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에서 맛보는 남아공의 맛, 감비아
▶ 베네친, 집안 경사때 만들어 먹어, 민물고기 틸라피아 요리도 담백
감비아 식당 J.A.K에서 선보이는 아차케와 틸라피아. 틸라피아는 아프리카 동남부가 원산인 민물고기로, 기름기 없이 담백하고 비린내가 전혀 없다. <잇쎈틱 제공>
J.A.K의 램 도모다. 도모다는 땅콩버터로, 고소한 땅콩소스가 양고기 구석구석까지 배어 있다. <잇쎈틱 제공>
브라이 리퍼블릭의‘양고기 포이키’. 양고기를 갈비찜처럼 오래 끓인 뒤 옥수수를 갈아 만든‘팝’, 아삭한 코울슬로와 함께 낸다. <잇쎈틱 제공>
어릴 때 아프리카에 대한 TV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그저 마냥 멀게만 느껴졌던 기억이 있다. 풍요로운 자연 속의 원주민들, 키가 큰 나무를 향해 목을 길게 늘어뜨린 기린, 나란히 물가에서 목욕을 하는 아기 코끼리와 엄마 코끼리, 사파리 한쪽에선 지프차와 함께 사냥을 하는 사람들.
가끔 한국에서는 아프리카가 하나의 나라처럼 치부될 때가 있다. 아프리카는 54개 국가로 이루어진, 비슷하지만 아주 다양한 색깔을 뿜어내는 거대한 대륙이다.
아프리카의 북쪽 국가들은 아랍과 인접해 있어 종교적으로 이슬람의 영향을 많이 받아 음식부터 종교, 생활, 문화까지 아랍과 비슷한 점이 많이 나타난다. 왼쪽은 대서양, 오른쪽은 인도양을 끼고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이 땅은 역사적으로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포르투갈 등 유럽 국가에게 끊임없는 관심을 받아왔다. 누구에겐 인도로 가는 길목으로, 누구에겐 다이아몬드가 많은 나라로, 누구에겐 인력 자원이 풍부한 곳으로 비추어졌다. 그때의 영향이 지금 각 나라의 문화와 공식 국가 언어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오랜 기간 외부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나라들은 국가 보다는 부족을 중심으로 생활하고 있다. 식민지 시대를 통해 전통적인 문화가 많이 사라져 안타깝지만 각 나라 혹은 부족의 독특한 환경은 유럽의 문화를 재탄생시켰다.
가장 가까운 이집트도 비행기로 8,000여㎞를 이동해야 할 만큼 먼 땅이지만, 한국 어디에선가 아프리카를 경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행히도 2006년 경기 포천시에 아프리카예술박물관이 생기면서 아프리카 30개국의 예술품과 민속품들을 전시해 놓아 그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지역적으로 인접한 이웃 나라들은 서로 비슷한 모습을 보이지만 역사적 배경과 지리적 거리가 멀수록 다른 맛과 멋을 보여주는 차이를 경험할 수 있다.
어른이 먼저 수저를 드는 감비아 공화국
이태원을 찾던 사람들의 관심은 이제 경리단과 해방촌으로 점점 확대되고 있다. 그 중 경리단은 남산으로 이어지는 경리단길을 따라 주말이면 젊은 이들의 행렬이 끊이질 않는다. 경리단은 인디밴드 같은 배짱으로 자기만의 독특한 모습을 자랑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이중 아프리카의 맛을 자랑하는 ‘J.A.K’라는 간판이 유독 궁금함을 자극한다. J.A.K.는 ‘졸로프 아프리카 코리아(Jollof Africa Korea)’라는 뜻으로 아프리카의 제일 대표적인 음식 중 하나인 졸로프를 이름으로 걸고 서아프리카의 맛을 보여주는 곳이다. 감비아에서 온 지(G)와 랑카(Lanka), 두 명의 청년이 이곳의 맛을 책임지고 있다. 음악을 사랑하는 나라답게 들어서는 순간 코라(감비아의 전통악기로 20줄의 현으로 되어있으며 양손으로 현을 뜯으며 연주한다)가 감비아로 공간이동을 시켜준다.
감비아는 세네갈에 둘러싸여 있어 언어만 다를 뿐 생활부터 문화까지 비슷한 점이 많다고 한다. 영국의 영향으로 언어는 영어를 사용하고 곳곳에 영국의 문화가 보이지만 아직도 8개의 큰 부족으로 이루어져 부족의 전통과 생활방식을 존중하려 노력하고 있다. ‘감비아 공화국’하면 우리에겐 친숙한 나라 이름은 아니지만 테이블 앞에서 어른이 먼저 수저를 들어야 아랫사람이 식사를 하는 장유유서와 비슷한 예절도 있다.
건기와 우기로 나뉘지만 대체로 5~8월 정도의 기온으로 뜨거운 음식보다는 시원하거나 손으로 먹어도 뜨겁지 않은 정도의 온도로 음식을 먹는다. 더운 날씨의 갈증을 해소시키는 데는 원조(Wonjo)를 마신다. 현지에서는 바오밥 열매로 만든 바오밥 주스도 유명하지만, J.A.K에서는 히비스커스를 말린 잎에 달콤함을 더한 원조 주스를 추천한다. 여름에 시원하게 마시는 오미자 주스를 떠올리게 된다.
감비아에서 제일 먼저 먹어봐야 하는 음식은 ‘비프 베네친(Beef Benechine)’이다. 베네친은 감비아에서 부르는 명칭으로 ‘베네’는 하나, ‘친’은 냄비라는 뜻이다. 다른 국가에서는 졸로프라 불리는 음식으로, 서아프리카에 즐겨먹는 쌀 요리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감비아에서는 주 요리에 밥을 곁들인다. 베네친은 졸로프쌀에 갖은 야채와 토마토 페이스트, 향신료를 넣어서 소고기, 닭고기, 생선과 곁들여 먹는 음식으로, 놓치면 아쉬운 맛이다. 감비아에서는 축제가 있거나 집안에 경사가 있을 때, 큰 솥에 많은 양의 베네친을 만들어 가족과 함께 먹는다.
감비아의 대표적인 수출 농산품은 땅콩이다. 땅콩은 몸의 온도를 시원하게 내려줘 특히 더운 지방에서 사랑 받는다. ‘램 도모다(Lamb Domoda, 도모다는 ‘땅콩 버터’란 뜻)’는 고소한 땅콩 소스가 묵직한 양고기 구석구석까지 배어들어, 한 접시만으로도 부족함 없는 한끼가 된다.
대서양으로 흘러나가는 감비아강을 끼고 있는 감비아는 각종 해산물과 민물고기가 풍부하다. 대표적으로 틸라피아(아프리카 동남부가 원산인 민물고기)는 그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최고의 생선이다. J.A.K에서 맛보는 ‘아챠케와 틸라피아(Acheke with Tilapia)’는 담백한 틸라피아 구이에 새콤달콤한 양파 피클이 올라간다. 처음 먹어보는 틸라피아를 조심스레 한입 먹는 순간 “틸라피아 어디서 살수 있어요?”라는 질문이 바로 나올 만큼 매력적이다. 기름기 없이 담백하지만 뻑뻑함이나 비린내가 전혀 없어 감비아강에 가고 싶어진다. 디저트로 쿠스쿠스(알갱이로 된 작은 파스타)가 들어간 건강식 요거트로 마무리 하는 순간 서아프리카의 매력으로 빠져들 것이다.
소시지 부르보스, 진짜 고향의 맛
아프리카의 무지개라고 불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은 풍부한 천연 자원과 함께 원주민과 네덜란드인, 영국인을 비롯해 말레이시아, 인도 등 여러 나라에서 온 민족이 조화를 이룬 나라다. 한국의 ‘무지개’인 이태원과도 너무 잘 어울리는 ‘브라이 리퍼블릭(Braai Republic)에서 남아공의 음식을 선보인다.
브라이(Braai)는 한 마디로 바비큐다. 고기를 그릴에 구워 먹는 것으로, 남아공의 대표적인 음식 문화다. 한때 치안이 불안해 외식보다는 친구를 초대해 집에서 모이는 남아공의 문화를 반영하는 음식이기도 한다. 브라이는 고기를 굽는 그릴 기구를 뜻하기도 하는데 집을 지을 때 브라이를 실내나 정원에 설치할 만큼 브라이는 남아공 사람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문화다. 소, 돼지, 닭고기도 즐겨먹지만 양고기로 만든 ‘램찹 브라이(Lamb Chop Braai)’가 가장 대표적인 메뉴다.
브라이 리퍼블릭의 로디 반크로프트(Roddy Bancroft)와 크리스 트루터(Chris Truter)는 남아공 출신으로 각각 2001년, 2005년에 한국에 왔다. 고향의 음식이 그리웠으나 먹을 수 있는 곳이 없었던 이들은 각자의 손재주를 모아 남아공의 육가공품을 만들어 파는 서양식 정육점을 시작했다. 주 메뉴는 부르보스(Boerewors)와 빌통(Biltong)으로, 다른 나라에서는 먹기 힘든 진정한 고향 음식이다. 부르보스의 ‘부르’는 농부, ‘보스’는 소시지를 뜻하는 아프리카식 네덜란드어다. 소, 양, 돼지고기를 작게 잘라 소금, 후추, 향신료로 양념해 동물의 창자를 이용해 만든 소시지다. 집마다 만드는 레시피가 달라 여러 종류의 부르보스가 있으며 이것 또한 ‘브라이’해서 먹는다.
램찹 외에도 양고기를 맛있게 먹는 메뉴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양고기 포이키(Lamb Potjie with Pap and Slaw)’다. 양고기를 오랜 시간 푹 끓여 양념이 속속들이 밴, 갈비찜과 흡사한 음식이다. 양고기와 함께 노란색 ‘팝’이 같이 나오는데 팝은 옥수수를 곱게 갈아 만든 죽과 비슷한 음식이다. 목에서 부드럽게 넘어가고 아삭한 코울슬로(야채 절임)와도 잘 어울린다.
남아공에 남은 영국의 흔적은 ‘미트 파이’에서 찾을 수 있다. 고소한 파이 도우 안에 갈은 고기를 넣어 굽는다. 모양은 디저트 같아 보이지만 한끼로 충분한 요리다. 영국은 고기 안에 소스로 양념하는 반면 남아공에선 간단히 양념된 고기를 넣고 그레이비 소스를 따로 내므로 담백한 미트 파이를 맛볼 수 있다. 일조량이 풍부한 남아공은 와인 생산지로 주목 받고 있다. 각 나라의 요리에 어울리는 현지 와인을 같이 즐긴다면 한끼 식사가 바로 여행이 된다.
아프리카 대륙은 신비의 땅이라는 말이 맞을 것이다. 쉽게 떠나기에 너무 멀어서 우리는 아프리카인들이 우리와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하기가 쉽다. 그러나 “형제 자매들과 함께 손으로 먹으면 사랑의 상징이 된다”는 감비아 속담과 남아공인들이 브라이를 함께 즐기는 모습은 한국의 옛 식사문화를 떠올리게 한다. 아프리카는 먼 땅이지만, 같은 음식을 함께 먹는 동안엔 우리는 결코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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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드 샘플ㆍ박은선 잇쎈틱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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