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안홍균의 ‘코리아 게이트’증언 18
▶ ■김한조 조사의 결과는
1978년 4월, 워싱턴포스트지는 김한조가 KCIA로부터 받은 60만 불과 관련해 연방 대배심에서 유죄평결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뉴욕 IRS 전문가들 투입 조사
40만 불의 행방을 추적하면서 김한조의 리스트에 오른 5인 ‘전위대’의 고난은 시작됐다. 제1의 타깃은 가이어 의원이었다.
그가 겪은 고초에 대해 훗날 윤리위 보고서는 “더 이상 할 수 없을 정도로 엄격했다”고 기록했다. 윤리위에서는 뉴욕 국세청(IRS)의 개인 은행 및 금융 전담 수사관 2명을 차출했다. 그들은 가이어 의원의 10년간 세금보고 기록과 계좌 입출금 내역, 은행 거래 내역, 동산과 부동산 및 주식거래 내역 등을 발가벗길 정도로 샅샅이 뒤졌다. 출처가 분명치 않은 현금 거래 의혹을 뒤진 것이다. 게다가 생활태도와 돈 쓰는 습관까지 훑었다. 가이어 의원만이 아니라 그의 부인과 가족, 참모들도 철저한 조사를 받았다.
선거자금에 대한 조사를 하는 건 당연했다. 가이어 의원은 1974년 선거에서 2만6천불을 썼다. 76년에는 모두 2만2천불을 선거 비용으로 사용했다. 김한조가 선거자금을 준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75년 1월, 가이어 의원이 가족들과 라스베이거스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휴가 뒷조사까지 했다. 윤리위는 조사관들을 보내 라스베이거스 호텔의 숙박기록을 뒤졌다. 또 카지노 지배인과 딜러도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아무런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가이어 의원은 윤리위 조사에서 항변했다. “김한조에게서 한 푼도 받은 적이 없다. 그러나 내 의사에 따라 한국에 관해 의회 의사록에 기재한 게 있다. 다만 그 내용은 김의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참조한 적은 있다.”
통상 의원들이 본회의장에서 발언해야 의사록에 기재되지만 의원이 요청하면 희망하는 발언 내용을 의사록에 올려주는데 가이어 의원이 그런 식으로 김한조의 부탁을 들어주었다는 뜻이었다. 결국 윤리위는 “가이어 의원이 돈을 받은 증거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전위대의 결백
가이어 의원뿐만 아니라 나머지 ‘전위대 의원’들도 극심한 고초를 감내해야 했다. 의원들이 증거자료로 제출한 내용을 보면 그들의 면담기록, 방문록과 명함, 명함철, 서한 기록, 초청 기록, 선거운동 및 재무 기록까지 모두 제출해야 했다.
그들은 모두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스스로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그래야 했던 것이다.
그중에서 가이 밴더 잭과 벤자민 길맨 의원은 김한조와 서로 얼굴조차 모르는 사이였다. 윤리위 조사관들이 김한조의 사진을 보여줬지만 누군지 몰랐다. 김한조도 마찬가지였다. 그 의원들의 사진을 보여주니 누군지 모른다고 답했다.
김한조가 로비를 했다는 증거는 없었다. 김한조의 ‘전위대’는 그의 허구로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공상의 전위대원으로 몰렸던 의원들은 모두 혐의를 벗었지만 그들이 받은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5명의 하원의원은 모두 변호사를 고용해 의회의 조사에 대응해야만 했다. 하원의원들의 연봉은 6만 달러 가량이었지만 지역구와 워싱턴을 오가며 생활해야 하는 그들에게 변호사 비용을 감당할 여력이 없었다. 변호사 비를 제대로 내지 못해 몇 년 간 월부로 냈다는 후일담이 내 귀에 들려왔다.
금전적인 고생뿐만 아니었다. 조사를 받는 내내 ‘억울함’을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 자칫 조사를 받는다는 말이 흘러나가면 지역구에서의 정치적 타격은 불을 보듯 빤한 일이었다. 경쟁자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호재는 없었던 것이다.
-김재규의 궁정동 안가 초대
문제의 40만 달러는 김한조와 김재규 중정부장과의 ‘활극’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미 법무성과 FBI의 수사가 점점 자신을 조여 오는 가운데 김한조는 77년 1월 한국을 또 방문했다.
하원 프레이저 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프레이저 위원장과 아랫줄에 스태프들이 보인다.
김상근의 망명과 백설작전의 폭로는 한국 중앙정보부 수장의 교체를 불러왔다. 신직수 부장이 해임되고 1976년 12월 김재규 장군이 취임하게 된다.
김은 청와대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만난 후 1월14일 귀국을 앞두고 김재규 신임 중정부장의 초대를 받았다. 궁정동 안가였다. 김한조는 자신의 저서 ‘코리아 게이트’에서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코리안 로비로 접촉한 미국측 인사들이 누군지?” “그건 지금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40만 달러는 어디에 쓰신 것이죠?” “김 부장, 나는 잠시 후 비행기를 타고 전쟁터로 나갈 사람이오. 우리 그 얘기는 이 이상 하지 맙시다.”
순간 김재규는 벌떡 일어나 손가락으로 삿대질을 하며 고함쳤다.
“야! 김한조. 네가 나를 멸시하는 거야. 앞으로 그 따위로 나를 멸시하면 재미없을 줄 알아!”
김재규는 응접실 의자 옆의 서랍에서 권총을 빼들고 김한조에게 겨누며 외쳤다.
“저런 놈은 내 손으로 쏴 죽여야겠어.”
밖에 있던 윤일균 중정 차장보가 뛰어 들어와 김재규를 말렸다. 한바탕 소동 끝에 김한조는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김상근의 일기장
김한조를 불신한 건 그를 담당했던 주미대사관의 중정요원인 김상근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이 포드 미 대통령의 방한 성사를 위해 애쓰고 있을 때였다. 75년 4월21일, 김한조는 김상근을 자신의 집으로 불렀다. “내가 4월17일에 키신저 국무장관과 포드 대통령을 만났소.”
그는 김상근에게 KCIA에 텔렉스를 보내라고 했다.
김상근은 서울에 보낸 그 보고서 내용을 자신의 일기장에다 그대로 적어놓았다. 그리고 그 밑에 한마디를 더 썼다. ‘거짓말!’ 느낌표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거짓말쟁이임을 직감한 것이다.
김한조의 재판기록에 그와 관련된 대목이 나온다. “가이어 의원이 백악관에 편지를 보내 김한조를 포드 대통령과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백악관은 가이어 의원의 요청을 거절했다. 김한조가 포드 대통령을 만났다며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한 적이 있는데 그것은 개별 만남이 아니었다. 단체의 일원으로 백악관을 방문해 찍은 기념사진이었다.
-징역 3년 유죄평결
김한조의 돈 문제는 하원 윤리위에서 미완으로 남았다. 그렇지만 김한조가 한국정부로부터 60만 달러를 사기 편취(swindle)한 것으로 종결지었다.
어찌됐든 김이 미 의원들에게 돈을 주지 않은 건 천만다행이었다. 동기는 나빴지만 그 결과, 한국도 살고 미 의회도 살 수 있었다. 만약에 김한조가 의원들에게 돈을 줬고 그 사실이 밝혀졌다면 앞으로 미 의원들 중에서 누가 한국을 도우려 했을까. 모두 몸을 사릴 것은 불문가지였다.
코리아 게이트로 김한조는 풍비박산 났다. 의원매수 공모죄와 위증죄로 77년 9월27일 기소됐다. 김상근이 제시한 영수증이 물증으로 채택됐고 이듬해 5월19일 법정에서 징역 3년의 유죄평결을 받았다. 6개월 복역에 나머지는 집행유예였다. 그는 79년 7월16일 펜실베이니아의 알렌우드 연방교도소에서 복역생활을 시작했다.
나는 그의 재판에 가보고 싶었으나 윤리위 검찰관들이 가지 못하게 말렸다.
“당신이 재판장에 갔다가 혹시라도 김한조 변호사들의 눈에 띄어 증인으로 채택돼 증언을 강요받을 수 있소.”
맞는 말이었다. 그 후 김한조는 다시 보지 못했다. 출소 후 그의 가족은 깨졌고 김한조는 1981년 한국으로 귀국해 혼자 외롭게 살다 2012년 저 세상으로 갔다 한다. 삶은 참으로 덧없는 것이다.
코리아 게이트의 3대 의혹, 즉 박동선, 김동조 대사, 그리고 김한조를 겨냥한 조사에서 이렇게 김한조의 백설작전은 끝을 맺었다. 나머지 주역인 박동선과 김동조는 77년 말까지 미국의 수사권이 미치지 않는 해외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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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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