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선우 변호사
다른 독자들도 비슷한 경험을 했겠지만 나는 나이 탓에 의사들과의 약속이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보다 더 잦다. 그런데 의사들한테 다녀오고 나면 내가 상대했던 문제들과 관계가 있는 약품이나 기구 회사들만이 아니라 노인들이 다리를 굽히지 않고도 앉아서 샤워를 할 수 있는 시설 시공업체 등으로부터 전화가 빗발치듯한다. 의사들에게 준 내 나이와 건강상태 등의 신상정보가 순식간에 널리 퍼지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상원의원이 페이스북(이하 페북) 등 인터넷 매체들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안다”고 촌철살인의 표현을 한 것에 머리가 끄덕여진다. 도대체 프라이버시는 어디로 사라져버렸나? 구글 선생에게 물어본다는 말이 보편화된 데서 알 수 있듯 인터넷은 참으로 순식간에 많은 정보를 넘치도록 알려주어 참으로 편리하다.
그러나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는데 꼭 필요한 식칼이 악인의 손에 들려지면 살인무기로 둔갑하는 이치처럼 소셜미디어도 사용자들의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악용되는 실례들이 빈번하게 생긴다. 며칠 전 버지니아와 다른 주에서 인신매매를 했다고 보도되어 한인사회의 체면에 먹칠을 한 일당도 소셜미디어를 사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와 불행한 사건들과 비교해 더 심각한 것은 페북 같은 소셜미디어의 사회적인 또는 국가적 악영향일 것이다.
마크 저커버그가 하버드 재학생일 때 학생들 사이의 연락망으로 고안하고 발전시킨 페북은 2004년 2월에 회사로 설립된 후 얼마나 초고속 성장을 했던지 세계 500개 대기업 중 98위를 점하게 되었다. 이런 페북을 정치와 접목시켜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나 창출에 이용하고자 하는 책사들이 생길 것은 상대 당이 성공하면 내 편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정치현실에서 예측할 수 있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CA)와 페북을 둘러싼 논란이 바로 그 현상이고, 그것의 최대 수혜자는 트럼프 대통령이다. 내부 고발자의 폭로에 근거를 둔 신문 방송의 보도에 의하면 CA는 영국에 적을 둔 인터넷 기관으로 우파 억만장자가 출자해 런던에 설립한 정보자료 전문회사이다.
그런데 ‘와일리’라는 29세의 내부 고발자는 2016년 트럼프의 대선 성공에 수훈갑이었던 스티브 배넌이 2014년부터 CA의 부사장을 지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CA가 5,000만 페북 사용자들에 대한 신상정보를 채굴했다는 것이다. 이름, 주소지, 생년월일, 소속 종교, 학력과 경력, 그리고 “좋아요” 버튼을 누른 것에 기초한 취미와 기호 등 한 개인에 대한 광범위한 자료수집를 했던 셈이다.
그리고 극우세력들이 주창하는 메시지들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도 측정하고 어떤 메시지가 가장 사람들의 구미에 당길 것인가를 연구하고, 메시지를 맞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진보 집권당을 뒤엎자면 민주당 때문에 워싱턴이 부패의 늪이 되었기에 “부패의 늪을 깨끗이 치우자”라는 표어가 공화당 보수계에서 잘 먹힐 것이다. 2014년경부터 그런 표어들의 효과를 측정해 왔었다니까 배넌이 극우파의 머리 좋은 책사임에 틀림이 없는 모양이다. “미국을 다시 한 번 위대하게 하자”는 표어, 그리고 불법 이민자들 때문에 내심 분노하고 있던 백인 저학력 저소득층에게 멕시코 국경에 담을 쌓는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었음은 선거결과가 말해준다.
영국이나 미국 조야의 여론이 나빠지자 페북의 CEO 저커버그는 21일 기자회견에서 CA 때문에 생긴 페북에 대한 “신뢰의 붕괴”에 대한 대책으로 수천 개의 앱들을 점검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자신이 페북을 창설한 사람인만큼 모두가 자신의 책임이라면서 필요하다면 연방의회에서 청문회에 참석해 증언하겠다고 까지 했다.
그러나 페북 등의 비즈니스 모델 때문에 소셜미디어의 남용은 막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비관론이다. 그리고 내부 고발자 ‘와일리’에 의하면 아프리카 등지의 다른 나라들에서 페북으로부터 채굴한 신상정보로 선거결과에 영향을 끼쳐온 사례들이 있다는 것이다. 페북 사태를 지켜보니 선거는 민심을 정직하게 반영한다는 말이 점차 공허하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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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선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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