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이 시각에도 트럼프의 무역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많은 독자들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의아해 한다.
연방의회가 무역협정 철회를 승인하지 않았고, 설사 트럼프가 원한다 해도 앞으로도 승인해줄 것 같지 않은데 대통령이 어떻게 독단적으로 무역전쟁을 시작할 수 있느냐는 궁금증이다.
겉으로 드러난 상황만 보면 공화당은 트럼프가 미국의 적대국가와 유착했을 뿐만 아니라 현재 사법방해를 저지르고 있다고 거의 틀림없이 확신하면서도 별로 개의치 않는 눈치다.
하지만 국내 대기업들의 자산이 영향을 받거나 평가절하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그건 전혀 다른 문제다. 그렇다면 트럼프는 어떻게 무역전쟁을 시작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것이 전 세계에 미칠 영향은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바로 지금이야말로 지구촌 전체의 무역시스템과 그 안에서 미국의 무역 정책이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설명하고 일깨워주는 초보적인 입문서가 그 어느 때 보다 필요하다.
무역정책과 관련해 알아두어야 할 한 가지 핵심사항은 교과서적 경제이론은 실제 무역정책에 전혀 반영되지 않으며, 무역협상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는 점이다.
지난 80년 동안 미국이 점진적인 자유무역 확대를 추구해온 것은 사실이다. 이는 경제이론의 간접적 영향과 함께 보다 밀접한 경제적 통합이 평화와 자유세계 연합에 유익하다는 점이 각각 부분적으로 반영된 결과였다.
그러나 무역 자율화의 기준이 되어야 할 프로세스는 추상적인 이상이라기보다는 정치적 리얼리즘의 지배를 받았다. 무역에 있어 정치적 리얼리즘은 생산자들의 이익이 소비자들의 이익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뜻한다.
왜냐하면 생산자들은 소비자들에 비해 훨씬 더 조직화 되어 있고 특정 무역정책의 득실이 무엇인지 보다 명확히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고전적인 케이스는 설탕이다. 미국은 수년간 수입 궈터를 이용해 국내 설탕가격을 세계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 몇 배 이상 높은 수준으로 유지했고 여기서 발생한 이윤은 고작 몇 천 명에 불과한 생산자들이 매년 1인당 수 천만 달러씩 나누어 가졌다.
반면 관련 비용은 수천만 명의 소비자들에게 분산되어 전가됐기 때문에 대다수는 수입쿼터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이 같은 집단 사이의 비대칭성을 감안하면, 수입업계의 이익이 생산업계의 이익을 앞지르기 때문에 결국 보호주의 수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사실 1930년대까지만 해도 보호주의가 미국 무역정책의 기본 방식이었다.
그러나 프랭클린 D. 루즈벨트(FDR) 대통령이 상호 협정을 통해 서로 상대국 상품에 대한 무역관세를 낮추는 호혜통상협정법(RTAA)을 도입했고 이로 인해 수출업계의 이익이 현실적인 그림 안으로 들어오면서 정치적 셈법에 변화가 일어났다.
미국의 수입업체들은 여전히 보호주의를 시끄럽게 요구했으나 자신들에게도 해외시장 접근권을 주어 균형을 맞추게 해달라는 수출업계의 요구에 직면하게 됐다.
RTAA는 수출은 선이고 수입은 악이라는 중상주의자들의 가정을 수용한 불량한 경제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RTAA는 우량한 경제적 결과로 연결되는 프로세스를 만들어낸 개화된 형태의 중상주의의다.
이런 프로세스를 제대도 작동시키기 위해 의회는 무역정책의 세세한 부분에서 한발 뒤로 물러설 필요가 있었다. 의회는 행정부에게 협상을 맡긴 뒤 협상결과에 대한 찬반 투표만 담당하게 됐고, 그 결과 2차세계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관세율은 상당한 폭으로 떨어졌다.
이어 1947년 미국과 파트너 국가들은 동일한 시스템의 다자 버전인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을 확립했다.
나는 GATT를 지렛대와 칼로 이뤄진 시스템이라 생각한다.
무역자유화를 점진적으로 확대하는데 사용된 지렛대는 ‘라운드’라고 불리는 말 흥정과 비슷한 정교한 방식으로 구성됐으며, 관세인하라는 결과물을 끌어냈다.
협정폐기를 막는데 사용되는 칼은 예외적인 특정한 상황을 제외하곤 어떤 경우에서건 협정당사국이 이전에 체결한 합의를 번복하지 못하도록 막아내는 역할을 했다.
여기서 예외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역시 정치적 리얼리즘이다.
교역시스템의 창조자들은 GATT에 약간의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나치게 경직된 시스템은 부러지고, 중요한 사건 발생시 그 압력으로 산산조각이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것이다.
이에 따라 참여국들에게는 아래와 같은 조건에 처했을 때 새로운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권리가 인정됐다. (무역전문 변호사들은 내가 지나친 단순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본질은 맞다.)
· 시장혼란 - 수입이 갑자가 급증해 적응 능력을 상실한 국내 생산자들에게 숨 돌릴 틈을 제공하기 위한 관세다.
· 국가안보 - 중요한 물품을 잠재적 적대국에 의존하지 않도록 확실히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 부당행위 - 예를 들어 해외 수출보조금에 맞서기 위한 관세다.
· 덤핑 - 해외 기업이 시장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경비이하의 가격으로 제품을 판매할 때 발동한다.
미국의 경우 이런 조항들 가운데 하나를 적용하는 권한은 누구에게 있는가?
의회가 아니다. 의회가 나선다면 FDR이 1934년에 닫아버린, 벌레들이 우글대는 통의 뚜껑을 다시 열어젖히는 꼴이 되고 만다.
대신 행정부가 준사법절차를 이행하고, 해당 행정부서에 속한 기관이 예외조항의 적용이 정당한지 여부를 조사하면 그 결과를 바탕으로 대통령이 실제로 관세를 부과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한다.
그러나 미국이 취한 관세부가조치의 정당성을 상대국이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는 어떻게 되는가? (혹은 반대로 타국의 조치에 미국이 반대할 경우는?)
관세폭탄을 맞은 상대국은 국제무역기구에 중재를 신청할 수 있는데. 이는 1993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창설되기 전 까지만 해도 대단히 성가신 절차였으나 지금은 보통 빠른 속도로 처리된다.
그 다음은? 한 국가가 부적절하게 행동했다는 WTO의 판단이 나왔다고 가정해보자: WTO는 과연 판정결과를 집행할 권한을 갖고 있는가? 강제 집행방법은 전혀 없다.
WTO는 무역규정을 어긴 악당들을 무력으로 다스릴 수 있는 블랙 헬리콥터 부대 따위를 갖고 있지 않다. 대신 WTO는 문제를 일으킨 국가를 무법국가로 선포함으로써 피해국에게 적절한 보복을 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제까지는 이런 위협만으로도 충분했다. WTO에게 패소판정을 받은 국가들은 한발 뒤로 물러섰고 문제가 된 무역정책을 번복했다.
왜 그랬을까? 통제가 안 될 경우 서로 상대와 치고받는 무역전쟁에 휘말리면서 지난 70년간 이룩한 진전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다는 우려를 당사국들 모두가 공유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얘기는 다시 트럼프로 돌아간다.
세계무역시스템은 시종 일관되게 높은 수준의 글로벌 협력을 이끌어낸 훌륭한 기본구조물이다. 이 시스템은 심각한 외부충격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보호주의의 발현을 억제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그러나 무역시스템은 법치를 경멸하는 주요국 지도자를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내부 장치를 갖고 있지 않다.
일부 전임 대통령들도 관세부과 권한을 발동했고, 그들이 내린 조치가 늘 타당한 것은 아니었다. 심지어 오바마도 중국산 타이어에 대해 ‘시장교란’ 관세를 부과했다.
그러나 과거의 대통령들은 늘 신중했고 그들의 관세조치는 제한적이었으며 이런 조치의 경제적 근거는 애매하긴 해도 변론이 가능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맥락에서 국가안보를 이유로 관세를 부과했다.
캐나다산 알루미늄 수입이 미국의 국가안보에 어떻게 위협이 되는지에 관한 설명은 전혀 없었다; 실제로 자동차에 대한 관세마저 부과한다면 그가 취한 조치의 정당성을 찾아보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사실 트럼프 행정부는 진정한 국가안보 우려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시늉 조차 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것뿐이다.
더욱 고약스런 것은 확실한 엔드 게임(end game)이 없다는 사실이다. 유럽과 캐나다는 고사하고 중국은 트럼프를 만족시키기 위해 도대체 무엇을 제공할 수 있을까? 미국 무역적자를 끝내는 것인가? 그건 무역정책이 건네줄 수도 없고, 건네주어서도 안 된다.
물론 세계의 다른 모든 국가들이 미국에 분노하고 있다. 이건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무역정책이란 내재적으로 정치적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에게 커다란 양보를 안겨주는 것이 좋은 경제학인지는 전혀 분명치 않으며 우리의 민주우방국들 - 아니면 이전 우방국들? -은 미국을 따를 기분이 들지 않을 것이다.
이제 트럼프가 무역전쟁을 수행할 권한을 어떻게 갖게 됐는지, 왜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면서도 불행한 일인지 알았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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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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