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먹는 시대에서 차리는 시대로, 오덴세 등 테이블웨어 업체들
▶ 라면을 가지런히 담고, 그릇에 묻은 국물만 닦아도, ‘캐주얼 다이닝’ 만족감 얻어
사진발. 단어의 의미가 바뀌었다. 국어사전에도 실려 있는 이 말의 원래 뜻은 ‘사진을 찍은 데서 나타나는 효과’다.
‘동생은 사진발이 잘 받는다’처럼 쓰인다. 사진과 실제의 괴리, 이 거짓말에 대한 질타의 의미도 섞여 있었다. 그러나 이제 모두가 셀피(selfieㆍ스스로를 찍은 사진) 모델이 되는 시대, 실제보다 나은 모습으로 사진에 찍히는 건 이제 흠이 아니게 됐다.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하얀 거짓말이 요즈음의 셀피다.
먹는 시대에서, 차리는 시대로
빛을 잘 받아서든, 원본 사진을 보정했든 사람들은 기꺼이 사진발을 원하는 건 음식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니, 오히려 사진발을 능가하는 음식이 미덕이 됐다. 메뉴판에 들어간 사진만 잘 나와서는 부족하다. 실제 음식은 메뉴판 속 사진보다도 더 좋은 비주얼을 갖춰야 한다. 누가 어떻게 찍어도 자연스럽게 사진발을 잘 받는 음식이기 위해서는 ‘원판’이 더욱더 중요하니까.
지난해부터 시대를 풍미하고 있는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인스타그램에 쓸만한)’이라는 말은 영상을 기반으로 한 유투브의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최근 젊은 층에서 회자되는 식당들은 사진발 잘 받는 음식을 기본 소양처럼 갖추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외식업계에서뿐 아니라 가정에서 먹는 한 끼 식사에서도 음식의 사진발이 중요해졌다.
이제 ‘먹방’ 열풍의 무게 중심은 단지 음식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릇과 커틀러리(서양식 식사에 사용하는 기구나 용기) 등 하드웨어로 옮겨가고 있다. 먹방 열풍을 따라 간편 가정식과 음식 배달 서비스도 성장하며 역설적으로 하드웨어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먹는 시대에서 차리는 시대로 확장된 것이다.
테이블웨어(식탁용 식기류) 브랜드들의 마케팅에서 이러한 변화를 읽을 수 있다. 기존 마케팅은 주로 ‘우리 그릇을 이렇게 쓰면 예쁘다’라는 활용법에 초점을 뒀다. 스웨덴 브랜드 이케아는 한국 진출 후 ‘헤이 집밥’ 캠페인을 통해 각종 그릇과 보관용기의 활용법을 보여주는 전략을 펼쳤다. 최근엔 ‘우리 그릇에 이렇게 놓으면 더 에쁘다’라는 마케팅이 대세다. 테이블웨어 브랜드 오덴세는 ‘일상을 플레이팅 하다’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그릇에 음식을 어떻게 두어야 좋은가라는 새로운 관점이다.
배달 받은 음식을 예쁜 접시에 멋들어지게 차려 놓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플레이팅이 고생스럽게 요리한 음식이 주는 행복에 맞먹는다고 여긴다. 요리에 대한 욕구는 배달 시장의 확대 등으로 줄어들고 있는 반면 플레이팅에 대한 열망은 커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차려낸 음식을 SNS에 올리는 건 기본이다.
플레이팅, 디자인의 기초
사실 우리민족은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로 일찌감치 음식의 외적인 모습을 중시해 왔다. 언제나 우리는 맛 좋은 음식을 더 맛있고, 푸짐해 보이도록 차리는 데에 신경을 썼다. 신라 유물로도 출토됐다는 전래의 음식 구절판만 해도 얼마나 비주얼을 중시한 음식인가.
보기에 아름답고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음식이 되려면 대체 어떻게 차려야 할까. 조리 방법이나 재료에 대한 연구는 충실히 이뤄져 왔지만 플레이팅에 대해서는 아직 체계적인 이론이나 교육과정이 없다. 그런데도 대개의 레스토랑, 특히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의 음식은 마치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아름답다. 특별한 비법이라도 있는 것일까?
레스토랑 ‘제로콤플렉스’의 이충후 셰프는 아름다운 플레이팅으로 시각적 맛까지 선사하려 한다. 이 셰프는 “가르쳐주는 곳은 없고, 배우려는 사람도 없다. 모든 요리사들은 자신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미감대로 플레이팅을 본능적으로 한다. 회화에 다양한 장르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파인다이닝의 음식이 더 아름다운 이유도 “테이블이 넓고 음식이 코스로 서빙되기 때문에 접시 크기를 활용해 여백을 줄 수 있는 자유도의 범위가 넓다”고 간단하게 설명했다. 테이블이 좁고 음식이 한 상에 차려지는 캐주얼 다이닝은 하나의 그릇에 여백 없이 음식을 담게 되는 상황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가정에서 파인 다이닝처럼 보기 좋은 음식을 위해, 넓은 테이블에 커다란 접시 하나, 한 접시에 100g 가량의 소량의 음식이 담는 건 매일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플레이팅의 법칙은 캐주얼 다이닝에서 찾아보는 게 더 적합하다.
흔히 먹고 쉽게 차릴 수 있는 라면을 예로 들어보자. 사람들은 보통 라면을 끓여 달걀이 국물에 잠기거나 말거나 그릇에 ‘철푸덕’ 담는다. 라면 포장에 그려진 조리예 사진이랑은 다르기 마련이다. 조리예를 촬영한 푸드 스타일리스트는 라면을 계획적을 디자인해 담는다. 미적으로 가장 아름답고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구도로 재료들을 배치한다. ‘철푸덕’ 담지 않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면을 먼저 담고, 국물을 담고, 마지막으로 달걀과 같은 각종 고명을 얹는 것 만으로도 비주얼이 확 달라진다.
잘한 플레이팅의 두 번째 포인트는 ‘뭔가를 더 했다’는 점이다. 라면 포장지에 있는 날달걀 노른자와 생생한 대파를 떠올리면 알기 쉽다. 풀린 달걀이나 퍼진 대파보다 시각적으로 주목을 끌어 음식의 미감을 끌어올린다. 희멀건 한 파스타 위에 놓인 작은 허브 잎, 설날에 먹은 떡국의 실고추와 달걀 지단 고명. 뭐라도 더하면 눈에 띄게 보기 좋아진다. 라면 조리예에서 표고버섯(스낵면)이나 소고기(신라면), 청경채(불닭볶음면), 오이 채(비빔면)를 얹은 것은 소비자를 기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각을 통해 식욕, 즉 구매욕을 자극하기 위함이다.
반대로 ‘뭔가를 뺀다’는 것도 플레이팅의 비법이다. 시각적으로 불필요한 것을 빼내는 작업이다. 조리예의 라면은 면이 제멋대로 헝클어져있는 법이 없고 완벽하게 정리돼 있다. 꼬들꼬들한 질감이 시각적으로 전달된다. 그릇에 국물이 묻어 있는 법도 없다. 불필요하게 이목을 끌어 득이 되지 않는 요소들을 제거한다. 파스타의 경우 젓가락이나 집게로 면발을 정돈해 그릇에 말아 담는 노동은 작지만 큰 수고다.
내가 끓인 라면도 맛있지만, ‘기왕이면 다홍치마’ 아니던가. 살다 보면 누군가를 위해, 어쩌면 나 자신을 위해 조리예 같은 정성 들인 음식이 그리운 날도 생기는 법이다.
<사진=강태훈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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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림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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