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계와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은 처음에는 주류 미국인들에게 백인 취급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일자리를 찾기가 어려웠다. 금주령이 내려졌던 시절 그들 중 상당수의 젊은이들은 술 밀매, 마약, 창녀사업 등을 일삼는 갱단에 들어갔다.
1929년 2월 14일 오전 밸런타인스 데이에 시카고 북쪽 아이리시 갱 멤버 7명이 알카폰이 이끄는 남쪽 이탈리안 갱들의 기관총 세례로 어느 집안 벽에 기댄 채 무참히 살해되었다. 그 사건으로 시카고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갱의 도시란 불명예스런 이름을 얻게 되었다.
몇 십년 뒤 사건이 일어났던 그 집이 도시계획으로 허물어지게 되자 살해 장소였던 벽의 벽돌 수백 개를 밴쿠버의 어떤 사람이 구입하여 식당의 남자 화장실을 만드는데 사용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그 식당은 큰 인기를 얻게 되었고 가끔 여자 손님들에게도 남자 화장실을 사용하는 기회를 주었다고 한다.
후에 그 식당도 문을 닫게 되자 LA 사람이 벽돌 일부를 사서 갱 박물관을 짓는데 기중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올해 밸런타인스 데이는 기독교 사순절의 시작인 재의 수요일과 겹쳤다. 초기 기독교 신도들은 재의 수요일부터 예수의 부활 전날까지 40일 간을 고난의 시기로 기억하는 의식을 지켰다.
기독교에서 예수는 신인 동시에 인간이다. 인간으로서 예수는 400명 남짓한 조그만 동네에서 청소년기와 성인 시절을 보냈다. 그 곳에서 당시 농부보다도 하층인 목수로 일했던 노동자였다. 예수는 인간이었기에 육체적 고통과 죽음의 공포에 시달렸고, 동시에 신이었기에 죽음으로부터 일어날 수 있었다.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우리에게 희망과 용서와 새로운 시작을 보여 주었다.
기독교는 이런 예수를 기념하기 위해 모든 신도들에게 사순절 기간 최소한 하루 또는 한 끼 금식을 권장하고 있다. 그 것도 할 수 없다면 재의 수요일 하루와 매주 금요일 식사에 고기음식을 먹지 말라고 부탁한다.
인간의 뇌는 진화학적으로 3층으로 되어있다. 가장 밑 척수(Spinal cord)로부터 팽창해서 올라온 뇌 줄기, 그 위 뇌 깊숙한 곳에 있는 중간 뇌, 맨 위층 앞쪽에 있는 전뇌다. 뇌 줄기는 호흡, 심장박동, 체온 등 생명유지에 필요한 기능을 가지고 있어 생명의 뇌라 부른다. 파충류의 뇌가 이에 속한다.
중간 뇌는 뇌 줄기와 전뇌 사이에 정보를 전달해주는 정거장 역할을 하는데 이곳에 변연계가 있어 본능인 식욕, 성욕, 감정, 기억 등을 관할하기 때문에 감정의 뇌 혹은 본능의 뇌라 부른다. 포유류의 뇌다. 전뇌는 가장 늦게 진화한 뇌 바깥쪽(피질) 부분으로 고도의 정신기능인 학습, 창조를 담당하기에 이성의 뇌라 부른다. 인간의 뇌다.
식욕은 본능 중의 본능이기에 금식은 생물학적으로 매우 어렵다. 이성의 뇌와 본능의 뇌와의 줄다리기 싸움인데 대부분의 경우 이성이 본능한테 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이성의 뇌인 전뇌가 독한 마음을 먹으면 본능을 누를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내가 일하던 클리닉의 한 임상 복지사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사순절이면 매 금요일마다 철저히 금식을 했다. 점심시간이면 혼자 조용히 자기 방에 들어가 기도를 드렸다. 나는 환자들 보느라 바빴고 신앙도 없어 사랑과 정성이 담긴 음식은 생명을 유지하는 근본이므로 먹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면서 오히려 더 먹었던 기억이 난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믿고 섬기는 신을 기억하기 위해 몇 주 동안 자신을 희생하는 그 복지사의 행동이 마음에 들어 나도 언젠가는 한 번 해보리라 마음속에 다짐했었다.
세월이 흘러 나는 은퇴했고 세상 보는 눈과 삶의 방식 또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가끔 혼자 있을 때는 내 삶의 존재를 붙들어줄 무엇인가를 찾아보고도 싶었다. 그래서인지 금년 사순절 기간에는 재의 수요일과 매주 금요일에 고기 음식은 안 먹기로 했다.
제대로 실행할지는 알 수 없으나 노력은 해보려고 한다. 굳이 왜 그러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신앙은 별로 깊어진 게 없지만 아마 늙으며 마음이 약해져서 그럴 거란 대답을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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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양곡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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