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시대다. 흔들리지 않는 삶의 원동력은 바로 뿌리 깊은 자존감이라는 주장이 대세다. 그래서 아이들을 어떻게 자존감 강한 존재로 키울 것인가에 대한 다양한 이론들이 쏟아져 나오고 이를 둘러싼 문화적 논쟁까지 벌어지고 있다. 논쟁의 중심인물 가운데 한사람이 예일대 에이미 추아 교수이다. ‘호랑이 엄마론’을 내세우는 추아 교수는 자존감은 성취를 토대로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부모가 강압적으로라도 아이들이 이를 가질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물론 반론과 비판도 만만치 않다.
그런 가운데 삶에서 가장 중요한 스킬은 자존감이 아니라 ‘자기연민’(self-compassion)이라는 새로운 주장이 최근 학자들과 일반인들 사이에 공감과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이것을 이론으로 정립한 학자는 텍사스대학 크리스틴 네프 교수다.
그녀는 자폐아인 아들을 양육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기연민’이 삶에서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2011년 책으로 발간했다. 왠지 유약하게 들리는 ‘자기연민’이라니, 추아 교수가 듣는다면 즉각 공격해 올 것이 확실한 뉘앙스의 단어이다.
그러나 자기연민이 주는 위로와 치유는 생각 이상이라는 게 네프 교수의 결론이다. 그녀가 말하는 자기연민은 세 가지 태도로 구성돼 있다. 첫째는 ‘마음챙김’(mindfulness)이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상황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커먼 휴매니티’(common humanity)다. 당신만 어려움을 당하는 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매일 고통과 좌절, 그리고 실망을 겪으며 살아간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네프는 자기가 자녀의 자폐증 진단을 받은 첫 부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림으로써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마지막은 ‘자기친절’(kindness)이다. 네프 교수는 자신에게 관대해지면서 아들 문제를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됐으며, 아들이 말들과 어울릴 때 한결 더 표현이 많아지는 등 자폐증세가 완화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이야기는 ‘The Horse Boy’라는 책과 다큐멘터리로도 널리 소개됐다.
자존감은 분명 긍정적 힘이지만 지나칠 경우 자칫 나르시시즘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런 나르시시즘은 큰 실패를 겪을 경우 급속히 허물어지는 경향이 있다. 과거 어느 세대들보다 자존감은 높지만 심리적인 유연성이 떨어지는 요즘 대학생들이 그렇다.
이들은 형편없는 시험 성적을 받거나 취업에 실패하고, 다른 이들의 비판을 들으면 방어적이 되고 쉽게 불안과 우울증을 느끼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자기연민보다 ‘자기처벌’ ‘자기비난’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처럼 치열한 경쟁시대에 높은 자존감을 유지하는 데는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된다.
자기연민 연구자인 영국의 폴 길버트는 “성공에 이르는 비밀은 실패할 수 있는 능력에 있다”고 강조한다. 길버트에 따르면 자기연민을 가진 사람들은 유약할 것이란 일반의 통념과 달리 오히려 더 열심히 노력하고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자세도 더 뚜렷하다는 것이다.
자기연민 훈련은 거식증과 과체중 치료에도 상당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새해가 시작될 때마다 하는 다짐들이 대부분은 실패로 끝난다. 실제로 새해다짐은 3월을 넘기기가 힘들다는 것을 리서치 결과는 보여주고 있다. 지금이 바로 그런 시점이다. 왜 그럴까. 지나친 엄격함, 그리고 실패에 대한 강박 때문인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람들은 한 번만 실패해도 곧바로 자책하고 동기를 상실해 버린다.
그러니 스스로를 너무 몰아세우기 보다는 조금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그러는 것이 당장의 마음의 평안뿐 아니라 장기적 목표의 성취를 위해서도 바람직하고 효과적이다. 1,600여 년 전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을 가엾게 여길 줄 모르는 사람보다 더 가엾은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종교적인 고백이지만 성인의 가르침 속에는 시대를 초월하는 삶의 지혜가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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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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