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학위를 3개나 딴 데이빗 구돌은 호주의 최고령 과학자다. 지난달 104세 생일을 맞았다.
호주 멜버른대학 선임교수였고, 미국의 UC-버클리와 영국의 레딩대학 등에서도 강의한 생물학계의 권위자다. 그가 지난 주 휠체어에 앉아 스위스로 날아왔다. 관광여행이 아니었다. 회생불능의 말기환자도 아닌 그가 이틀 전 그곳에서 존엄사를 택해 세상을 떠났다.
노인이 “죽고 싶다”는 건 노처녀가 “시집가기 싫다”거나 장사꾼이 “밑지고 판다”는 말과 함께 유사이래 공인된 3대 거짓말이라는 우스개가 있지만 구돌 노인의 “너무 오래 살았다”는 한탄은 빈말이 아니었다. 단지 기력이 쇠약할 뿐인 그는 모국에서 빨리 생을 마감하고 싶었지만 허사였다. 호주에선 치료불능 말기환자들의 존엄사조차도 불법이기 때문이다.
존엄사는 시한부 생명의 환자들이 본인 결정으로 의사의 극약처방을 받아 목숨을 끊는 행위다. 벨기에,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캐나다 등과 미국의 워싱턴주, 오리건주 및 워싱턴DC가 허용하고 있다. 한국도 지난 2월부터 일종의 존엄사법인 ‘연명의료법’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말기환자가 아닌 외국인 자원자에게까지 이를 허용하는 나라는 스위스뿐이다.
구돌은 104세 생일에 “장수해서 행복하시냐”고 기자가 묻자 “천만에. 이 나이가 되도록 살아있는 게 유감이다. 죽는 것이 슬프지 않고 죽지 못하는 게 슬프다. 이 땅에서 죽지 못하고 머나먼 스위스까지 죽으러 가야하는 게 슬프다”고 말했다. 공개된 자살 자원자인 그는 지난 2일 스위스 바젤로 떠나면서 가족과 친지들에게 정식으로 사별인사까지 했다.
호주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존엄사법을 제정했었다. 1995년 북부 준주(Nothern Territory) 정부가 관련법을 제정했지만 2년 뒤 중앙국회가 이를 폐기시켰다. 이어 지난해 빅토리아 주정부가 존엄사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내년 6월에 발효될 뿐더러 외국처럼 6개월 미만의 시한부 환자들만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어차피 구돌 박사는 기대할 수 없는 처지였다.
호주정부로부터 공로훈장을 101세 때 받은 구돌은 다음 해인 2016년 오래 동안 명예연구원으로 몸담아왔던 에디스 코완대학 생태연구소로부터 “방을 비워달라”는 통보를 받고 갑자기 쇠약해졌다. 시력이 떨어져 운전면허증도 회수 당했다. 독거노인인 그는 지난달 아파트 방에서 넘어진 후 이틀간이나 그대로 누워있었다. 그렇게 그의 마지막은 시작됐다.
구돌이 한 세기 이상을 건강하게 산 것은 순전히 일 덕분이라고 그의 딸은 말했다. 그에겐 일이 곧 취미요 정열이었기 때문에 일거리가 없어지자 삶의 의욕을 상실했고, 버스와 기차를 세번 갈아타고 일주일에 나흘 연구소에 출근했던 사람이 1년 만에 휠체어에 앉게 됐다고 딸은 덧붙였다. 구돌 본인도 할 일이 없었던 지난 2년이 가장 힘들었다고 술회했다.
바젤에 도착한 구돌은 10일 기자회견을 열고 “드디어 내일 죽게 돼 기쁘다. 내 또래는 물론 나이가 더 적은 사람들도 자신이 원할 때 죽을 수 있는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 나는 더 살고 싶지 않고 더 살아야할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베토벤 9번 교향곡의 ‘환희의 송가’를 독일어로 씩씩하게 노래했다. 그는 어제 독극물 주사를 맞고 세상을 떠났다.
구돌은 자기 이름(Goodall)대로 ‘만사 OK’이었겠지만 스위스는 뒤숭숭하다. 존엄사를 말기환자들에만 한정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스위스 제2도시인 아름다운 바젤이 ‘죽음의 도시’가 됐다는 개탄도 있다. 하지만 의료계 일각에선 세상의 80세 이상 쇠약한 노인들이 더 많이 찾아오도록 존엄사 예약 시스템을 간편하게 만드는 방안을 강구중이다.
구돌의 기행은 ‘인생백세 시대’에 일어날 서글픈 세태의 예고편일 수 있다. 백수(白壽, 99세)와 상수(上壽, 100세)를 넘기는 노인이 많아져도 대부분은 ‘구구팔팔이삼사’와 거리가 멀고, 병이 없어도 골골한다. 존엄사 대상이 스위스처럼 확대될 터이다. 늙는 것도 서러운데 주변 사람들로부터 “왜 구돌처럼 서둘러 가지 않느냐”는 눈총을 받을까봐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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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시애틀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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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총 4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제목이 부정적이네요. 강제로 백세시대에 스스로 생을 마쳐서 주위사람들에게 좋은일한거라고 봐야지요. 세상이 바뀌었어요
찬성이 당연함
죽고 사는 일이 정말 자신의 뜻대로 될까요?
법은 우리를 편안하게 살수 있도록도 하는데, 내 맘대로 죽지도 못하게 하는건 법의 맹점인지, 종교의 횡포인지,정부의 지나친 간섭인지.., 내 맘대로 죽음을 결정 하는걸 전적으로 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