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선우 변호사
4월 28일 미시간주에서 골수 지지자들에게 연설하던 트럼프 대통령은 군중들이 “노벨, 노벨”이라 환호성을 지르자 흡족한 표정이었다. 하기야 문재인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북미회담 결과로 한반도의 비핵화가 현실이 되면 트럼프가 노벨 평화상을 받아야 된다는 덕담을 들은 다음이었으니까 기고만장했음직도 하다.
그러나 트럼프·김정은의 정상회담이 많은 이들의 회의에도 불구하고 성공한다 해도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취임연설에서 미국의 목표라고 공언한 “항구적이며 검증된,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PVID)가 실천에 옮겨지자면 적어도 1년 이상, 몇 년이 걸릴 것이기 때문에 노벨상 운운은 시기상조다.
그런데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아니 전 세계적으로 정치인으로서는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사람은 26대 시어도어 루즈벨트(공화)였다. 국내 정치에 있어서는 대기업들의 독과점을 규제하는 친서민적 개혁정책을 썼지만 외교 정책에 있어서는 쿠바를 둘러싼 스페인과의 전쟁 이후 필리핀을 미국 영토로 만드는데 앞장을 섰기에 제국주의자라 비난을 받았던 사람이다. 그의 노벨상 선정 발표가 있자 노르웨이의 좌파는 그를 “군사력에 미친” 제국주의자라고 불렀다.
어쨌든 루즈벨트의 노벨상은 러일전쟁(1904-1905)의 강화조약 체결에 중재역할을 한 공로 때문이니까 한반도와 관계가 있다. 일본이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후 대한제국을 넘보던 그 시절 러시아는 고종황제의 ‘아관파천’ 사건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조선반도에 꽤 영향력이 있었다.
1904년 2월 러시아가 만주와 조선 땅을 러일 영향권으로 양분하자는 일본의 계획을 거부하자 일본이 중국 땅에 있는 러시아의 함대기지 뤼순항구를 급습하여 시작된 전쟁에서 러시아가 대패한 결과 루즈벨트의 제안으로 러일 양국대표들이 뉴햄프셔주의 포츠머스에서 만나 평화조약을 체결한다. 그 결과 중 하나가 조선 전체에 대한 일본 제국의 영향권에 대한 국제적인 인정이었다.
일본은 영향력 정도가 아니라 1910년에 한일합방으로 한반도를 먹어치웠다. 그리고 한민족의 해방은 1945년 세계 2차대전에서 일본이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갑자기 닥쳐왔다. 히로시마에 원자탄이 투하된 지 이틀 후에 소련은 일본에 대해 선전포고를 한다. 한반도에 가까이 있던 소련 군대의 급속한 한반도 진입을 우려한 미군의 딘 러스크(후일 국무장관)와 찰스 본스틸(후일 주한 유엔군 사령관) 대령이 8월10일 38선을 그어 북쪽은 소련군대가 진입하여 일본군 무장해제를 하게하고, 남쪽은 미군이 진주하도록 제안한 것이 73년 동안 고착됐다.
그동안 북쪽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세계 유일무이한 3대 독재 아래 기본 인권부재의 대명사처럼 되었다. 반면 남한은 상당기간 군사독재를 겪었지만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해 후진국들 중 선진국이 된 제 1의 사례로 꼽힌다.
김정은이 정말로 핵무기를 포기하고 북한 인민들의 생활을 향상시키며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는데 기여한다면 얼마나 좋은 일일까? 그러나 그의 고모부와 친형에 대한 잔인한 제거방식과 연설 도중에 졸았다는 불경죄로 군 간부를 처형시킨 전력으로 보면 그럴 것 같지 않다.
최악의 시나리오 중 하나는 문재인 정부가 김대중 노무현의 본대로 북한에 통 큰 경제원조를 해주어 김정은의 정권을 영속화시킬 뿐 아니라 한미동맹을 훼손시켜 미군이 한국을 떠나게 하는 가능성이다. 그리되면 남한 사람들은 김정은에게 끌려 다니는 신세가 될 것이다.
19세기 말 열강들의 각축장이었던 한국의 지정학적 현실은 여전하다. 중국은 미국과 동맹관계 아래서의 한국통일을 결사코 반대할 것이다. 북한이 완충지대로 필요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러시아는 한반도를 러시아 원자재의 수출통로로 보고 있다. 미국은 중국과의 경쟁에서 한국의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미국식 개발 모델의 모범으로 지적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트럼프가 대통령으로서의 자질 부족에도 불구하고 김정은과의 회담 후 한반도 평화정착으로 노벨상을 받을 수 있다면 거의 기적 같은 일일 것이다. 어느 칼럼니스트는 트럼프가 일생동안 읽은 책들의 숫자가 루즈벨트가 저술한 책 숫자(26권)에도 미달할지 모른다고 비꼬았다. 전혀 준비가 안 된 대통령에게서 기적을 바랄 수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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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선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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