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전통의 합스부르크 제국, 오늘날의 헝가리 오스트리아 지역은 19세기에 들어서 호전적인 게르만의 진격 앞에 속절없이 ‘제국의 종말’을 고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제국의 종말은 역설적이게도 ‘지성의 탄생’이기도 했다. 서구 지성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수많은 사상가들이 이 시기에 오스트리아 빈과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명멸해 갔다.
그 중 19세기 최고의 여류작가 에브너-에센바흐는 ‘죽지도 않고 고칠 수도 없는 병, 그것이 가장 나쁜 병이다.’ 고 하면서 빈의 거리에서 저물어 가는 제국의 석양을 바라보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영원할 것 같았던 그 합스부르크 제국이 몰락한 게 1918년이니까 올해로 딱 100년이다. 망해가면서야 비로소 지성과 지혜를 얻게 된다는 게 그나마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한국은 ‘삼성공화국’인 게 보다 확실해진 듯하다. 자고나면 ‘삼성’이다.
이제는 일일이 열거하기에도 기억에 한계를 느낄 정도이다. ‘삼성이 잘못되면 어떻게 되나!’ 분단된 섬나라 아닌 섬나라에서 그나마 세계적 기업이자 국가의 자랑으로 오랜 세월 경도되어온 관성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작금의 삼성은 제국의 쇠락과정에서 보여 줄만한 요소들을 두루두루 섭렵해 가고 있다고 본다.
이런 상황은 삼성 80년 사상 초유일 것이고, 나라의 입장에서 본다면 삼성은 있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없어서도 안 되는 아주 고약한 존재임이 점차 더 드러나고 있다고 본다. 이럴 경우 ‘제국의 말로’처럼 스스로 무너지게 되어있다.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의 부패의 연결고리를 시작으로 이명박 시대로 거슬러 2대에 걸쳐 부패의 한 가운데에는 여지없이 삼성이 있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더 많았을 지도 모른다. 2007년 소위 ‘삼성 ×파일’ 사건이 나자 이건희 삼성회장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고 조건 없이 8천억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했다. 항상 느끼는 바 이지만 악마는 멀리에 있지도 않고, 불행은 거의 스스로 자초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세상의 흐름을 선도할 것으로 비춰졌던 삼성제국은 그 세상이 어떻게 바뀐 줄도 모르는가 보다. 역시 바깥세상을 모르는 사법부 심판들의 눈높이를 마치 허들 뛰듯이 만들어버리고 있다. 이제 이런 곡예가 언제까지나 이어질 것이라고 보는 국민들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이번에 이명박 전대통령 수사를 하던 검찰은 뜻밖에도 삼성의 ‘노조와해 의혹 문건’들을 6천여건이나 발견하였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가족 중에 삼성직원이 있다는 게 결코 자랑거리만은 아니라는 걸 금방 알 수가 있다. 기계처럼 일하지 않고 사람처럼 일하려고 했다가는 가족들까지 조사대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국헌을 부정하는 ‘삼성경영’의 민낯이 노출되어버린 일대 사건인 것이다.
거의 동시에 터진 삼성증권 자사주 배당사고는 따지고 보면 ‘코끼리 비스켓’에 해당하는 28억원을 직원들에게 주당 1천원씩 자상하게 나눠준다는 것을 1천주씩 잘못 배당 하자 삼성직원 아니랄까 봐 그걸 재빨리 팔아치워 버려서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아버렸다.
단순 실수라고 하기에는 실로 ‘엄청난 파장’이 수반될 문제인 것이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앞으로도 제국의 드라마는 편집(?)없이 계속될 것이다. 예전에도 있어왔던 일들이 감추고, 틀어막고, 회유하고, 협박해 왔다. 제국이 그러했듯이, 이제 그 제국의 방벽과 철문들이 걷히면서 드러나고 있을 뿐이다.
재조산하(再造山河), 70년 민족의 숙원들이 이루어지려고 하는 봄이다.
나라 안에서도 낡고 칙칙하고 무거운 적폐들을 하루하루 걷어내는데 국민들 모두가 열심이다. 사람이 먼저고 국민이 우선이다. 그런 국가의 국기와 국헌을 바로 세우는데 삼성은 더 이상 장애일 수도 없고, 장애여서도 안 된다.
동양에서의 ‘불로초‘를 서양에서는 ’암브로시아(ambrosia)‘라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이 먹는 음식을 그렇게 부르는데 이걸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불멸의 능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지고는 있다.
사람의 수명이 많이 길어졌다고는 하지만 1백년을 지탱한다는 것은 가히 ’신의 경지‘라고 할만하다. 1938년, 지금부터 꼭 80년 전에 탄생한 삼성그룹은 인간 수명으로 치더라도 상수(上壽)를 누리기에는 아직도 20년이 딱 더 남아있긴 하다.
이건희 회장이 2000년을 앞에 두고서 ‘마누라만 놔두고 다 바꾸자.’ 시성(詩聖)과 같은 탁견이라 했다. 말처럼 했었다면 어땠을까?
제국의 몰락을 목전에 둔 지성의 고고한 외침을 씁쓸하게 다시 들려주는 것으로 국민들이나마 희망과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 ‘가장 나쁜 병은 죽지도 않고 고칠 수도 없는 병이다.’
<
강창구 사람사는 세상 워싱턴 메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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