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년 전에 통일부장관을 했던 정세현 장관을 워싱턴에서 뵌 적이 있었다.
남북한 문제나 통일문제로 좌담을 했는데, 그는 ‘우리민족은 참으로 복이 없는 것인지 운이 없는 것인지...‘ 하고 말끝을 흐렸던 일이 생생하다. 1994년 7월 25일 평양에서 열기로 한 남북정상회담을 불과 보름 앞두고 북한의 김일성이 7월 8일 묘향산에서 사망한 것이다. 공교로운 것인지, 정말 운이 나쁜 것인지 그랬었다.
최근의 한반도의 국제외교상황은 어지러울 정도를 훨씬 뛰어넘는다. 극적, 혹은 극반전, 반전의 반전이다. 그만큼 산적해 있었고, 해결할 일들이 많았었다고 보는 게 맞다. 서글픈 현실이지만 한반도 문제가 남북한, 한민족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대다수 국민들이 이제는 ‘확연하게‘ 느끼는 것 같다.
4.27정상이 만나고, 뭔가 잡힐 듯 보이지만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고 뭐하나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의 연속이다. 외교에는 상대방이 있다. 필자의 눈으로는 그동안 남쪽 한국과 미국의 관계는 외교 상대가 아니었다. 아니 상대가 될 수도 없었고, 제대로 외교상대가 되어 보려고 했던 시기도 미미했었다. 그럼 뭐였을까 ?
여기에서 잠깐 한미 양국의 대통령파트너를 비교해 보자. 시기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박정희와 닉슨과 존슨(공화당), 전두환과 지미 카터(민주당), 노태우와 레이건(공화당)까지는 한국이 ‘군부독재’시절이었으니 남북이 서로 갈라 서 있어야 ‘전쟁’이라는 요술방망이 하나만으로도 통치하기가 편한 소위 ‘적대적 공생관계’ 였던 시절이었다. ‘통일, 남북대화’같은 것은 실질적 국정의 순위에 중요하지도 않았다. 그 이후로도 김영삼과 클린턴(민), 김대중과 아들 부시(공), 노무현과 아들부시(공), 이명박, 박근혜와 오바마(민), 문재인과 트럼프(공)가 각각 서로 상대해야 하는 리더였다. 한국과 미국의 민주당이 당명이 같다고 해서 정체성이 비슷할 것이라는 것도 이번 미국 민주당의 태도를 보니 편견이라는 것이 확실하게 드러났다. 다만 상대적이기는 하지만 정치적 패러다임의 ‘진보와 보수’라는 정체성을 억지로라도 맞춰보겠다 한다면 그간 양국 리더는 이상스러울 정도로 서로 어긋나 있음을 알 수가 있다. 한국의 탄핵정국이던 2016.11월에 치러진 미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트럼프에 대한 한인유권자 지지율은 14%에 불과했다. 그런데 트럼프가 당선되었다. 미국도 놀랐지만 한국은 더 놀랐다. 트럼프의 당선은 한국, 특히 남북문제로 좁혀보면 낙담이 아니라 절망적일 수밖에 없었다. 전쟁밖에 답이 없을 지경이었다. 실제 말로 핵폭탄이 날아 다녔다.
‘한민족은 무슨 잘못이 있기에 이다지도 운이 없는 것인가?’
지구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남극과 북극이다. 손바닥에 놓인 나침반의 양끝이 다시 만나려면 4만 킬로미터 지구 한 바퀴를 돌아와야 한다. 물리학에서는 도저히 통할 수도 함께할 수도 없는 불가능의 대명사가 ‘극과 극’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극은 서로에게 꼭 필요하다. 상대가 없는 서로는 존재하지도, 존재 자체도 무의미하다. 그래서 ‘초극(超極)’이라는 인문학적 사유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들이 요즈음에 ‘한국’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 초극 접점을 찾기 위한 엄청난 에너지의 충돌들이니 어지러울 수밖에 없다. 거의 65년간 어느 누구도 풀지 못했던 일이다.
여기에는 국가라는 시스템이라던가, top down이거나 bottom up식 의사결정, 그런 것이 무의미하다. 그래서 당대의 관념이나 외교, 정치논리로는 상상자체가 넌센스일 수도 있다.
구태어 있다면 가히 ‘초인(超人)들, 수퍼맨‘만 3명이 있다. 이 3명의 수장들은 따지고 보면 적당히 국내문제나 다독이며 임기 지나버리면 그만일 수도 있고, 가만히 앉아있어도 누가 별로 시비할 이유들도 별로 없다. 관계된 세 나라뿐만 아니라 수많은 나라들에서는 국민들이 아무리 뭘 원한다고 해도 리더가 반드시 그렇게 하는 경우보다는 그렇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인 것이 세상이니 그렇다는 것이다.
전혀 어울리지도, 같을 수도 없을 것 같은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불가능할 것 같은 ‘초극의 접점’을 이룰 것만 같은데, 서커스 같기만 하다. 지금 전 세계의 이목이 한민족에게 있다. 이는 감히 유사 이래 처음일 것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The devil is in the details)’ 그것은 아무리 훌륭한 건축물이라도 아주 조그만 흠 하나로 인해 흉물로 변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서커스가 아슬아슬함이 없으면 서커스가 아니다. 앞으로도 언제, 누가 이런 거대한 흐름에 끼어들게 될 지는 오직 신만이 안다. (God is in the details, Van der Rohe)
‘한반도 운전자론‘을 주창한 문재인 대통령을 가진 한민족은 오랜 세월 응축되었던 ’운(運)도 복(福)’도 갖게 되지나 않을까 조마조마하지만 지금은 오직 100년 전에 민족의 흥운을 걸었던 독립선언서의 마지막 외침이라도 붙들고 있고 싶을 따름이다.
‘착수(着手)가 곧 성공이라!’
<
강창구 사람사는 세상 워싱턴 메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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