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과 두려움(Shock and Awe)‘-90년대 나온 펜타곤의 전술개념이었던가. 터부(taboo)를 깨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런 트럼프 스타일의 해외정책에 붙여진 이름이 ‘충격과 두려움’의 해외정책이다.
“전 세계가 뒤집어졌다.” 최소한 며칠이라도 내부 숙의과정을 거칠 것으로 생각됐다. 김정은을 만난 한국 사절단이 워싱턴을 방문했다. 그리고는 김정은의 의사를 전했다. 미국과 회담을 하고 싶다는 것.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을 초청하고 싶다는 것 등등. 바로 대답이 나왔다.
현직의 미국 대통령이 북한지도자와 만난 적이 없다. 전화통화 조차 하지 않았다. 그 불문율을 깨고 트럼프는 정상회담 제의를 선뜻 받아들인 것이다. 회담 개최시기도 5월말 이전으로 밝혀졌다. 전광석화 같다고 할까. 미국과 북한 관계의 그 초고속진전에 전 세계는 충격에 빠진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북한에 대한 군사공격이 임박했다는 ‘4월 위기설’이 파다했다. 그런데 극적인 반전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김정은을 만나겠다’-. 트럼프의 이 말이 전해지자 미국의 언론들은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비관론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쇼맨십이 강한 트럼프가 한껏 들뜬 상태에서 내린 경솔한 결정이라는 거다.
북한에 제한적인 군사공격을 가하는 ‘코피 작전’ 가능성을 흘렸다. 그러자 그 무모함을 일제히 지적했었다. 그 주류언론들이 김정은과의 회담결정에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 결정은 그러면 패착에 가까운 악수(惡手) 일까. 그 답을 얻기 위해 트럼프의 착수를 뒤집어 복기(復棋)를 해보자.
한국의 특사들이 대화를 하고 싶다는 김정은의 의사를 전한다. 즉답을 피하고 숙의에 숙의를 거친 끝에 결국 거부한다. 그 경우 어떤 반응이 나올까. 트럼프 백악관 팀은 전쟁광들이란 비판이 쏟아질 것이다.
이 같은 미국 내 여론도 여론이지만 한국의 여론은 더 나빠질 수 있다. 그러니까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 국민의 평화에의 염원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난이 거세지면서 북한의 한미동맹 이간 술책이 먹혀들어갈 공산이 크다.
다른 말이 아니다. 김정은의 평화공세에는 미국을 진퇴양난의 코너로 몰고 가는 책략이 숨겨져 있다. 그 점을 간파하고 역으로 받아친 것이 트럼프의 정상회담 제의 전격 수락인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중국도 허를 찔렸다. 북한문제만 나오면 브로커를 자처하고 나선다. 그 속셈은 북한이란 카드를 대미외교의 지렛대로 사용하려는 것. 그 중국을 따돌린 것이다.
때문인가. 스펙테이터지는 ‘돋보이는 호착’이란 평가를 내렸다. 과거 레이건 대통령이 소련의 고르바초프에게 ‘베를린 장벽을 헐라’고 도전하고 나섰을 때 진보 보수를 망라하고 미국의 외교계는 ‘미친 짓’이란 반응을 보였다. 바로 그 때가 연상된다는 거다.
왜 김정은은 이 시점에 대화에 나섰나. 역시 트럼프의 대북정책이 먹혀들었기 때문이라는 진단이 우세하다. 북한을 대화의 장에 이끌어낸 주 공로는 바로 트럼프의 ‘충격과 두려움’해외정책에 돌아간다는 거다.
“중국은 북한과 관련해 3개의 나쁜 옵션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안정됐지만 핵무장한 북한이다. 더 나쁜 옵션은 정치적 위기를 맞은 북한이다. 최악의 옵션은 전쟁이다.” 북한 전문가 안드레이 란코프의 말이다.
북한의 유일한 동맹인 중국조차 미국 주도의 제재에 참여했다. 왜. 그 대안은 전쟁밖에 없다는 두려움에서다. 무슨 말인가. 중국도 외면하는 가운데 경제제재로 체제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그 가운데 미국의 공격가능성도 높아가고 있다. 절박한 상황에 몰린 북한은 문재인 정부에 손을 내밀었다. 결국 미국과의 대화에 나설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렸다는 거다.
그러면 한반도에 ‘비핵(非核) 평화의 봄’은 마침내 찾아온 것인가. 아직 멀었다는 것이 내셔널 인터레스트지의 해리 카지아니스의 진단이다. 절박한 상황에 몰린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판단은 오산이다.
김정은은 반대로 북한의 미국에 대한 핵 억지력확보가 워싱턴을 대화로 불러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항복하려고 대화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미국과 동등한 입장에서 협상을 한다는 자세로 대화에 임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트럼프-김정은 회담은 성공보다 실패 가능성이 더 크고 그 경우 한반도는 더 위험한 상황에 몰릴 수도 있다는 거다.
“…회담이 실패로 돌아갈 경우 트럼프는 전쟁을 피하기 위해 인력으로써 할 것은 다했다는 명분을 내세울 수 있다.” 이어지는 분석이다. 지금 현재로는 북한에 대한 군사공격은 시기상조의 감이 있다. 군사개입 대의명분에 대한 콘센서스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김정은과의 회담이 결렬됐을 때는 사정이 달라질 수 있다. 겨울이 다시 몰아닥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오는 4월은 한반도에 있어 극히 잔인한 4월이 될 것이다’- 어쨌거나 그 전망이 빗나가 일단은 다행이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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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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