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만큼 사회성이 강한 영역도 없다. 한 특정인이 말을 하면서 하나의 표현에 계속 집중하게 되면 그의 주변인들 역시 그 표현을 즐겨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사람이 특별히 그 공동체에서 영향을 미치는 위치에 있다면 그 파급력의 속도와 강도는 더해진다. 과거 한때 한국의 한 기독교 교단에 속한 목회자들이 거의 비슷한 억양으로 설교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이유가 그 교단 내의 영향력 있는 한 목사님 때문이었다. 많은 목회자들이 그분의 독특한 악센트를 따라해 그랬던 것이다. 언어의 사회성을 알 수 있는 한 실례다.
조국을 떠난 지도 30년이 다 되어간다. 이 즈음이 되면 한국말이 어눌해진다. 그렇다고 영어가 느는 것도 아니다. ‘멀어져가는 한국말, 다가오지 않는 영어’라는 우스갯소리가 남 일이 아님을 매일 경험하는 중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 한어권 이민자들 사이에서 오가는 우리말들 중 영 아닌 게 몇 있다. 그것은 우리가 고국을 비운 사이 한국어가 너무 빨리 진화해버린 탓인데, 그 진화의 콘텐츠들 가운데 우리가 언제 저렇게 말하고 살았나 싶은, 참 듣기 불편한 것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 중 세 가지를 뽑아봤다.
그 첫 번째 것은 지나치게 자주 등장하는 ‘부분’이라는 단어다. 작가 유시민도 자신의 책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서 이를 지적한다. 그는 그 책에서 어떤 이가 새로 출시된 텐트를 사용한 후 한 블로그에 올린 ‘사용 후기’를 인용한다. “… 일부 마무리부분이 아쉽지만요. … 텐트 안에서 보면 불빛이 새는 부분이 있어요. 박음질한 부분들인데. 이런 부분 때문에 비 올 때… 이런저런 부분들이 아쉬운 점이 있지만 조금만 더 다듬어준다면….” 그리 길지 않은 문장 안에 ‘부분’이라는 표현이 무려 다섯 번 등장한다. 그런데 한국 TV 그 어느 프로에서도 쉽게 대할 수 있는 단어가 이것이다. 정치인 인터뷰, 연예인 리얼리티 쇼, 심지어 바른말을 써야 하는 아나운서와 기자들까지도 이 단어를 애용한다. 유시민은 그래서 무분별한 ‘부분’ 사용을 소위 ‘거시기 화법’이라며 비판한다. 그 비판의 한 대목이다. “다른 말도 아니고 하필이면 왜 ‘부분’이 이렇게 유행인지 모를 일이다.” 맞다. 나도 모를 일이다.
두 번째 것은 ‘혀 짧은 소리’이다. 이는 돌이킬 수 없는 대세가 되어버렸다. 이는 특히 젊은 여자들에게로 갈수록 아주 심하다. ‘ㅈ’ 자음을 영어 식 발음기호로 바꾸면 과거엔 [dz]였다. 하지만 지금 이를 발음하는 것들을 보면 [z]나 [zz]에 가깝다. 한국인들의 혀는 원래 긴 편이다. 그래서 미국 오면 영어를 구사하기가 힘든 것이다. 세종대왕이 우리를 위해 만들어주신 한글은 상대적으로 그 긴 혀로 발음하기에 알맞게 만들어졌다. 그런데 왜 그토록 의도적으로 ‘짧은 혀 발음’을 해야 하는지 도통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미국과 영어를 너무 동경해설까?
세 번째는 무분별한 존칭어 사용이다. 한국방송 예능 프로들을 보면 거의 1초 간격으로 ‘자막 폭탄’이 떨어진다. 출연자들의 말에 해석을 가해 재미를 더하려는 의도 때문일 게다. 그러나 그 자막 내용들 중 문법에 어긋나는 존칭어들이 종종 등장한다. 예를 들어 볼까? “시간이 계시면.” “부장님의 생각이 짧으셔서.” “고객님의 잔고에 돈이 부족하십니다.” 이런 것들이다. 시간은 ‘있는’ 것이지 ‘계신’ 게 아니다. 아무리 존경 받아야 할 부장님이어도 그분의 생각은 ‘짧은’ 것이지 ‘짧으신’ 게 아니다. 그런데도 아무 생각 없이 이런 식의 표현들이 난무한다. 지나친 존칭어가 상대를 존중하는 방식은 아닌데도 말이다. 적절한 존칭어 사용이 상대를 진실로 존경하는 길임을 그들은 왜 모를까?
한글학자도 아닌 한 목회자가 굳이 나서서 이런 비뚤어진 언어의 사회적 현상들을 비판할 필요까지 있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그러나 미국 와서까지도 한 주 내내 한국말로 직업 활동(?)을 해야 하는 한 ‘한인교회 목사’로서 계속 귀에 거슬리는 게 이거니 어찌하랴. 굳이 이에 변명의 이유를 대라면 내가 종사하고 있는 기독교가 언어의 종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로고스’로 오셨기에, 언어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 중 하나이다. 그 중에서도 한글은 정말 아름다운 언어다. 이는 미국에서 살면 살수록 더 절실히 느끼는 바이다. 영어는 제 아무리 발 벗고 따라와도 한글을 따라올 수 없다. 정말 아름다운 우리말이다. 그 아름다움이 더 이상 훼손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잠시 비판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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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숭 목사/ 새크라멘토 크로스포인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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