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중에 운명(運命)이라는 말을 들을 때가 적지 않다. 여러 장르 예술의 작품명이나 베토벤의 교향곡 제 5번(운명교향곡)에서 보듯이 음악이나 시나 책의 제목에서도 운명이라는 말을 자주 만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문재인 대통령의 자서전적 책의 제목에도 운명이 나온다. 사람들은 ‘운명’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기도 하고, 살아 온 자신의 인생을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운명은 사람이 태어난 사주(四柱)에 바탕을 두어 운명을 예측하는 사주명리학(四柱命理學)을 믿는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운명이라는 말이 일상적 단어가 되었다. 운명을 믿든 안 믿든 운명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운명에 대하여 깊은 성찰과 통찰력을 제시 해 준 사람을 든다면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아닌가 한다. 니체가 말한 아모르 파티’(Amor Fati)의 개념이 그러하다. 대략 운명(運命)에 대한 사전적 의미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이나 또는 그것에 의하여 이미 정해져 있는 처지나 현실을 의미한다. 쉽게 표현하면 도리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개인이나 민족의 어떤 공고한 현실이나 상황을 운명이라 한다. 어떤 사람은 아예 운명의 법칙성을 그대로 받아들여 운명론자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니체는 그의 책 『즐거운 학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에서 운명을 말하되 인간 의지를 부인하거나 운명의 법칙을 신봉하는 운명론을 말하지 않는다.
그가 주장한 ‘아모르 파티’(amor fati)는 라틴어로 아모르는 사랑(Amore)을 파티(Fati)는 운명(fate)을 뜻한다. 운명애(運命愛) 혹은 ‘운명에 대한 사랑’으로 번역된다.
니체는 고통이나 상실, 좋거나 나쁜 것 등을 포함하여 누군가의 삶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이 그 사람의 운명인데 이 운명을 피하거나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거나 부정하는 삶을 지양한다. 그는 자신 앞에 닥친 피할 수 없는 공고한 현실 곧 운명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여 긍정하고 사랑하여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곧 창조적 변혁을 추구하는‘아모르 파티’의 삶을 제시한다.
뜬금없이 기독교 사제가 하느님의 섭리라는 말을 놔두고 운명을 이야기하고, 신은 죽었다 외친 니체의 아모르 파티를 언급하게 된다. 그것은 한 개인으로는 삶이 답답하고 시련과 절망이 깊어갈수록 자신의 공고한 현실을 운명의 탓으로 돌려 체념하지 말고 현실에 대한 성찰적 수용과 깊은 긍정으로 다시 일어서려는 마음을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또한 작금 한반도를 중심으로 고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겨레의 하나됨과 평화를 이루려는 기운이 온간 난관과 고비를 헤치고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70여년 이상 외세의 영향을 받아 전쟁의 위협, 상호불신과 대립 속에 분단국가로 살아온 고통의 역사와 현실을 영원히 어쩔 수 없는 민족적 숙명이거나 수치스럽고 열등한 민족의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현실에 대한 성찰과 긍정을 통하여 평화와 번영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 가기를 희망하는 마음에서이다.
‘아모르 파티’는 비록 자신의 운명이나 현실이 만족스럽지 않거나 고통스러워도 받아들이고 긍정하며, 자신의 운명과 삶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삶이나 새로운 미래를 추구함을 의미한다. 운명 앞에서 체념적 자기 합리화가 아닌 적극적인 삶의 태도를 뜻한다.
자신의 운명이나 삶에 대한 긍정을 통해 허무를 극복하는 긍정의 삶을 주장한다. 주어진 운명에 무조건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운명에 대한 긍정과 사랑을 통하여 창조적으로 자신의 운명을 열어가는 사랑의 삶을 담고 있다. 자신의 삶을,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운명과 역사를 바꿀 수 있다. 비록 니체의 주장에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삶을 열어가는 고리로 사랑을 말한 점에서 종교적 가르침과 그리 멀지 않다.
아모르 파티, 자신의 운명과 역사를 긍정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새로운 삶과 새로운 역사를 만든다. 요즘 온갖 난관을 헤치고 새로운 역사, 민족의 새로운 운명을 개척하려는 우리 한민족이 그리고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사랑하는 가운데 행복한 삶을 열어가려는 우리 모두가 꼭 마음에 담아 서로 나눌 인사가 있다면 바로 이 말이 아닐까 한다. “아모르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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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석 성공회 워싱턴한인교회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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