녹차밭을 조망할 수 있다. 대신 남쪽으로 넓게 펼쳐진 정원을 포기해야 했다. 두 번째 안은 차밭 바로 앞에 필로티 구조로 기둥을 세워 집을 띄우는 것이다. 그러면 차밭을 눈 앞에서 볼 수 있는 데다가 남쪽으로 탁 트인 마당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자연에 파묻힌 목가적인 집을 원하는 건축주에겐 너무 모던한 외관이었다.
결국 채택된 안은 녹차밭 가까이 붙여서 2층짜리 집을 짓는 것이었다. 보통 2층으로 집을 올릴 경우 1층은 거실과 주방으로 이뤄진 공공공간이 되고 2층엔 개인 방이 놓인다. 그러나 이번엔 위아래를 바꿨다. “애초에 방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어요. 건축주는 그냥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이면 된다고 했습니다. 저희의 입장에서도 집 어디서나 녹차가 보인다는 설정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안방에선 마당의 나무와 밤하늘의 달을 보고, 거실에 가족들이 모였을 때 녹차밭을 볼 수 있다는 게 차밭의 매력을 더 극적으로 끌어올리는 방법이라고 여겼습니다.”
건축가들은 2층 거실 앞뒤로 길이 7m의 창문을 시원하게 뚫었다. 창틀의 폭도 최소한으로 좁혀 녹차밭이 한 폭의 그림처럼 담길 수 있게 했다. 거대한 창 안에 담긴 푸른 차밭은 웅크린 야생 동물처럼 집의 일원이 됐다. 거실 옆엔 작은 다실을 두었다. 밭에서 수확한 녹찻잎을 이곳에서 우려 마실 작정이다.
어떻게 하면 더 작아 보일 수 있을까
집을 짓는 데 변수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크기다. 건축주는 “실제론 크지만 너무 커 보이지 않는 집”을 원했다. 연고 없는 곳에 내려와 대궐 같은 집을 짓는 것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6인 가족에 지금까지 살아온 면적이 있다 보니 마냥 줄일 수만도 없었다. “방 3개에 거실과 주방 각 20평”이 물리적이자 심리적 하한선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이 머릿속으로 그리는 집과 실제 집을 일치시키지 못해요. 상충되는 경우도 많죠. 집주인의 경우 개방감이 가장 중요한 이슈였지만 겉으로 보기엔 최대한 집이 작아 보였으면 했어요.”
‘어떻게 하면 더 작아 보일 수 있을까’. 고민하던 건축가들이 떠올린 아이디어는 1층과 2층을 분리하는 것이었다. 거실이 있는 위층을 녹차밭을 향해 살짝 밀어 두 개의 층이 어긋나게 한 뒤 각자 색을 달리 했다. 2층은 흰색, 1층은 짙은 쥐색 벽돌로 이루어진 집은, 마치 쥐색 돌받침 위에 작은 흰 집을 올려 놓은 것처럼 보인다.
“멀리서 보면 2층만 눈에 도드라져 보였으면 했어요. 지붕과 벽의 색을 흰색으로 통일한 것도 가능하면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이기 위한 것입니다. 분절되고 쪼개진 것들은 시선을 분산시켜 더 커 보일 수 있거든요.”
이음매조차 최소화한 담백한 흰 집은 전통적인 형태의 삼각 지붕을 만나 모던한 듯 목가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2층을 녹차밭 쪽으로 미는 바람에 거실은 차밭과 한발 더 가까워졌다. 밀려난 2층 공간엔 넓은 야외 데크가 생겼다. 녹차밭에 집중하느라 미처 챙기지 못한 지리산 자락의 풍경과 넓은 정원을 적극적으로 누리기 위한 공간이다.
월계재라는 이름은 건축주와 함께 귀촌한 친구가 지어줬다. 밤이면 동쪽 형제봉에 달이 크게 걸리는 모습을 보고 지은 이름이다. “이 집의 가장 큰 매력은 이 장소예요. 녹차밭뿐만 아니라 정원, 달, 별, 바람소리, 물소리까지 원하는 대로 다 가질 수 있거든요. 이런 자연 환경에서는 왜소함을 택하는 게 맞는 일이에요. 집이 아무리 잘나도 자연을 이길 수는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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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황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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