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익숙한 옛말로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사자성어가 있다. 이 말을 되짚어 보면 호랑이에게서 귀한 것은 가죽, 사람에게서 귀한 것은 이름, 평판 혹은 명예라는 의미가 된다. 불의와 타협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담겨있다.
그렇다면 나는, 우리는 죽어서 무엇을 남길까? ‘이름’을 남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유산’을 남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은 ‘물건’을 남길 것이다. 집안 구석구석에 들어찬 물건들, 평생 살면서 사들이고 사용하고 사랑했던 물건들이다. 그런데 모든 물건은 한때 아무리 좋은 것이었다 해도 용도폐기 되면 쓰레기, 아마도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남기게 될 것이다.
최근 월스트릿 저널에 ‘살림규모 줄이기의 어려움’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LA 교외의 부촌 롤링 힐스에 살던 60대 중반 부부가 남가주의 대표적 은퇴 커뮤니티인 실비치의 작은 집으로 이사하면서 겪은 경험을 소개했다. 4,080 평방피트의 넓은 집에서 30년 동안 살면서 유지해온 살림의 규모는 가히 어마어마했다. 방마다 벽장마다 서랍마다 문을 열기가 무서울 정도로 쏟아져 나오는 물건의 산사태 속에서 쓸 것, 버릴 것, 기부할 것을 분류하고 정리하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다.
베이비붐(1946년~1964년 생) 세대가 은퇴연령에 접어든 후 다운사이징 즉 살림규모 줄이기는 미국사회에서 자주 이슈로 부각된다. 7,500만 명이라는 거대한 인구집단이 모두 ‘빈 둥지’ 연령이고, 절반은 은퇴 연령이니 다운사이징은 단골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한인사회도 비슷해서 70년대 80년대에 이민 온 세대가 은퇴를 맞으면서 집을 줄이는 가정들이 많다. 자녀들이 모두 대학에 가거나 취직해서 독립하고 나면 학군 좋은 지역의 넓은 집은 더 이상 필요가 없다. 주거비용도 줄이고 생활도 간편하게 할 겸 이사를 하는 부부를 주변에서 자주 본다. 출퇴근 편한 곳으로 옮기는 부부도 있고, LA 한인타운으로 이사하는 부부도 있고, 실비치나 라구나 우즈 등 은퇴 커뮤니티로 들어가는 부부들도 있다.
이사하는 곳은 달라도 모두가 거치는 통과의례는 살림 정리. ‘우리 집에 이런 물건이 있었나?’ ‘언제 산 거지?’ ‘이게 여기 있었네!’ … 하며 들여다보는 것은 그나마 이사 준비의 초기단계이다. 나중에는 끝도 없이 밀려나오는 물건들에 질려서 일일이 살펴볼 것도 없이 벽장 안 상자들을, 서랍 안 내용물 전체를 그대로 대형 쓰레기통 안에 쏟아 붓게 된다. 그리고는 생각한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물건들이 집안에 쌓여있었을까.
집안에 물건이 산더미인 이유는 첫째 많이 사들였기 때문이고, 둘째 도무지 버리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물건이 귀하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 전 세대만 하더라도 물건은 필요에 의해 장만하고, 장만한 물건은 애지중지 아끼고 고쳐가며 쓸 수 없을 때까지 사용했다. 사람이 ‘소비자’로 지칭되는 소비의 시대에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구매하지 않는다. 새 것이니 구매한다. 자고 나면 나오는 신상품들 앞에서 안 사면 시대에 뒤떨어진 듯 경쟁적으로 물건을 사들인다.
그 결과는 평균 2,422 평방피트의 집안에서 30만개의 물건을 비축하고 산다는 미국 가정의 일반적 모습이다. 그도 모자라서 자동차 2대용 차고를 가진 가구 중 1/4은 차고에 차를 대지 못한다. 물건들이 들어차 있기 때문이다.
물건들이 넘치게 많은 데는 ‘절약’ 정신도 한몫한다. ‘하나 사면 하나 공짜’ ‘50% 세일’ 광고를 보며 안 사면 손해일 것 같아서, 돈을 아낄 절호의 기회 같아서, 당장은 필요 없지만 언젠가는 필요할 테니 일단 사두고 잊어버린 물건들이 셀 수 없이 많다.
그런가하면 한때 기쁨이 되어준 물건들이 있다. 삶의 중간 중간 행복한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기념 삼아 간직하다 보면 이 또한 양이 엄청나다. 애정이 담긴 물건들을 버린다는 것은 과거의 소중한 기억을 버리는 것 같아서, 개인적 역사를 끊어내는 것 같아서 그냥 수십년 간직하게 된다. 결혼한 자녀의 초등학교 성적표나 상장을 보관하는 식이다.
물건들은 그렇게 산을 이룬다. 그리고는 애착 때문에, 엄두가 안 나서, 정리를 미루고 미루다 보면 최악의 경우, 죽어서 쓰레기를 남기는 사람이 되고 만다.
살림규모를 줄이면 삶은 그만큼 홀가분해진다. 노년에는 좀 다르게, 새롭게 살아보면 좋겠다. 물건들에 끌려 다니며 물건들에 둘러싸여 사는 삶은 경험했으니 이제는 물건들을 덜어낸 삶을 살아보는 것이다. 가능한 한 소유를 줄이고 꼭 필요한 물건만 가지고 텅 빈 공간을 즐기는 삶이다.
3평 넓이 작은 방에서 수도했던 프란체스코 성자의 가난, 법정 스님의 무소유까지는 아니더라도 청빈한 삶의 가벼움을 맛볼 수는 있을 것이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박경리 유고 시집)는 말을 따라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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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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