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GPS’ 호스트 예일대 졸, 하버드대 정치학 박사
몇 주 전, 영국의 시사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계열사인 인텔리전스 유닛(EIU:Economist Intelligence Unit)은 선거절차로부터 시민적 자유에 이르기까지 5개 카테고리에 속한 총 60개 항목의 점수를 종합해 각국의 민주주의 지수(Democracy Index)를 산출한 후 이를 바탕으로 나라별 순위를 작성해 공개했다. EIU의 민주주의 지수 보고서가 발표된 것은 올해로 열 번째다.
미국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최상급인 “완전한 민주주의” 그룹에 들지 못한 채 그보다 한 단계 아래인 “하자있는 민주주의”(flawed democracy) 그룹으로 편입됐다.
민주주의 쇠퇴에 대해 이야기할 때 쉬운 방법은 아마도 트럼프 대통령 치하의 미국에 초점을 맞추는 것일 터이다. 그러나 이보다 한층 더 우려되는 측면은 미국 민주주의의 퇴보가 세계적인 추세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이다.
올해의 EIU 10차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대상 국가들 가운데 절반이상이 지난 번보다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 스탠퍼드대 교수인 래리 다이아몬드가 10년 전에 묘사했던 이른바 “민주주의의 침체”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침체의 성격은 지구촌 곳곳의 언론의 자유 지수를 들여다보면 금방 파악할 수 있다.
케냐는 아주 최근까지 민주적 개선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기대주였다. 지난달 우후루 케냐타 대통령은 케냐의 주요 텔레비전 방송국들을 향해 야당이 주최하는 행사를 방영하지 말라고 지시했고, 이를 거부한 방송사들의 전파 송출을 중단시켰다. 케냐 정부는 이들의 방송재개를 허용하라는 법원의 판결마저 깔아뭉갰다.
하지만 케냐의 언론자유 침해는 터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언론인보호위원회(Committee to Protect Journalists)에 따르면 현재 터키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언론인을 가두어 둔 감옥국가다.
나는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세계의 다른 어느 국가보다 훨씬 많은 언론인을 투옥시킨 터키 정부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선출됐다.
터키 정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판적인 언론매체에 대해 세금폭탄을 때리는 등 최소한 표면적으로나마 법치주의 모양새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언론 길들이기를 시도했다.
그러나 2016년, 쿠데타가 실패로 끝난 후 상황이 바뀌었다. 이로부터 1년 뒤에 나온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최소한 177개의 뉴스 매체들이 무더기로 폐쇄됐다.
케냐나 티키의 사례는 개발도상국들 사이에서 흔히 나타나는 불가피한 뒷걸음질 정도로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소련 붕괴 이후 민주주의를 전폭적으로 수용한 헝가리와 폴란드에서의 반전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빅토르 오르반이 이끄는 헝가리 행정부는 꼼수를 동원해 자유언론에 재갈을 물렸다. 정부는 외압을 행사하고 핵심 요직에 당내 충성파를 배치하는 방법으로 공영방송을 효과적으로 장악했다.
친정부 성향의 미디어에는 광고비를 퍼부었고, 반대로 비판적인 매체의 광고비는 극적으로 삭감했다.
이렇듯 돈과 힘을 이용한 오르반 정부의 술책으로 가사상태로 몰린 독립 언론 매체들은 친정부 성향의 신흥재벌들에 의해 하나하나 접수됐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부에 호의적인 뉴스가 판을 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공산주의 몰락 이후 눈부신 정치적, 경제적 개혁을 이룩한 폴란드에서도 비슷한 전술이 사용되고 있다.
이스라엘과 인도 등 이미 오래 전에 민주주의 토대를 굳건히 다진 국가에서조차 독립 언론매체의 활동반경을 줄이고 힘을 빼려는 조직적인 실책이 목격된다.
벤자민 네탄야후 이스라엘 총리가 완강히 부인한 범법혐의 중에는 자신에게 호의적인 기사를 담보하기 위한 유력 언론사 사주들과의 거래도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 보태 공영방송을 약화시키려는 네타냐후의 시도는 심지어 우파진영에 속한 보수 정치인들로부터도 비난을 샀다.
나렌드라 모디가 이끄는 인도 정부는 그들의 일부 정책을 줄기차게 비난한 NDTV를 의심스럽기 그지없는 사기와 돈세탁 혐의로 엮어 조사에 착수했다.
최근에는 정부 데이터베이스의 민망스런 허점을 폭로한 언론인이 내부고발자로 칭찬을 받기는커녕 경찰 조사에 회부됐다.
20여년 전 ‘포린 어페어스’에 기고한 글에서 나는 세계가 직면한 명백한 문제로 정부가 조직적으로 권력을 남용하고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반자유주의적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를 꼽았다.
나는 미국 역시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미국이 왕성한 민주체제를 지니고 있고 막강한 언론기관이 버티고 있기 때문에 그 어떤 풍파도 이겨낼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미국의 경우 언론자유는 제 1차 헌법수정조항에 의해 보장된다. 그러나 자체적으로 강력한 언론기관을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헌법에 언론 보호를 명시해 놓은 유럽연합의 제도적 품안에 안겨 있는 폴란드와 헝가리의 경우를 떠올려보라.
취임 후 1년 만에 도널드 트럼프는 이미 미국의 언론 자유에 커다란 손상을 입혔다.
비판적인 매체들을 폄훼하고 친화적인 매체들을 칭찬하는 것 외에도 트럼프는 명예훼손 관련법을 강화하고, 방송사 면허를 박탈하며, 특정 신문사 사주에게 세금폭탄 세례를 가하겠노라 으름장을 놓았다.
트럼프 행정부는 편향적이라 여기는 언론사들의 합병을 차단한 반면 호의적인 기사를 싣는 매체들의 합병은 촉진시켰다.
랄프 왈도 에머슨은 “제도란 한 인간의 늘어난 그림자”라고 썼다. 제도는 인류에 의해 합의된 규칙과 규범의 집합체다.
만약 지도자가 이들에게 공격을 가하거나 폄훼하고 학대한다면 제도는 약화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이 결과적으로 민주주의의 특성과 질을 약화시킬 것이다.
미국의 시스템은 다른 나라의 것에 비해 훨씬 강하지만 그렇다고 이 같은 반민주적 부패세력에 면역력을 갖고 있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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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GPS’ 호스트 예일대 졸, 하버드대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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