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 소울푸드 ‘반미’, 프랑스 바게트서 유래
▶ 베트남 푸아그라 ‘파테’ 넣어, 길거리서 쉽게 구매 가능
63 프로방스의 포크 반미. 바게트 안에 고기와 야채를 채워 만드는 반미에는 다양한 재료를 쓸 수 있지만 정통 반미에는 돼지고기가 들어간다. <잇쎈틱 제공>
봄 기운이 한창인 한국엔 아직도 평창동계올림픽의 열기가 곳곳에 남아있다. 세계 최대의 스포츠 행사인 올림픽을 두 번이나 성공적으로 치러낸 지금 한국은 과거 어느 때보다 여러 나라의 문화가 생동하는 분위기다.
우리가 한 나라의 문화를 알아가는 데 음식만큼 좋은 것이 있을까?
‘타드 샘플의 진짜 외국 음식 먹어봤니?’에서는 한국에 있는 여러 나라 음식을 현지의 맛 그대로 표현해내는 곳을 찾아 소개한다. 다양한 문화의 맛을 ‘맛집’이란 두 글자에 가두기엔 너무 아까워 맛집이란 표현보다는 “각 나라의 현지 맛을 그대로 표현하는 어쎈틱(authentic: 진짜의, 진짜와 똑같이 만든)한 음식”이라 하고 싶다. 외국인이 직접 자신의 고향음식을 만드는 곳뿐 아니라, 한국 사람이지만 현지인보다 더 요리를 잘하는 곳도 빠지지 않는다. 단, 한국인의 입맛에 맞추려 맛을 변형한 곳은 진짜(authentic) 음식문화를 전하려는 의도와 맞지 않아 소개하지 않으려 한다.
가끔 진짜 현지 음식을 어떻게 구별하는지 묻는 사람들이 있다. 가장 좋은 답은 고향 맛이 그리워 찾아 오는 손님이 많은 곳이라 할 것이다. 20년 이상 한국에 거주하면서 한국 음식 맛에 푹 빠져 한국이 더 궁금해진 외국인으로서, 음식은 한 나라의 문화를 혀끝에서부터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문화 전달 매개체라고 생각한다.
고수와 숙주로 혀의 문이 열리다
1990년대부터 쌀국수는 소위 외국물 좀 먹은 사람들에게 인기 메뉴가 되었다. 해장국을 먹던 사람들이 쌀국수로 해장을 하고 ‘비누 냄새’가 난다던 고수(미나리과의 식물로 중국에서는 샹차이, 태국에서는 팍치라고도 불린다)와 생 숙주를 국물에 조금씩 넣어 먹으면서부터 서서히 베트남 음식에 대한 혀의 문이 열린 듯하다.
베트남 음식 중 반미는 간단하지만 베트남의 문화를 가장 잘 보여준다. 반미는 베트남어로 Banh Mi다. Banh은 빵(Bread), Mi는 밀(Wheat)이란 의미로, 반미는 “바게트빵, 빵”을 뜻한다. 베트남이 프랑스 식민지 시기(1883~1945)를 거치면서 바게트 안에 베트남 야채와 고기, 소스를 넣어 먹으면서 탄생한 음식이다.
쌀이 많이 생산되는 베트남은 쌀요리가 발달해 일부에서는 밀가루와 쌀가루를 섞어 반미를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전통방식은 밀가루만을 이용한다. 프랑스 바게트가 겉은 살짝 두껍고 안에 듬성듬성 구멍이 많으며 길이도 60㎝ 이상으로 긴 반면, 베트남 반미는 재료는 같아도(가끔 설탕을 추가하기도 한다) 겉은 얇고 속은 더 촉촉하면서 부드럽다. 길이는 샌드위치에 적당하게 20~30㎝ 정도, 색상도 금빛이 나는 노릇노릇한 색을 띤다.
1950년대 베트남이 독립한 시기부터 길에서 반미를 파는 상인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프랑스가 인도차이나반도에서 물러날 무렵 많은 베트남인들이 프랑스에 터를 잡았고 베트남전 후에는 미국으로 넘어가는 이민자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반미의 세계화는 이 무렵 이주의 물결과 함께 시작되었다. 서구 사람들에게도 새콤달콤하고 아삭한 야채가 듬뿍 들어간 오묘한 맛의 샌드위치가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물론 이주한 베트남인들에겐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는, 더 없이 좋은 소울푸드이기도 했다.
지금도 베트남의 시장이나 길모퉁이에서 반미 빵을 구워 파는 아낙네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저 많은 빵을 누가 다 먹나 싶을 정도로 시장 곳곳마다 노란 물결이다. 밤사이 빵을 한 가득 구워 큰 비닐 봉투에 넣어 머리에 이고 지고 시장으로 나온다. 베트남에서 반미는 레스토랑보다는 길거리의 삼륜자전거 뒤에 재료를 가득 싣고 있는 상인에게서, 혹은 작은 테이크아웃 가게에서 살 수 있는 서민음식이다. 주문 받은 즉시 빵에 재료를 듬뿍 담아 봉지에 둘둘 싸준다. 상인들의 선반에는 새우, 돼지고기, 소고기 미트볼, 구운 치킨, 계란 프라이 등 반미를 장식할 재료들이 가득하다.
정통 반미에 들어가는 고기는 삼겹살이나 슬라이스 포크, 아니면 ‘차루아’라는 베트남식 돼지 소시지다. 여기에 새콤달콤하게 절인 당근, 양파, 무, 그리고 신선한 고수, 고추 등 자기만의 특별한 맛을 보여줄 비장의 재료들이 가득하다. 주문이 들어오는 즉시 빵을 반으로 갈라 속을 살짝 파내고 안쪽을 코팅하듯 파테(고기나 간을 갈아 삶은 것)를 싹싹 발라준다. 그 안에 준비한 재료를 가득 채워주면 두툼하고 먹음직스런 반미가 탄생한다. 입을 찢어질 듯 크게 벌려주고, 한번에 모든 재료가 입 속에서 어우러지도록 물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하루에 두 번 굽는 바게트, 베트남 현지 맛 그대로
한국에서도 베트남 현지 그대로의 반미를 즐길 수 있다. 이화여대 인근 골목의 작은 가게, 63 Prov.(63 프로방스)다. 베트남의 행정구역은 5개의 중앙직할시와 58개의 성으로 구성되는데 63개 지역을 뜻하는 ‘63 Prov.’라는 이름에서부터 자국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식당에 들어서면 이국적인 대나무 의자와 테이블이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다. 성인 남자들에게는 살짝 작을 수도 있을 귀여운 대나무 의자에 엉덩이를 맞춰 앉는 순간 이곳은 베트남이다.
한국에 온 지 13년 된 누웬 튀 미느 공동대표는 고향의 반미가 그리워 직접 만들기로 결심했다. 베트남에서 다니던 회사에서 만난 한국인 동료(최승재 공동대표)와 함께 식당 문을 연 그는 작지만 고향의 맛을 그대로 표현하고 싶어 다시 베트남으로 향했다. 요리 선생님은 고향인 빈딘 지역에서 ‘컴바쪽’이라는 유명한 식당을 하시는 어머니. 그로부터 손맛이 듬뿍 깃든 요리들을 전수 받았다. 반미에 쓸 바게트는 동네에서 반미 바게트만 전문으로 굽는 사람을 찾아가 배웠다.
빵 굽는 기술에만 오롯이 3개월을 투자한 끝에 드디어 2016년 8월 베트남 정통 반미가 서울에서 꽃을 피우게 됐다. 63 프로방스에서 반미는 정해진 수량만 판매한다. 바게트는 시간이 지나면 질겨지고 거칠어져, 오전 오후 하루에 두 번 바게트를 구워 신선한 반미를 만든다. 빵 굽는 구수한 냄새를 맡으며 먹는 반미의 맛은 더 고소하게 느껴진다. 베트남 유학생들이 향수에 젖기 좋은 곳이다.
63 프로방스 최고의 맛의 비결은 바로 파테다. 프랑스 음식인 푸아그라의 영향을 받은 파테는 현재 베트남의 주요 음식 중 하나다. 다른 재료와 같이 먹기도 하지만 파테만을 넣어 반미를 먹기도 한다. 돼지의 간을 갈아 크림 같으면서도 잘 발라지도록 만든 파테를 반미에 넣어 먹으면 한층 더 고소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처음 파테를 접하는 사람들은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돼지 간은 순대와 매우 잘 어울리는 음식이고, 어느 나라보다 내장을 요리에 잘 활용하는 문화를 가진 민족으로서 용감하게 시도해 볼만하다. 만드는 데 손이 많이 가니 파테를 넣는 반미식당은 정말 찾기 힘들다.
이곳에서 반미와 잘 어울리는 카페수어다를 놓치면 안 된다. 베트남에서 공수해온 알루미늄 커피 필터에 인내심을 다해 3~5분 정도 기다리면 에스프레소 같은 진한 커피가 추출된다. 거기에 달콤한 연유와 얼음을 넣으면 구수하면서 달콤한 베트남식 연유커피가 된다. 식사 후엔 디저트로 얼린 수제 요거트를 꼭 먹어 보자. 요거트를 작은 비닐에 넣어 어린이 주먹만한 사이즈로 얼린 주머니가 나온다. 봉투 모서리를 입으로 뜯어 쭉쭉 빨아먹는데 어릴 적 쭈쭈바를 먹던 추억에 빠지게 될 것이다.
사이공리도 베트남 맛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사이공리의 당 트엉 띤 대표를 처음 만난 건 서울 노량진 시장 골목 끝의 작은 식당에서였다. 7명 남짓 앉을 작은 공간에서 소녀처럼 생긴 여자분이 여러 가지 음식을 혼자서 뚝딱뚝딱 만들어냈다. 그녀는 베트남에서 한국인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면서 한국에 오게 됐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자기만의 사업을 해보겠다는 당찬 의지가 더해져 지난해 3월 사이공리를 오픈했다. 비록 찾아오기 힘든 위치지만 진정한 베트남 맛이 그리운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가게는 매일 문전성시를 이뤘다.
사이공리는 지난 1월 장승배기역 근처 조금 넓은 곳으로 이전했다. 가게는 확장됐지만 반미 속 인심은 여전히 넉넉하다. 고기와 야채가 꽉 차 다물어지지 않는 반미에서 그녀의 열정이 충분히 느껴진다. 당 트엉 띤은 반미에 자신의 마음이 들어간다고 한다. 고향에서도 가장 보편적이면서 영양이 가득해 좋아했던 음식이다. 이곳의 바게트는 쌀가루를 넣어 특별 주문하여 가져온다. 빵이 부드러운 편이라 한입에 모든 재료가 쏙 들어가게 베어 물 수 있다. 지금의 사이공리는 주택가에 위치해 주말이면 고향 맛이 그리워 아이들 손을 잡고 찾아오는 베트남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반미도 원래는 프랑스의 바게트에서 유래했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그 안에 그들만의 재료와 소스를 채워가며 독자적인 식문화를 만들어 냈다. 매일 먹는 단순한 음식일수록 자국의 문화를 더 잘 말할 수 있다. 반미를 먹을 때도 한번쯤은 우리 마음대로 넣고 빼서 문화를 바꾸려 하기 보다는 그들이 먹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시도해보는 것은 어떨까? 베트남을 그대로 느끼고 싶다면 고수와 파테에 도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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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드 샘플ㆍ박은선 잇쎈틱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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