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EO서 말단직원까지, 국내외 미슐랭 식당 찾아, 서빙·메뉴 등 벤치마킹 열공
▶ ‘빕 구르망’레스토랑이라는데 양 적고 맛 평이, “국내 입맛에 맞지 않는 기준 들이댔나”지적도
서울신라호텔 한식당 라연 신선로.
미슐랭 2스타 사대부집 곳간.
미슐랭 별 따기 전쟁
# 최근 서울 시내의 한 유명 만두 전문점을 찾은 30대 직장인 정 모 씨는 기대에 못 미치는 음식 가격과 맛에 적잖이 실망했다. 해당 식당은 ‘미슐랭(미쉐린)가이드 서울 2018’에서 ‘가성비(가격 대비 품질)’ 좋은 레스토랑으로 소개한 빕 구르망 리스트에 있던 업소였다. 들어서자마자 빈 주차장이 눈앞에 보이는데도 굳이 발레파킹 비용을 따로 받아 가성비 식당이 맞는지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대표 메뉴인 만둣국은 한 그릇에 1만 3,000원이라는 가격이 무색할 정도로 양이 적었다. 정씨는 “미슐랭 가이드에서 가성비 좋은 식당으로 지정됐다는 얘기만 듣고 갔는데 서울 시내 1만 원 이내의 만두국 맛집에 비해 양은 적고 맛은 평이해 아쉬웠다”며 “무슨 기준으로 가성비를 따졌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미슐랭 가이드 서울’이 국내 맛집 지형을 뒤흔들면서 선정 과정과 기준에 대한 소비자들의 궁금증도 날로 증폭되고 있다. 미슐랭 스타에 선정됐다는 이유만으로 해당 식당에 손님이 폭증하는가 하면 “국내 정서와 입맛에 맞지 않는 기준을 들이댄 것 같다”는 아쉬운 반응도 함께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미슐랭 가이드 서울을 발표하는 미쉐린코리아가 밝힌 선정 과정은 이렇다.
서울의 미슐랭 스타 식당 역시 다른 나라 미슐랭 가이드와 마찬가지로 전문가로 구성된 일정 수 ‘평가원(인스펙터)’의 암행으로 결정된다. 이들은 평가 전 미슐랭의 전문교육을 거친다. 평가원들은 다국적으로 구성되며 해당 국가 국적을 가진 이가 반드시 한 명 이상 포함된다. 미슐랭 가이드 서울 평가 과정에서도 1~2명의 한국인 평가원이 참여했다.
평가원들은 레스토랑을 방문할 때 한 무리의 일행처럼 움직인다. 다른 고객과 똑같은 방식으로 예약하고 행동하며 어떠한 기록도 남기지 않는 게 특징이다. 독립성과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자신의 식사 값을 직접 지불한다. 한 사람이 아닌 평가원 모두가 별점을 부여하며 미슐랭 스타는 만장일치제로 정한다.
특히 만장일치제는 미슐랭 가이드의 총괄디렉터가 주관하고 모든 평가원이 참석하는 ‘스타 세션’이라는 독특한 과정을 거친다. 이 세션은 이견이 있을 경우 며칠이 걸려서라도 만장일치로 통과될 때까지 진행되는 방식이다.
미쉐린코리아의 한 관계자는 “미슐랭 가이드의 수석평가원과 편집장이 각 지역을 구분해 평가원들을 지정한다”며 “평가원들이 지역을 배정받으면 방문 계획을 세우고 방문 전 레스토랑에 대한 자료를 모으며 사전 준비부터 한다”고 소개했다.
미쉐린코리아가 밝힌 평가 기준은 크게 5가지다. △요리재료 수준 △요리법과 풍미의 완벽성 △요리의 창의적인 개성 △가격에 합당한 가치 △전체 메뉴의 일관성과 언제 방문해도 변함없는 일관성 등이 그것이다.
유럽·미국·일본·홍콩 등 전 세계 어느 곳에서 활동하는 평가원이라도 모두 똑같은 기준을 준수한다. 이에 따라 지역이 달라도 미슐랭 가이드의 별점이 같다면 요리 수준은 같다고 봐야 한다는 게 미쉐린 측의 주장이다. 예컨대 프랑스 파리의 1스타 식당은 서울의 1스타 식당과 같은 수준이라는 얘기다.
미쉐린코리아 관계자는 “‘미슐랭 스타는 접시 안에 있다’는 말처럼 미슐랭 가이드는 오직 요리만을 평가한다”며 “장소·분위기·서비스·식기 등은 별점 부여 시 고려사항이 아니고 스타가 아닌 다른 형태의 픽토그램으로 표기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미슐랭 가이드 서울 제작을 둘러싼 공정성 논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미슐랭 측에서 원론적인 기준만 제시할 뿐 실제 평가를 어떻게 수행하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미슐랭 측의 주장대로 한국인을 포함한 다국적 평가원이 우르르 특정 식당에 들어갈 경우 암행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눈에 띌 수밖에 없다.
특히 2016년에 처음 발표된 ‘미슐랭 가이드 서울 2017’에서 총 24곳의 식당 가운데 13곳이 한식당으로 드러나자 논란에 불이 붙었다. 공정한 맛의 평가가 아니라 정책적으로 ‘한식 세계화’를 추진하는 정부와 한식재단의 후원을 받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한국관광공사와 농림축산식품부 소관인 한식재단이 유일하게 미슐랭 가이드 서울 2017 광고에 참여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논란은 증폭됐다.
여기에 지난해 문체부 국정감사에서 가이드 안에 총 34건이나 오류가 있다고 지적받으면서 신뢰는 더 떨어졌다. 꽃게(blue crab)를 ‘flower crab’으로, 우리 고유 음식인 추어탕(loach soup·미꾸라지탕)을 ‘autumn mudfish soup(가을 이어탕)’로 오역하는 등 음식과 재료를 알고 평가한 것은 맞는지 의문이 드는 부분이 여기저기 발견됐다.
아울러 일반 소비자 사이에서도 지나치게 고급 음식점만을 대상으로 별점을 부여한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실제로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18’에 선정된 미슐랭 스타 식당과 빕 그루망 등급 레스토랑 72곳 가운데 30곳이 강남 3구에 몰려 있다. 미슐랭 스타나 빕 그루망 등급을 받지는 못했지만 좋은 평가를 받은 식당을 뜻하는 ‘더 플레이트’까지 합치면 총 174곳 중 강남 3구의 식당이 83곳에 달한다.
<윤경환 기자>
미슐랭 가이드 역사 알아보기
미식의 대명사가 된 ‘미슐랭 가이드’는 어째서 타이어 회사가 만들게 된 것일까.
미슐랭은 지난 1889년 프랑스 중부 클레르몽페랑 지역에서 앙드레·에두아르 미슐랭 형제가 설립한 타이어 회사다. 타이어를 겹겹이 쌓아 사람 형태로 만든 이 회사의 마스코트 ‘비벤덤’은 이름은 생소해도 못 알아보는 사람은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미슐랭이 가이드북을 고안한 이유는 자동차 여행을 장려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당시 프랑스에는 자동차가 약 3,000대밖에 없을 정도로 드물었고 도로 사정도 열악했다. 자동차 여행은 돈도 많이 들고 위험하기까지 한 모험이었던 셈이다. 내무부 산하 지도국에 근무하고 있던 앙드레 미슐랭은 자동차 여행을 북돋울 수 있는 여행 가이드북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이들은 1900년 식당과 숙박시설·주유소 등의 정보를 담은 가이드북을 내고 미슐랭 가이드, 프랑스어로 ‘기드 미슐랭’이라 이름 지었다.
초기에는 타이어 정보나 도로 법규, 자동차 정비 요령, 주유소 위치 등이 주된 내용이었고 식당 소개는 운전자의 허기를 달래주는 차원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호평을 받자 1922년부터 유가로 판매되기 시작했고 이후 대표적인 미식 안내서로 명성을 날리게 됐다.
미슐랭의 별점 등급에서도 이 같은 태생의 비밀을 엿볼 수 있다. 최고점인 별 세 개는 ‘요리가 매우 훌륭해 특별한 여행을 떠날 가치가 있는 레스토랑’이라는 의미다. 별 둘은 ‘요리가 훌륭해 멀리 찾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레스토랑’, 별 하나는 ‘요리가 훌륭한 레스토랑’이다.
미슐랭 가이드는 유럽과 미국을 거쳐 아시아에까지 확산하며 대성공을 거두며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았다. 1957년부터 스페인과 영국·독일 등 유럽 국가에서 출간되기 시작해 ‘미슐랭 뉴욕 2005’ ‘미슐랭 도쿄 2007’ 등 세계 곳곳에서 가이드를 발간했다. 한국에서는 2016년 11월 ‘미슐랭 가이드 서울 2017’이 260쪽 분량으로 출간됐다. 미슐랭 가이드 레드 시리즈 서울편은 전 세계 28번째이자 아시아에서는 일본·중국·싱가포르 이어 네 번째로 발간됐다.
유명 레스토랑을 소개하는 ‘레드 시리즈’ 외에 미슐랭 가이드는 여행지의 볼거리를 소개하는 ‘그린 시리즈’도 발간하고 있다. 꼭 가봐야 할 곳은 별 세 개, 추천하는 곳은 별 두 개, 흥미로운 곳은 별 한 개로 구분한다. 한국에서는 2011년 5월 발간된 바 있다. 한국의 여행지 중 ‘꼭 가봐야 할 곳’은 23곳, ‘추천하는 곳’은 32곳, ‘흥미로운 곳’은 55곳으로 모두 110곳이 소개됐다.
<박윤선 기자>
지난해 11월 처음 미슐랭(미쉐린) 1스타를 딴 ‘도사 바이 백승욱’은 미슐랭 레스토랑으로 선정된 후 매출이 100% 가까이 늘었다. 지난해 여름만 해도 예약이 어렵지 않았던 도사는 이제는 적어도 1주일 전에 예약해야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됐다. 도사 측은 “미슐랭은 스타를 따는 것도 어렵지만 유지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라며 “언제 ‘미슐랭 암행’이 뜰지 몰라 음식 맛, 퀄리티, 친절한 서비스를 유지하기 위해 직원들 모두 신경이 곤두서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내로라하는 한식당들 간에 ‘미슐랭 전쟁’이 불붙었다. ‘미슐랭 스타’라는 이름표만으로도 소비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따내면 매출 증가는 ‘따 놓은 당상’에다 그 식당의 음식 맛, 시설, 서비스 등이 국제적인 공인을 받아 한 단계 품격이 업그레이드되는 결과도 얻는다. 한국을 찾는 관광객들 사이에 한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을 대표하는 레스토랑이라는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데다 입소문 덕에 레스토랑의 운명이 바뀌기도 한다.
몇 년 전 돈이 안 된다며 특급호텔들이 한식당의 문을 닫고 프렌치 레스토랑 등 서양식 메뉴에 집중하는 동안 서울신라호텔은 고집스럽게 한식당 ‘라연’을 운영해오다 2년 전 미슐랭 스타를 선정하던 첫해 국내 호텔로서는 처음으로 3스타를 받는 쾌거를 이뤘다.
라연은 지난해에도 3스타를 유지해 2년 연속 ‘최고’의 자존심을 지켜온 덕분에 지금은 한 달 전에도 예약이 안 될 정도로 몸값이 높아졌다. 특히 라연의 가격대가 10만~25만원대의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요즘에는 자기 자신에게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20대 젊은 층의 유입으로 라연의 고객 스펙트럼은 더욱 넓어졌다. 또 한국을 방문하는 VVIP 외국 비즈니스맨들에게는 꼭 가보고 싶은 명소로 꼽힌다. 신라호텔의 한 관계자는 “맛의 평준화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퀄리티가 떨어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 쓰고 있다”며 “지난해 전통주와의 컬래버레이션을 강조했는데 좀 더 업그레이드된 ‘마리아주(marriage)’를 추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미슐랭 스타를 따기에는 한식 메뉴가 가장 수월하다. 어쭙잖은 프랑스식 메뉴로는 이미 서양 입맛에 길들여진 미슐랭 암행어사들의 입맛을 잡을 수 없어서라는 얘기가 있다. 미슐랭 스타 선정은 11월에 이뤄지지만 일각에서는 선정 위원들이 3~6월에 집중적으로 다닌다고도 하고 아예 그다음 해 1월부터 무작위로 레스토랑 라운딩을 한다고 해서 업계에서는 시쳇말로 ‘미슐랭 암행이 떴다’는 표현을 쓴다.
올해는 꼭 미슐랭 스타를 거머쥐고 말겠다는 A특급호텔은 이미 1월에 메뉴를 새로 바꿨다. 이 호텔 관계자는 “식음료팀이 아닌 마케팅팀·서비스팀까지 전사적으로 미슐랭 가이드 라인에 맞추기 위해 업그레이드하는 한편 높은 평점을 받기 위한 정보 수집을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전했다.
B특급호텔은 요리, 서비스, 시설, 와인 리스트를 모두 재구성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조만간 ‘미슐랭 태스크포스(TF)팀’도 만든다. 이 호텔은 음식 맛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아예 장류부터 새롭게 바꾸는 한편 식재료 강화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기존 홀 위주의 서비스를 프라이빗 다이닝룸으로 바꾸는 등 시설적인 부분을 보완하는 한편 냅킨 펴는 방식, 웰컴 드링크 서비스 타임과 방법, 핫 요리 서빙 방법, 요리를 플레이트와의 조화를 통해 가장 아름답게 프레젠테이션하는 방법 등 세세한 ‘서비스 스탠더드 매뉴얼’도 새로 만들었다. 이 호텔 역시 최고경영자(CEO)부터 말단 직원까지 국내외 미슐랭 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을 찾아 벤치마킹하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C특급호텔 관계자는 “2016년 첫 회는 준비기간도 짧았고 지난해에는 어떻게 선정되는지를 지켜봤기 때문에 3회차인 올해 만반의 준비를 통해 꼭 스타를 받아내야 한다”며 “호텔 내에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이 있다고 하면 관광객이 호텔과 레스토랑을 선택할 때도 큰 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호텔의 위상과 이미지·신뢰도도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이 호텔은 ‘와인 리스트’를 새로 준비하고 있다. 와인 종류와 개수, 즉 신대륙과 구대륙 와인이 골고루 분포돼 있고 레드와 화이트 와인이 적절히 잘 구비돼 있는지가 미슐랭 선정 기준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다.
호텔, 파인 다이닝 한식당만 목숨을 거는 것은 아니다. 인천국제공항은 제2여객터미널을 새로 오픈하면서 한국인 셰프로는 처음으로 미슐랭 2스타를 받은 임정식 셰프가 총괄디렉터로 나선 한식 브랜드 ‘평화옥’을 유치했다. 공항에서의 식사가 비싸기만 하고 맛이 없다는 이미지를 깨기 위한 것이다. 임 셰프는 “한국의 입구에서부터 진짜 한식을 만나게 하겠다는 취지”라며 “침체기에 있는 파인 다이닝(정찬 요리) 대신 국밥 같은 대량 생산 방식이 가능한 메뉴로 한식의 본질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미슐랭 가이드 고메 페어를 후원한 HDC신라면세점과 현대아이파크몰은 지난해 10월 말 미슐랭 가이드 서울에 등재된 19개의 레스토랑과 셰프가 참여하는 ‘미쉐린 가이드 고메 페어 2017’를 열었다. 라연을 비롯해 라미띠에·리스토란테에오·밍글스·유유안·하모 등 쟁쟁한 스타들이 참여했는데 고객들이 합리적인 가격으로 쉽게 고가의 미슐랭 레스토랑의 시그니처 메뉴들을 맛볼 수 있어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1회가 성공적으로 정착하자 현대아이파크몰 측은 올해부터 이를 정례화시켜 고메 페스티벌을 이어나간다는 계획이다.
‘먹방’과는 무관해 보이는 현대자동차 제네시스는 올 11월까지 미슐랭 가이드 서울과 마케팅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했다. 제네시스는 미슐랭 가이드와의 협업을 통해 고객들의 다양한 미식 생활을 만족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심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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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환·박윤선·심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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