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닌 면소재지 시골 국민(초등)학교엔 선생님이 통틀어 20명 정도였다. 여자 선생님은 있다가 없어지는 ‘멸종위기 동물’이었다. 사범학교를 갓 나온 한 처녀교사가 담임을 맡지 않고 전 학년을 대상으로 음악과 무용을 가르쳐 학생들과 학부모들로부터 스타대접을 받았다. 반면에 만삭인 몸으로 출근한 여교사는 눈총을 받았다. 그 땐 사회분위기가 그랬다.
그로부터 약 30년 후 학부모가 된 나는 서울에서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온 아들을 LA 한인타운의 한 초등학교에 편입시키려고 찾아갔다가 어리둥절했다. 학생들이 흑인과 히스패닉 일색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교직원들과 교사들이 거의 모두 여성이었다. 아들도 줄곧 여교사 담임 반에서 공부하다가 6학년 때 한인 남자 담임교사를 만나 멘토를 삼았었다.
내가 다닌 한국 시골학교와 정반대로 미국에선 남자 교사가 희귀동물이다. 초등학교뿐이 아니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전국의 전체 교사들 중 여성이 4분의 3을 웃돈다.
내 아들이 초등학생이었던 30년 전까지만 해도 여교사는 전체의 3분의 2정도였다. 교사의 성비 차이는 중학교, 초등학교, 유치원으로 내려갈수록 심해서 교사 5명 중 4명이 여성이다.
미국 여성들은 1960년대부터 대거 직업전선에 몰려나왔다. 하지만 당시엔 직장이 대부분 남성 위주였고 여성들에겐 교사직과 간호사 직이 그나마 만만했다. 봉급은 많지 않지만 방학기간이 길어 가정살림에 지장이 덜했고, 자녀를 출산하면 몇 년간 집에서 쉰 뒤 복직할 수 있다. 다른 직종보다 실업률이 낮고 재직 중 해고당할 위험도 적다는 이점이 있다.
초등학교에 여교사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그에 비례해 남자들이 교사직을 기피하게 됐다. 여자들이나 하는 직업이라는 자괴심 때문에 괜히 쩨쩨하게 보였다. 다른 직종에 취직한 대학 동창생들에 비해 수입도 크게 뒤졌다. 현재 미국 초등학교 교사들의 평균 연봉은 4만달러이다. 실제로 여성이 주도하는 직종의 연봉은 남성주도 직종보다 낮은 것이 현실이다.
미국만 남자교사가 희귀동물인 건 아니다. 독일 일부 주엔 남자교사가 단 한명도 없는 초등학교가 전체의 20%나 된다. 그래서 궁리해 낸 게 ‘남자교사 임대’ 제도이다. 교육대학 남학생을 여교사들만 있는 학교에 ‘얼굴 마담’처럼 배치하는 방법이다. 꼬마들이 처음 보는 남자선생님을 ‘미세스’(Mrs)로 부르거나 ‘미세스 미스터’로 부르는 등 혼동을 일으켰단다.
호주도 비슷한 상황이다. 남자교사 수가 지난 반세기 동안 꾸준히 줄어들어 현재 북부 준주의 사립초등학교 남자교사는 전체의 12.2%, 퀸랜드 지역 공립중고교 남자교사는 36.4%일 뿐이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남자교사가 호주 전체 초등학교에서 2067년 전에 ‘멸종’할 것으로 정부당국은 추정한다. 공립학교 남자교사는 더 빨리 2054년 전에 사라진다.
그런 면에선 한국도 선진국이다. 전국 초등학교 교사 중 여성이 77%를 웃돈다. 미국과 매한가지다. 그런데도 시골학교엔 여전히 여교사가 드물다. 이들이 생활여건이나 신변안전 상 벽지학교를 기피하는 반면 승진 가산점(최고 10점)을 노리고 자원하는 남자교사들은 많기 때문이다. 예전과 달리 이젠 도시 초등학교에서 남자교사들이 멸종위기 동물이 됐다.
교육전문가들은 여성교사들만 있는 초등학교는 어린이들에게 편모가정 같은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걱정한다. 하지만 남자교사 확보가 말처럼 쉽지 않다. 온 종일 코흘리개들과 지내는 교직은 여성의 일이라는 편견이 팽배해 있다. 처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지 않고는 남자교사를 양성하기 어렵다. 한 때 “선생 X은 개도 안 먹는다”는 비어도 있었다.
여교사들의 자질만 우수하면 남교사 부족이 크게 문제될 게 없다. 미국 교육장관도, 워싱턴대학 총장도 여성이다. 더구나 교직에만 ‘여풍’이 부는 것도 아니다. 전통적 남성 직종마다 여성들이 파고든다. 여군 전투병도, 여자 소방관도, 여자 목사도, 여자 오케스트라 지휘자도 있다. 내가 60여년 전 초등학교에서 만난 만삭 선생님이 여풍의 선구자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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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시애틀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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