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 존재는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존재(存在/being/existence). 사람이 가지는 존재의 의미는 영어 Being에 가깝다. 세상에 나란 존재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세상이 존재할까. 존재한다. 나는 태어나지 않아 세상을 모를 뿐이겠지. 그러나 세상은 나 없이도 존재한다. 자신만 세상에 없을 뿐이지 타자는 존재한다.
그러나 인식론(認識論/epistemology)적인 입장에서 보면 내가 없다면. 즉 내가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나도 없고 세상도 없고 타자(他者)도 없다. 그러므로 태어나지 않은 존재는 존재 자체가 없을 뿐만 아니라 세상도 없고 우주도 없다. 한 마디로 무(無/nothingness)다. 무의 상태. 태어나기 전, 내가 없는 상태일까.
지난 4월23일 36년 된 지인이자 친구와 같은 한 사람을 병문안 갔었다. 1982년 교회에서 처음 만났었다. 롱아일랜드에 위치한 유대인 병원. 병실을 찾았다. 마침 간호하러 병원에 있던 부인이 병실엔 없었다. 병문안 갔던 일행이 그가 누워있는 모습을 보고도 몇 사람은 그가 아니라고 했다. 병실을 잘못 찾았다는 거다.
그만큼, 그에겐 그가 건강 했을 때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얼마 후 그의 부인이 돌아와서야 그가 우리가 병문안 간 사람임을 확인했다. 그는 지난 해 9월 위암 4기의 진단을 받고 수술은 못하고 항암치료를 받는 중이었다. 우리는 그의 회복을 위해 간절하게 기도하고 돌아왔다. 5월1일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왔다.
그를 병문안하고 돌아온 지 9일 만이다. 허망하다. 그를 병문안 했을 때의 그의 모습이 지금도 뇌리를 스치고 있다. 70을 갓 넘은 그. 할 일을 많이 남겨 놓고 그는 훌쩍 떠나 버렸다. 그의 살아있는 존재는 앞으로 더 이상 이 세상에선 볼 수 없게 됐다. 사람이 세상에 올 때는 순서가 있어도 갈 때는 순서가 없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 사르트르는 존재를 두 가지로 구분했다. 돌멩이와 같은 존재. 즉 자신도 타자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존재다. 둘째는 자기 자신을 의식할 줄 아는 인간과 같은 존재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나란 존재는 어떤 존재인가, 혹은 나란 존재는 왜 이렇게 살아가야만 하는가, 등등.
인간은 자신만 의식하는 게 아니라 타자도 의식한다. 그리고 선택의 자유를 누린다. 선택은 자신만을 위한 것일 수 있고 타자를 위한 선택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죽음은. 죽음은 한 인간, 즉 한 개인의 의식이 사라지는 무(無)의, 무념(無念)의 상태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죽음 앞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냥 받아 들여야 한다.
부인의 말이었다. 남편은 그동안 대장내시경은 받았는데 위내시경은 한 번도 검사를 안 했단다. 위암은 통증이 없다. 위암 4기가 될 때까지도 전혀 증세를 몰랐다고. 그가 죽었다고 그의 존재가 사라진 걸까. 육적인 존재는 사라진다. 그러나 가족들과 친지들의 마음 안에는 그가 그대로 존재하게 된다. 또 신앙적인 면에선 어떨까.
종교와 믿음을 가진 신앙인인 경우. 그의 존재는 무가 아닌 다른 세상의 상황으로 들어간다. 기독교에선 영생(eternal life), 불교에선 해탈(解脫) 아니면 윤회(輪回)의 생으로 들어간다. 영생이든 윤회든 이미 존재했었기에 다가오는 또 다른 존재로의 변화이다. 그렇다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영생도 윤회도 없게 된다. 무(無)다.
걸어 다니기만 해도 행복한 존재. 그를 병문안하고 돌아오면서 내내 생각하는 존재의 의미이다. 그처럼 건장하고 건강했던 그였었다. 그런 그였는데. 어떻게 그리도 빨리 갈 수가 있을까. 살아있음에 감사해야 할 존재. 아직도 건강함에 감사해야 할 존재. 위내시경을 받은 지 오래 된 사람들. 서둘러 검사를 해야겠지.
비잉(Being)은 살아있음이다. 즉 존재 자체다. 세상에 태어났기에 존재가 성립된다. 인간으로의 존재 자체는 유일무이(唯一無二)한 하늘에서 주어진 선물, 은혜(grace)와 같은 거 아닐까. 살아있음. 언젠가는 떠나야 할 존재의 머무름이다. 데카르트의 말이다. “코기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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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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