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순히 밥만 먹는 게 아니라, 예술-공간까지 소비하는 것
▶ 가성비만 따지는 분위기 탓에, 고급 서비스-인력 정착 안 돼
2016년이 정점이었다. 그 해 한국 파인 다이닝(미식가들을 위한 최고급 식당) 문화는 당장이라도 꽃필 것만 같은 봄기운이 완연했다.
한식을 모던하게 재창조한 한식 다이닝이 화제가 된 것도 한 몫 했다. 곳곳에서 ‘코스 요리’가 아닌 파인 다이닝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는 레스토랑들이 오픈 소식을 알려왔다. 모두가 그 해 11월 첫 발표될 ‘미쉐린 가이드’ 서울편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몇 해 전부터 한국의 식당들이 언급되기 시작한 레스토랑 랭킹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도 새로운 미식 인류들에게 맛 집을 고르는 하나의 준거가 되어 있었다. 비록 시작은 미약하나마, 몇 해 안으로 파인 다이닝이라는 문화가 삶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으로 자리 잡을 것만 같았다.
거품이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도입을 둘러싼 갈등이 중국의 큰 손 관광객의 발길을 끊어놨다. 동남아시아, 중동 등 새로운 시장의 관광객들이 유입되었지만 유커만큼 유의미한 숫자의 경제효과를 내주지는 못했다. 이미 먹을 만큼 먹었다는 듯이, 국내 향유층의 관심도 다소 식었다. 청담동과 도산공원 앞 일대의 고급 외식 시장은 현재 하이엔드 초밥 전문점과 프리미엄 소고기 코스 전문점들이 파이를 나눠 가져갔다.
시장 분위기와 반대로, 파인 다이닝 부류의 레스토랑은 지금도 생겨나고 있다. 최근에만 해도 한남동에 모수, 학동에 무오키가 문을 열어 미식가들 사이에서 좋은 평판을 얻고 있다. 수요가 늘지 않았는데 공급은 이어지니 경쟁이 치열해진다. 셰프 A씨는 불안을 감추지 않았다. “예약이 끊이지는 않지만 전처럼 밀리지가 않아요. 어떤 날은 빈 자리가 생기기도 하는데 이대로 쭉 가다가는 유지하기 힘든 게 아닐까, 너무 불안해요.”
한국에서 파인 다이닝 문화가 시작되려다가, 큰 난관을 만났다.
도대체 파인 다이닝이 무엇이길래
파인 다이닝은 요리로 하는 예술이다. ‘블랙 팬서’ 같은 블록버스터 상업영화보다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처럼 평단과 영화 애호가를 동시에 사로 잡는 영화와 비슷하다. 정확히는 엄청난 롱테이크(컷을 나누지 않고 한번에 오래 찍는 촬영기법)로 대부분 관객을 잠들게 하지만 영화 예술적 가치로 칭송 받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예술영화와 가깝다. 태도로 보면 순수 예술, 즉 파인 아트다.
돈이 안 된다는 점이 가장 큰 공통점이다. 목적은 작가로서의 요리사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식사라는 시간과 공간, 행위에 담는 것이다. 완성도는 높을지언정 향유층이 적고, 독창성이 중시되며 이를 누리기 위해서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한다.
“파인 다이닝은 문화적으로 보면 공연 예술과 비슷한 구조입니다.” 정식당의 임정식 셰프는 중국 상해에 있는 레스토랑 울트라 바이올렛을 예로 들었다. 세계적으로 주목 받으며 천재라 불리는 셰프 폴 파이레의 울트라 바이올렛은 오감을 모두 활용해 한 편의 공연 같은 식사를 만들어 낸다. 한 끼 100만원에 달하는 가격에도 전 세계가 주목하는 것은 파이레 셰프가 미디어 아트를 레스토랑 안에 끌어들여 파인 다이닝의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서비스도 중요한 요소다. 스와니예의 이준 셰프는 “10만원 이상의 코스 음식이 나온다고 해서 다 파인 다이닝인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뉴욕 퍼세 레스토랑의 서비스를 예로 들었다. 하이힐에, 잘 차려 입고 혼자 레스토랑을 찾은 여성이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서자 담당 서버가 텔레파시가 통한 듯 아무 것도 묻지 않고 화장실 앞까지 손님을 에스코트한다는 것.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손님이 조금이라도 원하는 게 있으면 미리 알고 해줄 수 있는 것이 굉장한 디테일입니다. 그 손님에겐 굉장히 편안한 배려였을 것입니다. 파인 다이닝이라면 당연한 수준의 서비스입니다.”
반면 한국에선 서비스 부문의 고급 인력을 갖추기가 쉽지 않다. 들어가는 돈에 비해 버는 돈이 적은 레스토랑의 수익구조도 걸림돌이다. 매일 만석이어야 레스토랑에 간신히 미래가 있다. 몇 자리가 비는 날이 이어지면 당장은 망하지 않는다 해도 앞날은 비관적이다. 미래를 위해 시설에 지속적인 투자를 할 수 없다. 무엇보다 장기 근속 직원들의 고임금과 복지를 감당할 수 있는, 선순환구조를 만들지 못한다. 극단적으로 전망했을 때 낡고 허름해진 레스토랑에서 서비스 비전문가인 아르바이트생이 툭 놓고 가는 음식을 손님이 먹을 수밖에 없게 된다. 이준 셰프는 “서비스에 있어서는 인건비 지출이 많을수록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며 “식사에 있어 가성비만을 계속 따지는 한, 공급자나 소비자나 심리적으로 지갑을 선뜻 열기 힘든 구조가 이어진다”고 말했다. 주옥의 신창호 셰프는 “셰프 인건비가 따로 나가지 않아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농담처럼 말했다. 그는 “(월급 셰프로) 일하면서 모아둔 약간의 돈에, 더 적은 은행 대출로 주옥을 시작했다”며 “다른 곳에서 일하면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겠지만, 스스로 하고 싶은 요리가 있기에 계속 해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다양하고 고급화된 재료도 중요한 요소다. 다이닝 인 스페이스의 노진성 셰프는 프랑스 파리의 레스토랑 아르페주에서 스타주(견습)로 잠시 일했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파리 근교에 농장 세 곳을 두고 셰프가 원하는 식재료를 원하는 크기와 맛으로 키웁니다. 시장에 나오지 않는 특수한 식재료를 만들어내는 것이지요.” 그는 “언젠가 꼭 해보고 싶은 일”이라며 “좋은 식재료는 파인 다이닝의 50%를 차지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보는데, 한국의 식재료는 아직 다양성이나 품질에서 아쉬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
파인 다이닝은 단지 식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레스토랑에 전화를 해 예약을 하고, 건물에 들어서고, 레스토랑에 들어서서 좌석에 앉아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고 나올 때까지 일련의 과정 모두가 파인 다이닝을 구성한다. 때로는 기념으로 가져갈 수 있는 메뉴지, 셰프가 챙겨준 작은 간식이나 선물까지 포함되니 그 다음날, 혹은 몇 년 후까지 이어지는 여운마저도 파인 다이닝의 일부다.
제로 콤플렉스의 이충후 셰프에게 파인 다이닝은 ‘잔상’이라는 단어로 표현된다. 그는 프랑스 중부 소도시 로안 교외 우슈에 위치한 3스타 레스토랑 미셸 트루아그로에서의 “잔상”을 떠올렸다. 3대째 3스타를 유지하고 있는 이곳은 농가를 개조한 듯 레스토랑과 소박한 호텔을 함께 운영하는 형태다. 이충후 셰프는 “연못과 정원, 건물을 보며 느낀 감상이 음식과 겹쳐서 오랫동안 감성적으로 기억에 남는다”며 “음식, 공간 등 무엇인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것이 좋은 파인 다이닝이라고 본다”고 정의했다.
상중하 중 ‘하’, 갈 길 먼 한국
전 세계적인 파인 다이닝의 추세를 상중하로 나눴을 때 한국에서 파인 다이닝으로 불릴 만한 레스토랑들의 위치는 하 단계를 겨우 밟았다. 몰려 있으니, 선택의 다양성이 부족하다. 맛의 볼수록 만족도가 올라가지를 못한다. 세계엔 더 ‘파인’한 레스토랑이 얼마든지 있고, 당연히 고가다. 이유 없이 값만 비싼 게 아니라 속속들이 비용이 드는 것 천지이고, 결국 손님에게 돌아오는 그 만큼의 가치가 있기에 비싸다. 값이 비싸면 바가지 썼다고 느끼는 한국적 정서가 끼어들 틈이 없다. 30만원, 50만원, 100만원 등 다양한 가격대의 레스토랑들이 존재한다. 전 세계적인 불황에도 불구하고 명성을 여전히 구가하며, 파인 다이닝을 지향하는 꼬마 요리사들의 선망을 여전히 끌어안고서 말이다.
한국의 파인 다이닝은 가격으로 놓고 보자면 딱 디너 기준으로 음료를 제외하고 손님 1인당 20만~30만원대까지다. 그보다 비싼 레스토랑이 현재 없다. 대개는 10만원대, 20만원까지다. 먹고 살기 팍팍한데, 단순히 호화롭고 비싼 식당이 필요하다는 말이 아니다. 더 많은 가치 부여가 된 ‘진정한’ 파인 다이닝이 없다는 얘기다. 파인 다이닝이 문화로 정착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리고 한 단계 위의 파인 다이닝을 누군가 시작할 수 있기 위해서는 우선 시장부터 형성돼야 한다. 문화생활의 일부로서의 식사가 있을 수 있다는 인식 형성도 필요하다.
가장 좋은 좌석에서 무용이나 음악 공연을 보듯이, 파인 다이닝도 문화를 향유하며 인생을 즐기는 하나의 방법으로 받아들이는 유의미한 소비층. 식사를 즐기기보다는 생명유지 수단 정도로 여기는 지금으로부터 우리에겐 좀더 갈 길이 남았다. 우선은 식사를 즐기는 것에 대한 죄의식을 벗어나야 하고, 즐기는 방법을 여러 층위에서 시도하고, 선택할 단계가 남았다. ‘즐기는 식사’의 최정점에 있는 파인 다이닝. 요리사가 영웅이 되고 외식 경영자가 우상이 된 이 때에 한국에 없는 딱 하나다.
<사진=각 홈페이지, 레스토랑 제공>
<
이해림 객원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총 2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밥 먹으며 영화 찍냐? 특히 한국은 깔깔대며 떠드는 소리 속에서 즐기는 설렁탕이 한 수 위입니다.
짬뽕이냐 짜장이냐? 아니면 짬짜면으로 타협할 것인가? 이것이 문제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