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TV에서 가끔 방영되는 ‘불타는 미시시피(Burning Mississippi)’는 1964년 3명의 흑인인권운동가가 목사와 경찰관이 낀 백인우월주의자들(KKK)에 린치 당해 피살된 사건을 FBI 요원 진 해크먼이 수사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그레고리 펙이 주연한 1962년 고전영화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 Bird)’도 백인들의 흑인 린치를 다뤘다.
얼핏 생각하면 흑인들이 노예의 굴레를 쓰고 있을 때 린치를 당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노예 땐 소나 말처럼 팔려 다니며 죽어라 일만 했을 뿐 린치는 별로 당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은 남북전쟁으로 해방된 후 엄청난 박해를 겪었다. 패전한 남부연방 소속 11개 주의 백인들이 흑인들 위에 지속적으로 군림하기 위해 공공연히 린치를 감행했다.
린치(lynch)는 비합법적인 사사로운 형벌을 말한다. 대부분 떼거리로 이뤄진다. 예전 한국의 제 3공화국 시절 중앙정보부에 연행돼온 반정부 인사들을 기상천외의 방법으로 괴롭힌 고문 전문가들이 있었다지만, 19세기 미국 백인들의 린치는 고문 정도가 아니었다. 총살과 교수형은 기본이었다. 사람을 산 채로 나무에 매달아 놓고 발아래부터 불을 붙였다.
흑인 샘 호스(23)는 1899년 백인을 살해하고 그의 부인을 겁탈했다는 누명을 쓰고 붙잡혀 나무에 결박됐다. 린치꾼들은 2,000여명의 ‘관중’이 둘러선 가운데 그의 두 귀를 자르고, 얼굴 살갗을 벗기고, 손가락과 다리를 절단하고, 배를 갈라 창자가 나오게 한 후 그의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불을 붙였다. 호스는 “오, 주님 예수여” 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
흑인 임신부 매리 터너는 남편이 린치당한 후 항변했다가 백인 깡패에 끌려가 나무에 거꾸로 매달린 채 화형 당했다. 린치꾼들은 죽어가는 그녀의 배를 갈라 태아가 땅에 떨어지게 했다. 엽기영화에서도 보지 못할 잔인한 장면이다.
백인여성의 사진을 소지했다거나, 백인 여성의 뒤를 따라갔다는 이유로 목매달려 죽거나 공개 화형을 당한 흑인들도 있다.
린치는 당시 백인사회의 큰 구경거리였다. 여러 날 전부터 광고됐다. 당일엔 ‘행사장 행 특별 열차’가 운행됐다. 전문 사진사들이 몰려와 린치장면을 찍었고, 우정성은 이들 사진으로 우편엽서를 만들어 판매했다. 남녀노소 관객들이 희생자의 잘려나간 손가락과 성기 등 신체부분을 챙겨 기념물로 보관했다. 아프리카 토민사회에도 그런 ‘몬도카네’는 없다.
흑인 인권단체인 ‘평등정의운동(EJI)’은 1877년부터 1950년까지 전국 800개 카운티에서 백인들의 린치로 희생된 4,384명의 신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들 카운티는 대부분 남부에 몰려 있지만 흑인 150여만 명이 신변안전과 일자리를 찾아 남부 농촌지역에서 도시지역으로 떠난 1920~40년의 ‘대 이주’ 이후 뉴욕과 시카고 등지에서도 린치가 발생했다.
EJI는 미국역사의 대표적 치부이면서도 지금까지 표면화되지 않은 백인들의 린치 만행을 고발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교훈으로 삼기 위해 흑인 인권운동의 발원지인 앨라배마, 몽고메리에 ‘평화와 정의를 위한 전국 기념관’을 세워 지난 26일 개관했다.
베를린(독일)의 ‘홀로코스트 기념관,’ 요하네스버그(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 기념관’과 비슷한 성격이다.
EJI가 지난 2010년부터 1,500만 달러를 들여 6에이커의 부지에 완공한 이 기념관 안엔 관을 상징하는 800여개의 철판이 공중에 매달려 있다. 각 철판엔 린치가 발생한 카운티 이름, 희생자 이름 및 린치 이유 등이 간략하게 기록돼 있다. 위의 샘 호스도, 매리 터너도 포함돼 있다. EJI는 800개 카운티가 각각 자체 기념관을 세우도록 촉구하고 있다.
지난주 역사적 남북한 정상회담에 이어 도널드 트럼프와 김정은의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다. 북한의 린치는 악명 높다. 지난해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북한 감옥에 갇혔다가 혼수상태로 귀국해 숨졌다. 미국도 트럼프 텃밭인 남부에선 여전히 백인우월주의자들이 거들먹거린다. 두 정상이 핵무기 협상도 좋지만 양국의 인권신장부터 합의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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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시애틀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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