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의 퍼스트레이디, 바버라 부시 여사가 17일 92세로 세상을 떠났다. 전임 퍼스트레이디, 낸시 레이건 여사가 사치스런 치장으로 유명했다면 부시 여사는 꾸밈없는 수수함으로 대조적이었다. 새하얀 머리와 주름살, 사이즈 14의 체형에 편안했고, 트레이드마크가 된 90달러짜리 모조 진주목걸이는 ‘목주름을 가리기 위한 것’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퍼스트레이디가 푸근하고 소탈한 할머니이니 인기가 높았다. 1992년 재선 캠페인 당시 부시 대통령이 클린턴 후보에게 밀리자 “바버라의 남편을 재선시키자”는 구호가 나왔을 정도이다. 그런 높은 인기의 비결에 대해 그는 특유의 유머로 답했다. “내가 늙고 뚱뚱해서 아무도 위협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는 자신에 대해 늘 편하고 당당했다.
오랜 세월 뉴스에서 멀어져 있던 그가 죽음으로 다시 존재를 드러냈다. 많은 이들이 애정을 담아 추모했다. 사회활동을 따로 하지는 않았지만, ‘여성의 무대는 가정’이었던 그 시대의 여성으로서 그는 역할에 충실했다. 대통령인 남편(41대), 대통령인 아들(43대), 주지사(플로리다)인 아들 등 가족들이 조언을 구하고 위로받기 위해 기댄 정신적 지주, 수십명 대가족을 단단하게 묶은 구심점이었다. 현명한 아내, 지혜로운 어머니, 자애로운 할머니로 존경받았다.
그리고 가족 못지않은 애정으로 그를 추모하는 그룹이 있다. 동성애 커뮤니티는 80년대 에이즈 환자들에 대한 극심한 편견과 냉대를 녹여준 은인으로 그를 기억하고 있다. 1989년 부시 대통령 취임 두달 후였다. 부시 여사는 워싱턴의 ‘할머니 집(Grandma’s House)‘을 방문했다. HIV 감염 유아 보호시설인 그곳에서 그는 아기들을 안아주고, 에이즈에 걸린 청년을 포옹했다.
에이즈 환자와 스치기만 해도 전염된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에이즈 환자는 직장에서도 부모에게서도 쫓겨나던 그때, 퍼스트레이디가 용감하게도 그들을 품에 안고 미디어들이 그 광경을 보도하면서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동성애 커뮤니티는 고마워한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 없었을 부시 여사의 생애를 아들 부시 대통령은 ‘아름다운 삶’으로, 한 손자는 ‘잘 산 삶’으로 그리고 많은 이들은 사랑과 신앙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위안을 준 삶으로 평가했다. ‘할머니’의 따뜻함으로 많은 사람들을 사랑했고, 많은 사람들에게서 사랑받은 삶이었다.
“신은 우리에게 삶이라는 선물을 주었다. 하지만 잘 산 삶을 스스로에게 선사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 볼테르의 말이다.
우리 모두 태어난 순간 똑같이 삶을 부여받지만, 살아낸 삶은 천차만별이다. 그리고 살아갈수록 느끼는 것은 조건이 삶을 규정짓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조건을 타고나면 여유롭고 너그러운 삶을 살 것 같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부시 여사의 삶에 대한 긍정적 평가들을 보고, 지금 한국을 시끄럽게 하는 갑질 논란을 보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새삼 생각하게 된다.
대한항공의 한진그룹 총수 가족들에게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들을 보면 성공과 재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행복하지 않구나’ 여겨진다. 행복한 사람들이 그렇게 사사건건 분노하고, 불같이 화를 내며, 매사가 못마땅할 수는 없을 것이다.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오는 갑질 목격담, 경험담들 중에는 과장이 섞여 있겠지만, 안하무인 저급한 언행의 절반만 사실이라 해도 인격적으로 온전한 상태라고 볼 수는 없다. 최고 환경에서 최고 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행동이라고는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한국사회를 지배해온 천민자본주의 사고방식과 배금주의가 만들어낸 기형적 특권의식, 상대방을 같은 인간으로 느낄 수 없는 이상한 불감증이 작용한 슬픈 현상이다.
‘성공, 성공’ ‘돈, 돈’ 하며 숨차게, 그악스럽게 살아온 지난 수십 년의 생활이 모두를 바꾸어 놓았다. 여기서 ‘갑’이 저기서는 ‘을’이 되고, 여기서 ‘을’이 다른 환경에서는 ‘갑’이 되며 각자 할 만큼씩 갑질들을 한다. 모두가 가해자이고 모두가 피해자이니 모두의 삶이 고달프다. 미주한인사회라고 갑질 안전지대는 아니다.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로 삶의 축을 전환할 때가 되었다. 외적 성공에 쏠린 눈을 내적 성숙으로 돌리는 것이다. 한 발짝이라도 남을 앞질러야 가능한 것이 전자라면 후자는 더불어 함께할 때 가능하다. 사랑이고 관계이며 따뜻함이다.
“잘 산 삶이란 남에게 평화를 주는 삶”이라고 달라이 라마는 말한다. 관심을 갖고 타자를 보듬어주는 자비의 삶이다. 우리 모두 완벽하지는 않지만 타자의 아픔을 덜어 주려 애를 쓸 수는 있을 것이다.
뿌리 깊은 아름드리나무를 상상해본다. 세월에 단련되어 웬만한 충격에는 꿈쩍도 하지 않고, 품이 넓어 찾아드는 모든 생명을 품어주는 존재. 일생을 잘 살면 마침내 그런 경지에 도달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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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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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총 18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남을 생각하며 살아간다는것. 내가 가지고 있는 달란트, 필요한 자들과 공유하며 살아야 한다는것. 이제 겨유 육십을 넘으면서 깨달아진 모양새입니다. 지금이라도 깨닫고 우는 자와 함께 울고 웃는 자와 함께 웃는 자가 되길 바라는 마음, 감사합니다!
우리들은 태어나서 한번은 꼭죽습니다. 죽은후에는 천국또는지옥으로 갑니다. 천국으로 가는길은 오직 예수를영접하여 구원을 받아야합니다. 다른종교는 구원이없습니다. 예수 믿으십시요.
인생의 최대 과제는 구원의 진리 맞네
과민할 필요없어요
부처가 예수 도움으로 구원을 받았다거나 특정 종교가 최고라고 한 일 없으니 곡해마세요. 다만 생명을 살리는 진리는 하나뿐이고 선택은 개인의 자유고 선물이니까 고민할 필요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