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링(Curling)이라는 경기를 처음 본 것은 컬링이 처음으로 올림픽 정식종목이 된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때였던 것 같다. 얼음판 위에서 큼지막한 화강암 돌덩어리(스톤)를 밀어 던진 뒤 움직이는 스톤 앞에서 선수들이 열심히 빗질을 해 그 스톤을 과녁 쪽으로 인도하는 경기를 처음 봤을 때 “참 별난 종목도 다 있구나. 그런데 이게 무슨 올림픽 스포츠지”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빙판 위에서 천천히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스톤을 살짝 앞으로 밀어낸 뒤 열심히 빗질을 하며 앞서가는데 어떤 때는 죽어라 빗질을 하지만, 또 어떤 때는 전혀 하지 않고 스톤이 굴러가는 것을 구경만 한다. 또 스톤이 과녁에 도착한 뒤엔 상대방 선수가 나서서 빗질을 하는 장면도 종종 볼 수 있다.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너무 많았다.
룰을 몰랐을 때도 스톤을 던져 과녁 한 복판을 노리거나 상대 스톤을 쳐내는 것은 그래도 당연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종종 과녁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앞쪽에, 정말 말도 안될 만큼 짧게 스톤을 세우고 나서도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등 전혀 불만의 기색이 없는 장면은 머리를 긁적거리게 만들었다.
움직이는 스톤 앞에서 빗질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스코어를 어떻게 계산하는 지도 궁금했다. 자기 팀의 후공 때는 1점을 얻는 것보다 오히려 한 점도 뽑지 않는 편이 더 유리할 수 있다는 것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 엔드에서 이기면 다음 엔드에선 불리한 선공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도 이번에야 알았다.
특히 납득이 쉽지 않았던 것은 컬링이 왜 올림픽 스포츠인가 하는 것이었다. 컬링 선수들은 열심히 뛰는 것도 아니고, 상대와 몸싸움을 하거나, 치고받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연기를 한 뒤 심판들의 채점을 받지도 않는다. 얼음판에 큼지막한 돌덩어리를 밀어 던진 뒤 빗자루를 들고 잠깐씩, 빗질만 좀 하다 끝난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잘 몰랐을 때는 빗자루로 빙판을 쓰는 게 무슨 올림픽 스포츠냐고 생각했다. 그냥 신기하게만 생각했을 뿐 진지한 관심은 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평창올림픽에서 한국 여자 컬링팀의 깜짝 선전이 이어지면서 컬링은 어느덧 상당히 매력적인 스포츠로 다가왔다. 단순히 한국 팀이 잘하고 금메달을 딸 수 있어서가 아니라 한국팀의 경기중계를 지켜보면서 컬링이 그동안 막연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체력 소모가 큰 운동이며 또한 매우 과학적인 스포츠라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겉보기와 달리 경기 내내 상대와 치열하게 머리싸움을 해야 하는 최고의 두뇌스포츠라는 사실이 놀라왔다. 스톤을 던질 때마다 우리 팀의 작전과 상대방의 다음 대응전략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는 것과 거대한 스톤의 미묘한 움직임과 착빙 위치의 약간의 차이가 승부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면서 정말 쉽지 않은 운동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선수들이 움직이는 스톤 앞에서 빗질을 열심히 하는 것에도 과학의 원리가 숨어있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컬링장 빙판 위에는 미세한 얼음 알갱이들이 깔려 있는데 빗질을 통해 생기는 순간적인 마찰열로 이 얼음 알갱이들이 녹아 스톤을 빙판 위에 띄워 움직이는 얇은 수막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 수막이 거대한 돌덩어리를 앞으로 이끌고, 때론 그 진로를 살짝 바꾸기도 하는 것이 절묘했다. 필요에 따라 빗질을 하거나, 하지 않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고 다 작전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었다.
비록 TV중계를 보면서 어깨 넘어 습득한 수박 겉핥기식 지식이지만 컬링의 묘미를 발견하는 데는 충분했다. 특히 한국 여자 대표팀 ‘팀 킴‘(Team Kim)의 승승장구 행진은 더욱 큰 흥미와 흥분을 안겨줬다. 예선에서 세계 최강팀들을 상대로 8승1패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두며 1위로 4강 플레이오프에 오른 한국 팀의 깜짝 선전이 컬링에 대한 흥미를 증폭시킨 것은 당연하다. 스킵(주장)의 이름을 따 팀을 부르는데 공교롭게도 한국팀은 감독과 선수들이 모두 김씨라서 ’팀 킴‘이라는 팀 이름이 더욱 들어맞는다는 사실도 재미있다. 컬링의 묘미를 이해하게 되는데 있어 결정적 도움을 준 ’팀 킴‘에게 감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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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우 부국장·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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