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위 ‘레테르’가 없는 사람이다. 얼마 전에 새삼스럽게 명함 한 번 새겨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름 석 자 앞이나 뒤에 쓸 만한 타이틀이 없다는 것을 알아챘다. 큰 아이를 붙들고 하소연을 하니 “엄마! 우리가 있잖아!” 한다. 시집가서 제 앞가림하느라 정신없는 딸아이가 말하는 ‘우리’라는 단어가 얼마나 생뚱맞고 헛헛한지, 결혼했지만 제 이름을 그대로 고수하며, 교수라는 ‘레테르’를 가진 그 아이는 알 리가 없다.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꽃다운 나이에 미국에 이민을 와 미세스 윤으로 통했다. 아직 여자 대통령 하나 내지 못하는 미국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유리천장이 너무 두껍다. 여자 대통령을 이미 내었고, 처녀 때 이름을 그대로 간직하는 대한민국 보다 이런 면에서 미국은 좀 처진다고나 할까. 아무리 잘난 여자도 결혼하면 남자의 성을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알아 결혼 전의 이름은 단지 처녀이름(Maiden Name)으로 묻어둔다.
이민 올 때 여권을 내며 나의 성은 윤이 되었다. 전화를 걸어 “저는 Young Yoon 인데요.”하고 얘기를 시작하려하면 보통 Yoon이 이름이 되고 Young이 성이 되기 일쑤였다. 미국에 흔한 Young이라는 성 때문에 “제 성은 Yoon 인데요.”라고 꼭 성가시게 다시 고쳐 주어야했다. 그래서 시민권을 받으면서 영어이름을 지어 편리하게 쓰고 있으나 부모가 지어준 이름도 패밀리 네임인 성도 완전히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다.
미국사람들은 조금만 친해져도 이름을 부르나 우리 동포사회에서는 웬만큼 친구가 되었어도 관계와 지위를 호칭으로 부르는 한국문화 때문에 이름을 부르지 못한다. 대신 미세스 리, 미세스 김 하면서 남편의 성을 빌려 서로를 올려 부른다. 우리의 문화를 잘 모르는 미국사람들은 우리를 좀 이상하게 생각하고 또 웃긴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싶다. 나보다 연배이신 분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는 미세스 윤이라고 소개하기가 쑥스러워 자연히 아이들을 아는 분에겐 미진이 엄마로, 남편을 아는 분에게는 누구의 아내라고 소개를 한다. 즉, 나의 ‘레테르’ 는 세 아이와 남편인 셈이다.
내가 산악부장이라는 ‘레테르’를 가진 남편을 친구의 소개로 산에서 만난 것은 대학졸업을 일 년 앞둔 해였다. ‘산사나이’라고 호기를 부리는 그와 결혼하면 산에서 하듯 손도 먼저 잡아주고 꽁치 넣고 김치찌개도 끓일 줄 아는 멋있는 남자라고 100% 믿고 결혼했다. 결혼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무엇이든 한번 빠지면 정신없이 빠지는 남편은 내가 바로 옆에서 “칵” 죽어도 모를 정도로 자기 일에 집중을 잘하는 성격이다. 나와의 연애는 일단 결혼으로 성공하였으니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한 나의 결혼은 이미 그에게는 막을 내렸는지도 모른다. 무엇을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정열적으로 하는 그에게는 수많은 ‘레테르’가 붙어있다.
젊었을 때는 “뭐 ‘레테르’가 밥 먹여 주냐? 집안이나 잘 챙기고, 오피스에서 환자에게 좀 친절하고, 마누라만 사랑하면 되지!”하며 바가지도 긁어 보았다. ‘레테르’는 자신이 달고 지저분한 일들은 내가 감당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달라지지 않는 남편에게 두 손을 들고 방관하는 자세로 보는 지혜를 깨달은 건 아이들이 다 떠난 후다.
나의 이름을 찾은 것은 한인교회에 나가면서 부터다. 옛 애인을 만나면 이리 좋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기뻤다. 남들에게 문영애로 불린다는 사실이 잃었던 나를 찾은 것같이 기분이 좋았다. 김춘수의 시 <꽃>처럼 다시 꽃으로 태어난 것 같았다. 요즈음은 글 제목 밑에 문영애라는 이름을 쓰기 위해 내가 어쭙잖은 글을 쓰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가슴에 감동의 한 줄 글을 남길 수 있는 작가라는 레테르를 뒤 늦게 꿈꾼다고 누가 뭐라 하랴.
세상의 ‘레테르’가 하나님 나라에서는 휴지조각이라는 사실을 아는 데는 별로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런대도 이상한 것은 교회에서도 집사, 권사, 장로라는 ‘레테르’를 붙이겠다고 극성을 부리는 사람들을 보면 이 ‘레테르’가 이름 석 자에 붙어야 무엇인가 된 것 같아 기운이 나나보다.
죽음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가장 정직하게 말해 줄 것이다. 후에 나의 비석엔 별 수식어 없이 이름 석 자와 태어난 날과 죽은 날이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나의 장례식 때, 세상에 남은 사람들이 나의 뒷모습에서 무엇을 느낄까? 내게 작은 바람이 있다면 누군가가 나의죽음을 약간 아쉬워하며 광야 같은 세상을 살면서도 지혜롭게 살았다는 ‘지혜로운 여자’였다는 ‘레테르’를 하나 달아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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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애 워싱턴 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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