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떠난날 하늘은 왜 이리 파아란가
길가에 장미꽃은 흐드러지게 피고 왜 이리 모든게 눈부신가
이 세상 아무것도 변한게 없고 구름만 무심히 흘러가는가
태어날때가 있으면 죽을때도 있겠지 이게 아마 인생인가봐!
내 친구중에 메리라는 여자가 있었다. 벌써 그녀가 이 세상을 떠난지 한달이 지났다. 그러나 아직도 나는 그녀가 죽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오월 중순, 병원앞 꽃밭은 온통 분홍빛 장미로 뒤덮여서 그 화사한 아름다움에 아!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던 그날, 그녀는 영영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
그녀가 어느날 부터인지 슬슬 살이 빠지기 시작하고 기운이 없어하던 그때부터 그녀의 병은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기침을 콜록콜록하면서 처음엔 자신의 폐에 문제가 생겼나보다하고 계속 폐 계통의 의사만 찾아다녔지만 의외로 병은 신장에 있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당뇨병을 앓아왔지만 당뇨병 환자들이 거의가 그렇듯 별로 심각하게 생각지 않았고 비교적 그 병을 잘 다스려왔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던차 결국 병은 신장암으로 밝혀졌다.
그녀의 직계 가족 사십여명 중에 의사만 열명이 있다. 그녀의 아버지도, 남편도 또 동생들이며 조카들까지 모두다 의사지만 아이러닉하게 그녀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이 세상은 불가사의한가보다.
그녀의 아버지는 몇년 전에 작고하셨고, 남편은 작년에 이 세상을 떠났는데 갑자기 그녀도 그 뒤를 따라가게 되었다. 그녀는 한국 전쟁이후 열여덟살에 미국으로 유학을 왔다. 그녀의 가족이 처음으로 전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온 케이스라니 그것만 보아도 대단한 가족임을 알 수 있다.
그 당시 한국은 전쟁 이후 모든 국민이 가난으로 살기가 힘든 시절이어서 미국 유학이나 가족 이민은 상상할 수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녀는 음악 박사와 사회학 박사가 두개나 있었지만 한번도 그런 티를 내지 않고 살던 사람이었다.
그녀는 이곳 라스모어 말고도 산타 마리아란 곳에 집이 있어서 그곳에서 수십년간을 남편이 의사로 살았고, 모든 면에서 아쉬울게 하나도 없던 여자였다.
왜 우리 몇명의 친구들이 그녀를 못잊냐 하면 그녀는 늘 남에게 베풀던 사람이었다. 그녀가 오면 아침 운동을 함께 하고, 끝나면 아침 밥도 사주고 또 점심때도 불러서 자신의 집에서 늘 우리를 위해 밥과 요리를 만들어 주곤 했다. 또 산타 마리아는 농경지여서 브로컬리나 온갖 채소들을 뜯어와서 우리들에게 나누어 주곤 했다. 그녀는 미국에서 제일 오래 살았으면서도 제일 한국적인, 즉 신토불이였다.
그녀가 죽은 후 나는 깨달은 것이 있다. 친구는 두가지의 친구가 있는데 한 사람은 베푸는 친구고 다른 한쪽은 늘 받기만 하는 친구다. 내 주위를 돌아볼 때 내게는 그녀가 유일하게 내게 베푸는 친구라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여러 명의 친구가 모두 서로 주고 받는 사이라곤 하지만 그녀는 마음도 또 실질적인 면에서 물질로도 늘 베풀기를 좋아하던 친구다.
가령 그녀가 입은 옷이 예쁘다고 말해주면 그 자리에서 그 옷을 벗어 입으라고 주던 친구다. 그녀의 장례식날 내가 추도사를 읽었을 때, 모두가 숙연했고, 남동생 둘이서 그녀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누나지만 꼭 엄마 같은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슬하의 네 딸들을 모두 변호사로, 금융기관에서 빌리언을 주무르는 그런 자식들로 키워냈다.
무엇보다 그녀는 몇십년 전에 교회를 만들었고 그 교회를 키우며 하나님께 헌신하던 사람이었다. 그녀는 교회에 관해 내게 많은 충고를 주던 사람이었다. 나도 이곳에서 교회를 개척했기 때문에 처음엔 욕도 많이 먹었었는데 그녀의 충고가 실질적으로 많은 위로가 되었다.
사람들은 대게 남을 칭찬하기보다 뒤에서 흉을 보길 좋아한다. 남보다 좀 잘난 사람이 있다면 거의 다 질투 때문에 안달이 난다. 이 세상은 의외로 성숙한 사람보다 철들지 못한 사람들이 많은 지도 모른다. 사실 나도 이곳 라스모어에 이사와서 참아야 하는 인내를 배웠다.
나는 일생을 팔팔하고 성질이 급한 다혈질로 살았다. 그러나 이제 팔십 평생을 살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이 세상은 그렇게 못난 사람도 또 그토록 잘난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한 세상을 이런 사람 저런 사람들 틈에 섞여 둥글둥글 살면 되는 것이다.
지금도 아침 운동을 하면서 나는 가끔 뒤를 돌아본다. 혹시 메리가 뒷문을 열고 그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나타날 것만 같다. 생각해 보면 그녀는 한 세상을 잘 살다가 갔다. 좋은 아버지와 좋은 남편과 사랑스런 자식들, 또 돈도 많이 벌어보았고 명예며 이름도 날려보았다. 사람은 죽고 나서 그 사람의 평가가 이루어 진다. 늘 주위에서 베풀던 사람은 모두 잊지 못하고 그리워 한다.
이제 나는 내 마음속에서 메리의 기억을 지우며 살아야 할 것 같다. 사랑하는 메리여! 잘가! 당신이 조금 먼저 갔을 뿐 우리도 언젠가는 그 길을 갈꺼야! 이왕이면 당신처럼 아름다운 오월에 떠나면 좋겠다. 꽃잎이 흩날리는 그 길을---구름처럼 흘러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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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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