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여자 컬링, 일본과 숨 막히는 접전 끝 역사적인 승리 환호
▶ 스킵 김은정, 연장 11엔드에서 신기의 드로 샷으로 결승점 따내
연장 11엔드에서 스킵 김은정의 절묘한 드로 샷이 버튼 안쪽에 멈춰서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 한국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AP]
정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접전이란 바로 이 경기를 두고 한 말이었다. 한국 여자 컬링 대표팀(스킵 김은정) ‘팀 킴’이 숙적 일본과 3시간여에 걸쳐 연장전인 11엔드까지 가는 피 말리는 접전 끝에 스킵 김은정의 마지막 드로 샷으로 짜릿하고 역사적인 8-7 승리를 따내며 사상 최초로 올림픽 결승무대에 진출했다. 한국대표팀은 24일 오후 4시5분(이하 LA시간)에 시작되는 결승전에서 스웨덴과 금메달을 놓고 마지막 한판승부를 펼치게 됐다.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에 유일한 패배를 안겼던 일본과의 4강전을 앞두고 한국은 일본의 ‘쳐내기’ 기술을 경계했다. 김민정 감독은 “일본은 히팅에 능하고, 스톤 옆에 붙이는 프리즈도 잘한다. 더블 테이크 아웃 기회(스톤 하나로 상대 스톤 두 개를 쳐내는 기술)를 주지 않을 것이다. 정확도의 싸움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23일 새벽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준결승전에서 신들린 쳐내기 신공을 펼친 쪽은 한국이었다. 특히 김경애의 정확한 테이크 아웃 샷이 일본의 공격을 무력화했다.
김경애는 1엔드 하우스 위에 몰려 있던 일본 스톤 3개를 한 번에 몰아내고 멈추는 절묘한 샷으로 대량 득점의 발판을 만들었다. 잘 차려진 밥상에서 스킵 김은정이 마지막 샷으로 중앙에서 가장 가까이 있던 일본 스톤을 쳐내고 멈추면서 한국이 3득점, 초반 기선을 제압했다.
일본이 2엔드에서 2점을 만회한 뒤 3, 4엔드에서 1점씩을 주고받아 4-3으로 박빙의 리드를 지키던 5엔드에서 또 다시 한국의 쳐내기 기술이 빛을 발했다. 김선영과 김경애가 연달아 더블 테이크 아웃에 성공했다. 하우스 안에 한국과 일본 스톤이 몰려 있었는데 일본 스톤들만 쏙쏙 골라서 쳐내버렸고 결국 2점을 따내 6-3으로 달아나며 승기를 잡는 듯 했다.
일본의 후공인 6엔드에서 1점만 내주고 선방한 한국은 7엔드에서 김은정이 더블 테이크 아웃과 테이크 아웃 샷에 연속 성공하며 무득점을 만드는 ‘블랭크 엔드’를 만들었다. 1점을 더 뽑을 수 있었지만 다음 8엔드에서 다시 후공을 잡아 멀티득점을 노리고 멀티득점에 실패하더라도 최종 10엔드에서 후공을 잡기 위해 1득점을 포기했다.
하지만 일본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고 8엔드에서 김은정의 더블 데이크아웃에도 불구, 한국은 1점을 뽑는데 그쳤다. 하지만 리드는 7-4로 벌어졌기에 다음 9엔드만 잘 막으면 승리가 유력한 상황이었다. 일본은 9엔드에서 2점을 뽑아 7-6으로 끈질기게 따라왔지만 마지막 10엔드에서 후공을 쥐고 있는 한국은 절대 유리한 입장이었고 최소한 블랭크엔드를 만들기만 해도 이길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은 10엔드에서 일본의 끈질긴 가드 세우기 작전에 고전했고 김은정의 더블 테이크아웃에도 불구, 김은정의 마지막 스톤이 약간 강해 1점을 내주는 스틸을 당해 연장전으로 끌려가고 말았다. 김은정은 마지막 스톤으로 버튼에 있던 일본 스톤을 밀어내고 가운데를 장악하려고 했는데 일본 스톤을 밀어내기는 했으나 김은정의 스톤도 계속 미끄러지며 오히려 간발의 차로 버튼에서 더 멀리 가 1점을 빼앗겨 동점을 허용했다.
기사회생한 일본은 환호했고 순간 한국 진영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듯 했다.
하지만 연장전인 11엔드에서도 후공은 한국의 것이었고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승부를 끝낼 찬스를 잡은 김은정은 두 번 실수를 하지 않았다. 벼랑 끝에 선 연장 11엔드. 마지막 스톤을 김은정이 던지는 상황에서 버튼엔 일본 스톤 1개와 한국스톤 1개가 있었지만 일본 스톤이 중심에 더 가까웠다. 반드시 일본 스톤을 쳐내거나, 아니면 그 스톤보다 더 중심에 가깝게 스톤을 세워야 했다. 하우스 밖에는 일본의 가드가 진로를 막고 있어 더욱 힘들었다.
여기서 김은정은 드로와 데이크 아웃, 두 옵션을 놓고 고심했다. 테이크아웃이 더 확실해 보였지만 자칫하면 우리 스톤을 함께 쳐낼 위험성이 있었다. 하지만 그 좁은 과녁 한복판에 스톤을 정확히 안착시키는 드로 샷을 성공시킬 수 있을지 떨리지 않을 수 없었다. 특유의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긴 했어도 김은정의 손끝은 떨리고 있었다.
여기서 망설이는 김은정에서 김경애는 “드로를 해야 한다”고 힘을 줬다. 김은정도 그 의견에 동의한 뒤 마지막 스톤을 던졌고 바로 김영미와 김선영은 물론 하우스에서 스톤 방향을 읽던 김경애까지 스위핑에 가담했다. 스톤은 천천히 미끄러져가며 일본 가드를 스치듯 지나가 버튼에 걸쳐있던 일본 스톤 안쪽에서 정확히 멈춰섰다. 한국선수들은 일제히 브룸을 치켜들며 환호했고 강릉컬링센터는 열광의 도가니로 변했다. 이 스톤은 동계올림픽 모든 종목 가운데 가장 느리게 이동했을지 몰라도 이를 지켜보는 팬들의 가슴은 가장 빠르고 맹렬하게 뛰었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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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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