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8월28일, 워싱턴 DC에 있는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 기념관 앞에는 20만명 이상의 흑인과 백인이 흑인의 평등한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 나선 한 청년의 연설을 경청했다. 바로 워싱턴 대행진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유명한 연설 ‘나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가 주제였다.
그는 외쳤다. “언젠가 나는 조지아주의 붉은 언덕에서 옛 노예의 자손들이 옛 노예 소유주의 자손들과 함께 형제애의 테이블에 앉을 수 있게 되리라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의 4명의 자녀들이 피부색으로 판단되지 않고 그들의 인품에 의해 판단되는 나라에서 살게 되리라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날은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에 서명한 지 100년이 되는 해였다. 하지만 미국사회에 깊숙이 뿌리박힌 흑인에 대한 백인들의 차별행위는 근절되지 않은 상태였다. 흑인은 백인이 가는 식당에서 같이 먹고 마시는 것은 물론, 함께 어울리기도 어려웠고 백인 동네에 들어가서 사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러나 킹 목사가 애절하게 외친 흑인의 자유와 흑백 평등은 오늘날 그가 꿈꾸던 바 그대로 현실화됐다. 물론 아직도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흑인들이 마음 놓고 백인들과 같이 한 식당에서 먹고 마시고 하면서 자유롭게 어울리고 실력만 있으면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좋은 세상이 되었다.
이 길고 긴 고통의 역사를 끊어놓은 워싱턴 대행진과 유사한 역사적인 행진이 지난 24일 뉴욕, LA, 워싱턴 등 800개 미주 전 지역에서 열려 또 한 차례 미국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죽어나가는 참극을 보다 못한 청소년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며 분노하면서 거리로 뛰쳐나온 것이다. '우리의 생명을 위한 행진(March For Our Lives)'-총기참사의 재발을 막기 위한 염원이 절절이 담긴 행진이었다. 이날 행진에는 연예인, 시민들도 함께 했다.
정치권은 그동안 시민들이 아무리 총기규제에 대한 목소리를 높여도 그 때마다 지금은 그 문제를 거론할 때가 아니다. 사건의 배경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어이없는 반론만 내놓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는 학생들과 시민들의 분노에 찬 외침과 간절한 호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날 행진에는 총기참사의 현장인 플로리다 더글라스 고교 생존학생들이 연단에 올라가 정치권에 “총기 없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이 자리에는 사반세기 전 워싱턴 대행진에서 연설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9세 손녀 욜란다 르메 킹이 나와서 “나에게도 총기 없는 세상이 돼야 한다는 꿈이 있다.”고 연설, 총기규제는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사안이 되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최악의 총기참사는 지난 몇년 사이 어린이 20명을 포함, 28명이 숨진 샌디훅 초등학교에 이어 50여명의 사상자가 나온 찰턴 헤스턴 교회, 58명이 숨지고 546명이 부상당한 라스베가스, 26명이 숨진 텍사스주 교회, 17명이 사망한 더글라스 고교내 총격사건 등 일일이 다 거론하기도 쉽지 않다.
총기에 의한 참극이 계속되는 나라는 미국 말고 어디 또 있는가. 그러고도 미국이 지구상 최고의 선진국가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대체 얼마나 더 많은 희생자가 나와야 정치권은 움직일 것인가. 그대들에게는 사랑하는 가족, 친지, 이웃들도 없는가.
이제 정치권은 더 이상 개인의 총기 소지 자유를 운운하는 수정헌법 2조만을 거론하고, 막강한 자금력을 동원해 의회를 꽉 잡고 있는 전미총기협회(NRA)의 하수인 노릇만 하고 있어선 안 된다.
지난 14일 더글라스 고교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에서 14살 딸을 잃은 로리 알하데프는 방송인터뷰에서 울부짖었다. 총기사고를 멈출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당장 무언가를 해달라고... 시민들의 간절한 호소가 모아져 미국사회의 총기 참극이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것인가. 킹 목사가 바라던 꿈이 현실화된 것처럼 총기 없는 세상을 갈망하는 그의 손녀딸이 꾸는 꿈도 조만간 이루어지는 날이 올 수 있지 않을까.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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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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