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안홍균의 ‘코리아 게이트’증언 23
▶ ■박동선의 하원 청문회 증언

박동선이 유혹한 의회 조사팀의 수석 여비서(왼쪽). 2000년, 조지타운 클럽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던 박동선 씨가 자신의 초상화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검찰관과 박의 공방전
1978년 4월3일과 4일 연이어 열린 하원 윤리위 청문회는 수석 검찰관인 잔 N.의 질문과 박동선의 답변, 그리고 박의 최후 진술 순으로 이어졌다.
잔 N. 수석검찰관의 질문은 박의 금품 제공 내역 외에 그의 쌀 에이전트 취득 경위, 대미 의회활동 상황, 미 의원들과의 접촉내용과 한국 정부, 특히 KCIA와의 연관관계에 집중됐다.
N. 검찰관은 한국 중앙정보부의 보고서, 박동선의 집에서 찾아낸 서류에다 76년 대미 로비문서에서 제시된 것이 대부분 실행됐으며 그 보고서에 맞춰 박이 활동했음을 지적했다. 또 박이 71년 1월에 상실한 미국 쌀 중개 에이전시 회복에 이후락 정보부장 등이 도운 점 등을 들며 결국 박동선은 한국 정부의 에이전트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하원이 박동선과 한국 정부, 또 KCIA와의 관계를 간접적으로 해석한 반면에 상원 윤리위는 직설적으로 “박은 한국의 에이전트”라고 규정했다.
이에 박동선은 자신이 한국의 에이전트가 아니라고 누누이 반박했다. 특히 1971년 쌀 에이전시를 빼앗긴 점을 근거로 들며 맞섰다.
잠시 옆길로 나가자면, 박이 쌀 에이전시를 뺐기고 이를 다시 찾는 데는 아토 패스맨 하원의원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앞서 설명했지만 하원 세출위의 외국원조 소위 위원장으로 외국 원조의 돈줄을 쥐고 있던 그는 한국을 비롯해 미국의 원조를 받던 피원 국가에서의 영향력이 지대했다. 그는 한국도 정기적으로 방문해 박정희 대통령을 만났으며 자신을 등한시했던 박동선의 쌀 에이전시가 박탈되도록 압력을 가한 것으로 짐작된다.
-상하원의원 14명, 박 대통령에 편지
황금 알을 낳던 에이전시를 빼앗기고 노심초사하던 박동선은 핸나 의원과 하원 외교위 아태소위원장인 닐 겔라가 의원의 힘을 동원했다. 그리고 고액의 현금을 주면서 지원을 부탁했다. 두 의원은 박을 위해 한국으로 날아갔으며 박 대통령과 이후락 정보부장 등을 만났다.
1971년 여름, 박은 연방 상하원의원들도 움직였다. 14명의 미 의원들이 박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냈다. “박동선은 미 의회에서 성공적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의 활동이 계속 중요하다.”
박정희와 한국에 대한 자신들의 우호적인 태도가 박의 덕분이라는 그 편지의 초안은 박이 작성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쌀 중개권을 찾아오는 게 여의치 않자 박은 패스맨 의원을 자기편으로 만들어야 함을 직감했다. 1972년 1월, 패스맨 의원이 한국을 방문하기 전에 홍콩에 들른다는 사실을 안 그는 홍콩으로 날아갔다.
패스맨 의원은 여러 기행으로 유명했으며 의회에서의 별명이 ‘엉클 패스맨’이었다. 그는 시계 수집광이기도 했다. 그래서 외국 출장을 명분으로 주기적으로 스위스나 홍콩에 들러 시계 쇼핑을 하는 걸 즐겼다. 그는 그렇게 수집한 시계를 의원실의 금고에 넣어두고서는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보여주곤 했다. 나중에 박도 패스맨의 시계를 산 적이 있다.
-패스맨 의원과 박의 홍콩 담판
박은 천부적인 사교술을 동원해 자기를 비방해온 패스맨과 담판을 했다. 당시 박은 파산상태나 마찬가지였다. 71년 8월 그의 미국 은행계좌에 있던 돈은 800불도 채 되지 않았다. 그는 패스맨의 동행인으로부터 5천 달러를 빌려 패스맨 의원에게 주고 융숭한 향응을 베풀었다.
“2년마다 선거를 치르는데 15만 달러의 자금이 든다. 당신이 매년 5만 달러씩 대라.”
패스맨 의원의 협박에 가까운 제안에 박동선은 화답했다. “좋다. 그 대신에 내가 쌀 중개권을 찾는 걸 도와 달라.”
홍콩에서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동지적 관계’로 변모했다. 패스맨은 박의 후원자가 됐고 다음 달 박은 쌀 에이전시를 회복했다.
그 후 패스맨은 박에게 자신의 지역구인 루이지애나 산 쌀을 구입해줄 것을 요구했다. 루이지애나 쌀은 한국에서 싫어하는 안남미이지만 박은 응해야 했다. 또 박은 패스맨의 요구에 따라 그의 지역구에서 생산된 고구마 1천 상자도 샀다.
그러나 박과의 연루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패스맨은 76년 선거에서 낙선했다. 소위 ‘박동선 사건’의 악명은 그토록 치명적이었다.
-“난 한국 에이전트 아니다”
청문회에서 질의 답변이 끝나자 박동선이 최후 진술을 요청했다.
“나는 한국과 미국을 사랑하는 시민으로 내 친구들에게 선거자금을 줬다. 나는 한국 정부의 요원이나 에이전트가 아니다. 한국 정부의 월급을 받은 적도, 지시를 받은 적도, 보고서를 낸 적도 없다.”
미 의원들에게 준 돈이 ‘선거자금’이었다는 발언은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당시는 외국인도 미 의원들에게 합법적으로 선거자금을 줄 수 있었다. 따라서 받은 돈이 선거자금이라면 의원들은 죄가 없는 것이다.
“내가 쌀 에이전시를 처음 얻을 때 미 의원 친구들이 도와줬다. 내가 만약 한국 정부의 녹을 받고 일했다면 왜 에이전시를 빼앗겼겠는가. 그것의 회복을 위해 미 의회 친구들이 날 도왔다. 물론 큰돈은 벌었지만 의원들에게 제공한 자금은 번 돈의 6-7%밖에 되지 않는다. 내가 한국 정부의 에이전트라면 그 정도로 끝날 수 있었겠는가. 나는 내 사업으로 번 돈을 미 의원들에게 제공한 것일 뿐이다.”
그는 한국 정부에 고용된 요원이 아님을 거의 필사적으로 역설했다. 박동선의 최후 진술은 청문회에서의 증언의 압권이었다.
-검찰관 “우리가 졌다”
박의 최후진술로 코리아게이트의 막은 실질적으로 내려졌다. 미국의 조야, 특히 언론과 국민의 코리아 게이트에 대한 관심은 급속히 냉각됐다. 코리아 게이트는 역사가 됐다.
청문회가 끝나고 내가 잔 N. 수석검찰관과 밖으로 나오는데 그가 말했다. “우리가 졌다. 이렇게 요란하게 조사했는데 현직 의원 1명도 부정행위로 내좇지 못했어.”
그의 푸념에 내가 “박동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후스바(Chutzpah)” 처음 들어보는 낯선 단어를 그가 꺼냈다. “그게 뭔 소리냐?”
“아, 그건 부모를 죽인 패륜아가 판사에게 자기는 고아라고 읍소하면서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간청하는 것, 그것이 후스바다.”
-패스맨 변호사의 법정계략
요란했던 코리아 게이트 조사의 끝은 3명의 현직 의원이 본 회의에서 견책을 받는 걸로 막을 내렸다. 박에게서 돈을 받은 걸 정직하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상원에서는 의원 8명이 ‘비윤리적 행동’을 했다는 보고서로 마무리됐다. 돈을 받았다는 뜻이었다.
당시 전직 의원이었던 리처드 핸나는 1년을 복역했다. 아토 패스맨은 무죄가 됐다. 두 사람의 희비가 엇갈린 것은 패스맨 변호사의 법정 계략 때문이었다.
“패스맨 의원이 수뢰죄와 공모죄 등으로 워싱턴에서 기소됐는데 동시에 탈세혐의도 걸려 있다. 탈세는 거주지에서 재판을 받아야 하는데 분리해서 재판받으면 번거로우니 한데 묶어 재판을 받게 하는 게 어떻겠느냐?”
젊은 검사의 답은 “OK”였다. 그래서 패스맨은 자신의 출신구에서 재판을 받게 됐다. 루이지애나에서 그는 터줏대감이었다. 배심원단은 90분 만에 그에게 무죄판결을 내렸다. 박동선으로부터 21만3천 달러를 갈취한 패스맨은 그렇게 살아났다.
그에 앞선 일화다. 하원 윤리위 조사관 2명이 루이지애나에 있던 그를 방문 조사하러 찾아갔다. 그는 큰 사냥개를 옆에 데리고서 조사관들을 맞았다. 답변하기 곤란한 질문이 나오자 그는 갑자기 바닥에 뒹굴었다. 심장마비를 연출한 것이다.
-조사팀 여비서 유혹한 박동선
박동선은 사라졌지만 그의 그림자는 버젓이 살아 있었다. 의회 증언이 끝난 얼마 후 당시 영국에 머물던 그가 조사팀으로 연락을 취해왔다. 그 대상은 스테파니 P.란, 조사팀의 수석비서였다. “영국으로 와라.” 데이트 하러 오라는 유혹이었다. “정말 가볼까?” 박은 돈도 많고 귀공자 같은 인물이었다. 아름다운 그 여비서는 잠시 마음이 흔들렸던 성싶었다.
자신을 옭아매려는 의회 조사팀의 여직원에게 유혹의 손짓을 보낸 건 그의 배짱이 아니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유혹이라기보다 자신은 아무 것도 겁날 게 없다는 제스처로 나는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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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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