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대법원의 보수파인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가상 질문을 던졌다 : “어느 날 시리아인들이 생화학 무기를 들고 미국에 입국한다는 100% 확실한 정보가 입수되었다. 그들은 수많은 미국인을 죽일 수 있다. 대통령은 그날 시리아인들의 입국을 금지시킬 수 있는가?”
진보파 대법관 엘레나 케이건 대법관도 물었다 : “극렬한 반유대주의자로 유대인에 대해 온갖 험담을 해온 미래의 한 대통령이 취임한 후 이스라엘 국적자들의 미 입국을 금지시켰다고 가상해보라.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연방대법원에 선 트럼프 대통령의 첫 이민정책 케이스에 대한 구두심리가 열린 지난주 한 시간여에 걸친 질의응답은 보수와 진보의 이념 대결이 물밑에서 소용돌이치며 뜨겁게 전개되었다.
트럼프의 ‘입국금지 반 이민 행정명령(travel ban)’의 15개월 법정투쟁이 이제 막바지 단계에 들어섰다. 대법원의 이번 회기가 끝나는 6월 말 최종 판결만을 남겨 둔 현재, 이 긴 여정은 트럼프의 승리를 향해 가는 듯 보인다.
‘반 이민’을 대표공약으로 내세웠던 대선후보 트럼프가 당선된 후 취임 첫 주에 발동시킨 입국금지 행정명령은 그동안 미숙한 행정, 여러 건의 소송, 의회와 군 당국과 우방 및 여론의 압력에 밀리는 우여곡절 끝에 다각도로 손질되면서 몇 차례 수정을 거듭했다. 대상 국가도 소폭 바뀌었고 대상자들의 범위도 축소되었다. 그러나 주 대상이 무슬림인 것은 여전하다.
이번 대법원에 올라온 ‘트럼프 대 하와이 주’ 케이스는 최신 버전인 3차 입국금지 행정명령에 대해 하와이 주가 제기한 위헌 및 현행법 위반소송이다. 3차 금지령의 입국 금지 및 제한 대상국은 이란, 리비아, 시리아, 예멘, 소말리아 등 무슬림 5개국과 북한, 베네수엘라로 1차 때의 이라크와 수단이 빠지는 등 조금 바뀌었다.
1차 금지명령 발동 직후 법정투쟁에 돌입한 반대진영의 승리 행진에 제동이 걸린 것은 수정을 가한 2차 명령의 효력을 연방대법원이 지난해 6월 조건부로 인정하면서였다. 그 후 트럼프는 9월에 북한과 베네수엘라를 포함시키고 법적 보호막으로 내용을 상당부분 완화한 3차 금지명령에 서명했다. 하와이 주가 이에 소송을 제기, 하급법원에서 일부 집행중지 명령을 받아냈으나 행정부의 요청으로 12월 대법원이 다시 개입, 3차 금지명령의 효력을 인정하고, 최종 판결이 나올 때까지 전면 시행을 허용했다.
이번 소송의 핵심 쟁점은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 국가안보를 이유로 특정 국가 외국인들의 입국을 막는 것이 대통령의 합법적 권한 행사에 해당하는가? 트럼프의 행정명령은 무슬림에 대한 종교적 반감의 영향을 받은 정책으로 종교 차별을 금지한 헌법에 위배되는 것인가?
대법관들의 의견은 양분상태다. 위험한 시리아인들에 대해 힐난조의 가상질문을 던진 로버츠 대법원장 등 보수파는 대통령 권한의 합법성을 인정하는 듯 보였고 진보파 대법관들은 의회가 제정한 현행법을 거슬러 외국인들의 입국을 무한정 금지하는 대통령 권한에 의구심을 표했다.
진보파 소니아 소토마요 대법관은 “대통령은 의회가 정한 이상의 권한을 어디서 얻었는가?” 라고 행정부를 대변하는 노엘 프란시스코 법무차관을 추궁했다.
입국금지 명령이 트럼프의 무슬림 적대감에서 비롯된 종교 차별적인 위헌 정책임을 입증하려면 캠페인 때 그의 반 무슬림 발언들을 증거로 제시해야 한다. 로버츠 등 보수파들은 캠페인 발언에 무게를 두지 않는 듯 보였고 진보파들은 “대선 후보·대통령 당선자·대통령으로서 트럼프의 모든 발언이 중요하며 관련이 있다”고 말한 항소심 판사들과 의견을 같이 하는 듯 했다.
구두 심리만으로 최종 판결 결과를 단정하기는 힘들다. 대법관들은 심리 이틀 후인 지난 금요일에 일단 비공개 투표를 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 결과를 6월 말 발표 전에 알 길은 없다. 또 그 두 달 동안 막 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지도 모른다.
현재까진 트럼프의 승리가 우세하지만 하나의 변수가 있다면 그건 중도보수 앤소니 케네디 대법관이다. 양측 모두 희망을 걸 수 있는 코멘트를 남겼기 때문이다. 트럼프 측에게는 캠페인 때의 증오발언이 당선 후 관계가 없다는 말이냐고 회의를 표했고, 원고 측에게는 대통령의 국가안보 판단을 법원이 관여해야 하느냐면서 그 판단이 “대통령 아닌 법원이 할 일인가?”라고 물었다.
법적 도전을 받고 있는 트럼프의 이민정책은 입국금지 행정명령만이 아니다. 불법체류 청소년 추방유예 행정명령(DACA) 소송도 머지않아 대법원에 도착할 것이다. 다카 소송은 지난해부터 계속되어온 행정부 상대 다카 폐지 무효화 소송에 더해 이번 주엔 반대로 행정부를 상대로 다카 폐지를 요구하는 소송까지 제기되어 더욱 복잡해졌다.
다카 폐지를 무효화시키는 진보적인 제9 연방항소심의 판결과 다카 폐지 시행을 명령하는 보수적인 제5 연방항소심의 판결이 맞부딪친다면 다카 폐지의 합헌여부도 결국 연방 대법원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
입국금지 명령이나 다카의 합법성 여부에 더해 대법원이 숙고해야할 사안은 더 있다.
이민과 대통령 권한 등 행정부 영역에 어디까지 개입할 것인가. 특히 트럼프의 (반 미국적·비인도적·비효율적) ‘반 이민’ 정책을 얼마나 지지할 것인가. (2차 대전 당시 대법원이 무제한적 행정부 권한에 굴복해 일본계라는 이유만으로 미 시민들의 강제수용을 허용했던 오욕의 기록이 남아있는데…)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대법관들의 고민이 깊어지지 않을 수 없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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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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