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18 카파 미술상 수상작가 로버트 이
▶ 한인 정체성과 일맥상통, 조롱박 이용한 작업 관심
2018 카파 미술상을 수상한 로버트 이 작가.
로버트 이의 ‘Material Peformance II’ .
로버트 이의 믹스드 미디어 작품 ‘Second Bird of Passage’(2013).
2018 카파(KAFA) 미술상 수상작가 로버트 이(35·한국명 이진호)는 조각가이자 비주얼 아티스트로 활동하는 다원예술가(Interdisciplinany Artist)다. 코니시 칼리지 오브 아츠의 부교수로 조각과 비주얼 아트를 강의하고 ‘아트 인 아메리카’ 등 유명 미술잡지에 글을 쓴다. 이미지를 언어로, 오브제로 표현하는 그는 스스로를 사고 수집가이자 사고가 일어나면 이를 구경하기 위해 속도를 늦추고 천천히 지나가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조각가로 시작된 로버트 이의 작품 세계
“조각은 설명하지 않고도 사실을 드러낼 수 있다. 그것은 당신과 같은 공간에 존재하며 동일한 물리적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따라서 어떤 논증보다는 의지에 가까운 것을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글의 경우, 중력이나 햇빛, 습기, 열과 같은 물리적인 요인들이 적용되지 않기에 당신이 직접 인과관계를 드러내야 한다. 결과적으로 조각에서라면 다소 불필요할 방식으로 세계를 꾸며내는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예일대에서 문학을 전공하던 그는 목공장에서 근로장학을 하다가 경험한 2시간의 아트 논쟁으로 인해 조각가의 길에 들어섰다. 조각으로 미술학 학사를 마친 그는 컬럼비아대 비주얼 아츠 대학원에서 뉴 장르를 전공한다. 그에게 조각은 글쓰기를 대체하진 못하지만 적어도 글로 쓰지 못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로버트 이의 조각(오브제)에는 ‘박’(Gourd)이 등장한다. 조롱박을 작품의 한 요소로 사용한 ‘미상의 게임’(Unknown Games) 시리즈부터 뱀박 등 박과 식물을 철제에 배치한 ‘무인의 공간 점령’(Occupations of Uninhabited Space) 시리즈까지 덩굴성 한해살이풀 식물인 박은 날 것 그대로, 혹은 속을 파내고 남은 껍질로 작품에 존재한다.
2010년 동아미술제 당선작 전시인 일민미술관 5인전 ‘당신과 나의 삶이 이항할 때’(The Moment of Transposition)에 ‘미상의 게임 #5와 #21’를 출품했던 그는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의 정체성과 그에 따른 경험이 껍질과 조롱박에 관심을 갖게 했다고 밝혔다.
껍질은 로버트 이에게 ‘코리안 아메리칸을 대표하는 위치에선 자신, 대표자로서의 의무감에 사로잡혀 스스로의 의견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표현하게 되는 다름을 표현하기 꺼리는 그의 행보’다. 그러나 조롱박은 다르다. 그에게 조롱박은 자연스러운 동시에 문화적으로 특정하고, 익명의 것이며 추상적이다. 조롱박은 전 세계 어디서나 자생하는 토착식물이고 인간에 의해 재배된 최초의 식물들 가운데 하나이며 어떤 면에서는 아주 먼 고대 기술의 한 형태이다. 무엇보다 그는 조롱박이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것’(alreadymades)임에 주목한다.
■사진과 퍼포먼스를 결합하는 다원예술가
그는 자신의 아트에 영향을 미친 작가 중 하나로 브루스 노먼(Bruce Nauman)을 꼽았다. 브루스 노먼은 조각과 비디오로 동물과 인간의 신체 일부에 기초한 이미지를 사용해 심리적·물리적으로 불안하게 하는 주제들을 탐구하고 양식보다는 과정이나 행위가 미술작품을 변형하거나 구성하는 방식에 집중한 혁신적인 작가다.
2003년부터 10년 간 로버트 이가 작업해온 행위예술(퍼포먼스) ‘동등학의 역사’(History of Equivalentistics)를 보면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많은 물음표를 던지게 한다. ‘동등학’은 작가가 서울 창덕궁과 대모산에서 6주, 길게는 석 달이 넘게 이어간 행위예술이다. 카메라를 들고 나가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그 자신의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장소에서 자신을 찍은 사진들을 반복적으로 인화해 그의 기준에 동등한 사진이 나타나면 작업을 종료하는 식이었다. 창덕궁 사진은 327번째에서, 대모산 사진은 631번째에서 동등성을 만났다.
이 작업은 대만 작가 테칭 시에(Tehching Hsieh)의 ‘1년 퍼포먼스’(one year performance)처럼 시간과 관련된 퍼포먼스이지만 접근과 결론은 판이하게 다르다. 1년 동안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자신의 얼굴을 찍어 그 사진들을 방안 가득 붙였던 테칭 시에의 프로젝트는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도시인에 대한 탐구였다.
그러나 로버트 이의 작업은 패턴을 지각하는 합리성과 언제, 왜 패턴이 시작되고 끝나야 할지를 선택하는 비합리성 사이의 역학관계 연구이다.
로버트 이는 “예술가의 음성은 일상 패턴 속에 문득문득 그 존재를 드러낸다. 우연(Chance)은 모든 것을 서로 충돌시키며 불러모으고 정체성(Identity)은 이러한 충돌을 계획하고 형상화하며 필요할 경우 내러티브를 부여하거나 충돌하는 것들 사이에 거리를 두어 분리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조각가 로버트 이
1982년 이철규·임성씨 부부 슬하에 뉴욕에서 태어나 롱아일랜드에서 자랐다. 2004년 예일대학교 미술학과를 졸업했고 2010년 컬럼비아 비주얼 아츠 대학원에서 뉴 장르로 미술학 석사를 마쳤다.
디달루스 재단(Dedalus Foundation) MFA 펠로우십과 로터스 재단 어워드 후보에 올랐고 2010년 믹스드 미디어 설치 및 비디오 작품 ‘에브리맨 아머’(The Everyman Armor)가 뉴욕 피셔 란두 센터와 네델란드 암스테르담 전시에서 주목을 받으며 2011 창원조각비엔날레에 초청됐다.
‘미상의 게임’(Unknown Games) 시리즈로 2010 동아미술제 전시기획공모에 당선, 서울 일민미술관에서 당선작 전시를 가졌고 2013년 서울 옵시스 아트에서 첫 개인전 ‘흉내내기’(Mimicry)를 선보였다. 2015년 시애틀 글래스박스 갤러리 개인전 ‘겨울 밀’(Winter Wheat), 2016년 포틀랜드 멜라니 플러드 프로젝트 개인전 ‘제발, 명확하게’(Disambiguation, Please)등 활발한 전시활동을 하고 있다.
2014년부터 코니시 칼리지 오브 아츠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그는 컬럼비아 대학원 시절부터 5년 간 연구해온 과학자와 아티스트, 환경론자, 변호사, 언어학자의 협업 프로젝트 ‘1만년 경고 시스템’(10,000 Year Warning System), 숙박공유사이트 ‘에어비앤비’의 개념에 미술품을 포함시키는 얼터너티브 아티스트 프로젝트 ‘제니아’(Xenia) 등으로 아티스트 콜라보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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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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