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미국에서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품격을 되찾으려는 강력한 용솟음이 그것이다.
추악한 자들이 갑작스레 신념의 결핍 증세를 보이는데 비해 선량한 사람들은 뜨거운 열정으로 충만한 듯 보인다. 이것이 정치적 변화로 이어질지 아직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 변혁의 순간을 살고 있다.
힘을 얻은 #미투 운동은 정의롭고 도덕적인 방향으로 고개를 틀었다. 불과 몇 개월 만에 미동조차 하지 않을 것만 같던 지형이 변했고, 잘 나가던 성범죄 가해자들은 그들이 애써 도달한 위치에서 추락했다.
파크랜드 교내 총격참사의 반응을 보라. 적어도 일반의 반응은 총기참사에 대한 이전의 평상적인 반응과 다르다. 하루나 이틀 헤드라인을 장식한 후 별 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정치지도자들의 집단적인 몸짓이 나오고, 그리곤 다시 총기 로비에 순순히 끌려가던 예전의 패턴과 다르다.
교내 총기참사는 여전히 주요 뉴스의 자리를 지키고 있고, 미국총기협회(NRA)와의 교제가 정치와 경제에 독으로 작용했다는, 일찌감치 그랬어야했던, 인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나는 이런 현상을 투표소에서도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강경우파 정치인들이 용솟음치는 일반 시민들의 행동주의(activism)로 인해 공화당의 텃밭에서 연이어 고배를 마실 것이다.
이건 분명 정치평론가들이 예상치 못한 일이다.
2016 대선 이후 상당수의 언론인들은 직접투표에서 앞선 힐러리 클린턴이 러시아의 개입과 코미의 편지에도 불구하고 숫한 기자들과 평자들의 터무니없는 우쭐댐과 빈정거림이 아니었다면 선거인단 투표에서도 승리했을 수도 있었지만, 진정한 미국의 정서를 대표하는 것은 트럼프주의(Trumpism)라고 너무도 빨리 가정하는 듯 보였다.
반백인 트럼프 지지자들은 저녁 식탁에 앉아 미국의 문화 엘리트가 소문대로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 보여주는 숫한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취임식 직후의 거대한 반트럼프 시위조차 이런 일반적 통념을 움직이지 못하는 듯 했다.
그러나 최근 여성들의 시위는 진정한 사회적 정치적 변화의 시작을 의미한다.
정치학자들은 우리가 목격중인 #미투, 총기사건과 그 밖의 다른 사건들을 설명하는 용어와 이론을 갖고 있다. ‘정권 교체의 거센 물줄기’가 그것이다.
작동원리는 이렇다. 사람들은 공고한 현상유지의 벽에 부딪히면 설사 불만스런 느낌을 가지면서도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는 경향을 보인다. 실제로 이런 경우 사람들은 불만을 노출하거나 그같은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기를 꺼려한다.
그러나 일단 현상유지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면 자신이 지닌 불만이 타당한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고, 결국 행동에 나서는 경향을 보인다. 그리고 그들의 행동은 또 다시 다른 사람들로부터 유사한 반응을 끌어내게 된다.
이 같은 변화의 물줄기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정치적 격변이 어떻게 느닷없이 나타나는지를 설명해준다. 1848년 유럽을 휩쓴 혁명과 1989년 공산주의의 붕괴, 그리고 2011년 아랍의 봄 등이 좋은 예에 속한다.
이런 물줄기가 동기 혹은 결과에서 반드시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2016-17년은 백인 우월주의자들과 반 유대주의자들이 도널드 트럼프의 대선 승리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에 그들과 같은 의식을 지닌 사람들이 많다는 여러 증거에 고무돼 이전보다 훨씬 대담해지는 등 마치 파시스트들과 극우주의자들의 봄이 찾아온 듯 한 시기였다.
한편 사학자들은 1848년을 역사의 반전이 중지된 전환점으로 묘사한다: 1848년의 마지막 날까지 부패한 정권이 그대로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현재 미국에서 거세지는 분노의 분출을 대단히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나는 #미투 운동과, 파크랜드 총기참사를 어물쩍 넘기지 넘기는데 대한 거부, (대부분이 여성인) 성난 시민들의 정치적 행동주의 등이 하나로 합해져 거대한 분출을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이건 단순히 이념에 관한 반응이 아니라 불량한 자들의 수중에 지나친 권한이 주어져 있다는 사실에 대한 집단적 거부 반응이다.
이 같은 가정에 대한 첫 번째 증거는 물론 트위터 통수권자 자신이다.
또한 위세를 더해가는 분노의 분출에 대한 불량한 권세가들의 반응은 비열함이 아니라 무기력한 파행이라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
교사들을 무장시키자는 트럼프의 파크랜드 총기참사에 대한 대응책은 단순히 어리석은 게 아니라 책임회피라는 측면에서 비겁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나는 많은 사람들이 이 같은 사실을 간파했다고 생각한다.
미주리 공화당지부가 나체사진으로 내연녀를 협박한 혐의를 받는 에릭 그레이텐스 주지사의 기소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살펴보라. 그들은 조지 소로스를 탓했다. 이건 내가 지어낸 말이 아니다.
웨인 라피에르 전미총기협회 최고경영자(CEO) 등과 같은 우익 유명 인사들의 연설 내용이 점차 황당해지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NRA는 조리 있는 대응이 아니라 사회주의자들이 미국인들의 자유를 앗아가려고 든다는 허튼소리로 일관했다.
으스스하긴 하지만 라피에르의 발언은 일종의 푸념이다. 사람들이 논쟁에서 밀리고 있음을 깨달을 때 내뱉는 말이다. 품격을 지향하는 행동이라고 해서 반드시 승리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미국의 선거제도는 공화당에 유리하게 짜여졌다.
따라서 민주당 후보는 직접투표에서 7% 포인트 차 이상으로 공화당의 맞수를 이겨야 하원을 탈환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투표소에서 진정한 시민 봉기를 볼 것이고, 현재 전개되고 있는 행동주의야말로 변화가 오고 있다는 희망을 가질만한 충분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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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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