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미通인 정의용 앞세워 北김정은에 ‘비핵화 대화’ 수용 설득
6일 귀환 보고 후 미국 방문…트럼프 만나 방북결과 전달·조율
▶ 북미대화 성사 갈림길…北김정은, 비핵화 의지 표명이 최대 관건
대북특사단 방북, 수석 정의용(좌), 서훈 국가정보원장(중간)(PG) [제작 이태호] 사진합성, 일러스트
문재인 대통령이 5일(한국시간 기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이끄는 대북특사단을 파견키로 하면서 한반도 정세가 '중대 국면'을 맞고 있다.
평창발(發) 해빙무드를 살려 대화국면으로 나아가느냐, 아니면 위기국면으로 다시 돌아서느냐의 갈림길에 선 형국이다. 이번 특사 파견이 정세 전환의 첫 단추인 북미대화 성사 여부를 가늠해보해는 계기점이기 때문이다.
북한 최고지도자인 김정은 노동당위원장으로부터 비핵화를 전제로 한 북미대화에 응할 것인지에 대한 '확답'을 받아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비핵화를 전제하지 않은 북미대화에는 아예 선을 긋고 있는데다, 청와대 역시 북미간에 최소한의 대화 분위기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정상회담과 같은 남북관계 개선의 획기적 이벤트를 추진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 대북특사의 기본적 성격은 김 위원장이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여동생인 김여정 특사를 파견한 데 대한 '답방'(答訪)이다. 김 위원장이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표명하며 특사를 보냈다는 점에서 두번째로 이어지는 정상간 '간접대화'는 관계 진전의 새로운 틀짜기를 모색하는 모멘텀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김 위원장이 방북초청 의사를 밝힌 만큼 문 대통령으로서는 이에 화답하는 내용의 친서(親書)를 전달하고 남북관계 진전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남북 정상회담 추진 문제도 큰 틀에서 논의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 단계에서 '선(先) 북미대화, 후(後) 남북정상회담' 추진 기조를 견지해왔다는 점에서 이번 특사의 본령(本領)은 북미간 대화를 '중재'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청와대도 특사활동의 주된 목적으로 남북 교류 활성화에 앞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북미대화 여건 조성'을 적시했다.
대미통(通)인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특사단장으로 인선한 것 자체가 북한을 비핵화 테이블로 이끌어내겠다는 문 대통령의 강한 중재 의지를 반영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의 외교안보 '책사'인 정 실장은 핵문제에 대한 김 위원장의 정확한 의중을 파악한 뒤에 이를 워싱턴에 전할 수 있는 가장 책임있는 '창구'이기 때문이다.
특히 대북 특사단은 1박2일간의 평양체류 일정을 마친 뒤 6일 귀환하면 곧바로 문 대통령에게 보고를 하고는 워싱턴으로 향할 예정이다. 자연스럽게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만나 방북결과를 설명하고 북미대화에 응해줄 것을 설득할 가능성이 높다.
바꿔말해 평양을 거쳐 워싱턴으로 가며 북미대화의 장(場)을 마련하는 것이 이번 특사단의 '제1미션'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최대 관전포인트는 김 위원장이 비핵화를 전제로 하는 북미대화에 호응할 것인지이다.
대북특별사절단, 정의용-서훈 (서울=연합뉴스) 배재만 기자 = 청와대가 4일 오후 청와대에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왼쪽)과 서훈 국가정보원장 등 대북특별사절단 명단을 발표했다. 2018.3.4 [연합뉴스 자료사진
만일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표명한 김 위원장이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하고 비핵화 대화에 응한다면 북미간 직접 대화의 물꼬가 트이고 남북관계 개선도 강한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반대로 김 위원장이 '핵 보유국'임을 천명하고 미국과의 '핵군축' 협상을 시도하려는 기존 스탠스에서 큰 변화를 보이지 않으면서 '핵(核)을 뺀' 북미대화를 요구한다면 상황은 꼬일 가능성이 크다.
외교적 해법을 통해 북한 비핵화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더이상 불가능하다는 쪽으로 미국 조야의 인식이 형성될 가능성이 크고, 이는 군사적 옵션까지도 모색 중인 워싱턴 내 '매파'의 목소리와 입지를 키워놓을 공산이 작지 않다는 분석이다.
현재로서는 김 위원장이 어떻게 나올지 예단하기 힘들고 북한 외무성은 "미국과 전제조건적인 대화탁에 마주 앉은 적이 없다"(외무성 대변인, 3일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서)고 주장하고 있지만, 큰 틀에서 볼 때 핵을 의제로 하는 북미대화에 응하는 쪽으로 태도를 열어둘 가능성이 제기된다.
국제사회의 고강도 제재와 고립구도에 처한 북한으로서는 대화국면으로의 전환을 통해 '출구'를 모색하려고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특히 김 위원장으로서는 우리 정부의 대북 특사단 파견이라는 계기를 활용해 대외적으로 '대화 메시지'를 보낼 것으로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특사단 파견을 수용한 것 자체가 태도 변화의 징후로 해석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다만 북한이 한미 양국이 강조하는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목적으로 하는 북미대화에 명시적으로 응할지는 물음표다. '전략적 모호성'을 보이며 협상력을 높이려는 포석을 취할 것이라는 분석이 좀 더 우세하다.
특히 김 위원장이 핵·미사일 실험 모라토리엄(잠정중단) 의지를 표명하면서 북미대화의 주도권을 선점하는 전략을 택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포기하기보다는 핵무기를 현재의 수준에서 동결하는 데 초점을 맞추거나 비핵화 논의와 함께 체제보장 차원의 평화협정 논의를 병행하는 쪽으로 미국과의 대화 틀을 짜려고 시도할 것이라는 관측도 없지 않다.
그러나 어찌됐건 북한이 핵 문제를 대화 테이블에 올리는 쪽으로 의사표시를 한다면 문 대통령으로서는 '중재'의 공간이 열릴 수 있다. 백악관을 상대로 적어도 북한의 정확한 의중을 파악하는 차원의 '탐색적 대화'에 응하도록 설득하고 이후 대화의 수위를 높여가며 협상국면에 들어가는 프로세스를 제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대한의 압박'(Maximun Pressure)를 강조해온 트럼프 행정부로서도 '관여'(Engagement), 즉 외교적 수단에 열려있다는 쪽으로 입장변화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 다만 '시간벌기'식으로 흘러갔던 과거와는 달리 비핵화 관련 대화의제를 명확히 요구하고 나설 개연성은 있다.
결국 김 위원장이 대북 특사단을 통해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에게 던질 북핵 메시지가 '평창 이후' 한반도의 기상도를 좌우할 최대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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