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익숙한 식품들의 새로운 조합, 외관 등 SNS 입소문에 판매 흥행
▶ 안성탕면, 불닭볶음면 과자로 출시, 네티즌 의견 따라 상품 만들기도
롯데푸드에서 출시한 돼지바 핫도그. 돼지바 위에 뿌려진 초콜릿 크런치를 핫도그 위에 씌운 특이한 시도로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롯데푸드 제공>
천일식품 김밥맛 볶음밥(위)과 라면맛 볶음밥. 업체 측은 소비자들에게 2가지 이상 맛을 섞어 먹거나 같이 먹기를 제안한다. <천일식품 제공>
삼양 불닭볶음면이 과자로 다시 나왔다. 삼양식품은 같은 맛의 과자, 아몬드, 견과류 바를 연달아 출시했다. <삼양식품 인스타그램>
“드디어 먹어봤다”
최근 인스타그램을 중심으로 올라오고 있는 ‘요괴라면’에 대한 후기다. 지난달 ‘옥토끼 프로젝트’가 출시한 요괴라면은 국물 떡볶이맛, 봉골레맛, 크림맛 세 가지로 구성돼 있다.
박영식 SG다인힐 대표를 포함해 미식가 6인으로 구성된 옥토끼 프로젝트는 ‘어른이를 위한 해장라면’을 표방하며 2가지 혹은 3가지 맛을 섞어먹기를 추천한다. 소비자들의 후기 역시 ‘떡볶이와 크림을 섞어 봤더니’에 집중된다. 요괴라면이 한달 만에 7만개 판매를 돌파하며 ‘인스타 음식’의 중심에 선 데는 3가지 요건을 만족했기 때문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기에 부족함 없는 외관, 가격 혹은 맛의 접근성, 그리고 이야깃거리다.
요즘 SNS나 포털 사이트, 유튜브에 ‘먹어 보았다’를 검색하면 수천 개의 게시물이 나온다. 시중에 출시된, 호기심을 자극하는 음식들에 대한 후기다. 비공식 광고가 넘쳐나는 시대지만 책이나 화장품에 비해 가격이 저렴한 식품 분야에서는 아직 제법 생생한 후기들을 만날 수 있다. “하도 궁금해서 사봤다” “다섯 번 이상 씹을 수가 없었다” “육해공의 잘못된 만남…” 실망 어린 후기에서도 묘하게 즐거움이 느껴지는 건 착각일까. 이들은 마치 유명 햄버거점 쉐이크쉑버거 앞에서 한 없이 늘어진 대기 줄을 즐거이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모든 사람이 진미 그 자체만을 원하리란 건 요리사들의 꿈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삼겹살 맛보다 팬 위에 올릴 때 나는 ‘치지직’ 소리를 더 좋아하기도 하고, 피자를 먹는 순간보다 도미노와 피자헛의 우위를 두고 싸우는 걸 재미있어 하기도 한다. 음식의 맛, 모양, 감촉, 그로 인해 파생되는 기다림, 향수, 설전까지. 음식이 가진 모든 것을 먹고자 하는 욕망은 늘 존재했지만, 최근의 변화라면 소비자들의 이런 욕구를 식품업계에서 적극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개인 매체의 발달로 이야깃거리를 만드는 게 모두의 과업이 된 시대에, 이는 소비자들에게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식품업계의 주류를 위협하는 화제의 음식들을 세 부류로 정리해보았다.
장수상품에 새 생명을…돼지바와 친구들
1983년생 돼지바가 최근 화려하게 부활했다. 돼지바 핫도그라는 충격적인 상품 출시에 힘입어서다. 지난달 롯데푸드가 라퀴진과 합작해 만든 돼지바 핫도그는 돼지바의 겉을 감싼 초콜릿 쿠키칩을 핫도그 위에 입힌 음식이다. 판매가 폭발적이진 않지만 화제성만으론 히트상품 못지 않다. 돼지바 핫도그는 출시 배경 자체가 소비자와의 놀이였다. 롯데푸드 측은 지난해부터 돼지바 시리얼, 돼지바 젤리, 떠먹는 돼지바 등 가상의 상품 이미지를 SNS에 올리며 “출시되면 대란 가능?” 같은 멘트로 반응을 살폈다. 장난처럼 얘기하던 상품이 이미지로 구현되자 많은 사람이 흥분하며 ‘좋아요’를 눌렀고, 이 흥분은 고스란히 ‘먹방’ 채널 운영자들이 이어받았다. 한 유튜버는 “제발 출시해달라”며 직접 돼지바 핫도그 요리 영상을 만들어 올리기도 했다. 신지훈 롯데푸드 홍보팀 대리는 “요즘 고객들은 평이한 제품 보다 새롭고 이색적인 음식에 열광하는 측면이 있다”면서 “돼지바 핫도그는 꼭 기존 상품을 대체한다는 생각보다는 고객에게 반전의 재미를 주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말했다.
장수 상품 리바이벌은 친근함과 새로움을 동시에 만족시킨다는 점에서 최근 거의 모든 업체의 공통전략이다. 농심의 스테디셀러 안성탕면과 삼양의 베스트셀러 불닭볶음면은 과자로 다시 나왔고, 롯데 돼지바는 돼지콘으로, 해태 부라보콘은 부라보바로 변신했다.
다 아는 맛인데 궁금해
라면, 김밥, 치킨, 떡볶이, 짜장면. 한국인의 유전자에 박힌 음식들이다. 모두가 아는 맛은 늘 좋은 이야기 소재다. 그렇다면 이 맛을 활용하지 않을 이유는 무엇인가.
냉동 볶음밥으로 유명한 천일식품은 최근 떡볶이맛, 김밥맛, 콘치즈맛, 라면맛 등 ‘스낵 볶음밥’ 4종을 출시했다. 정인애 천일식품 마케팅팀장은 “분식맛은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하지만 ‘김밥맛’ 볶음밥이라고 하면 특이하게 본다”며 “젊은 소비자들의 주목을 끌 수 있는 재미있는 상품을 고민하다가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네 가지 맛 외에도 유명한 라면, 과자의 이름을 딴 맛들이 최종후보까지 올랐다.
떡볶이나 김밥은 먹지 않아도 알만큼 친근한 음식들이지만, 이를 음식이 아닌 풍미로 규정해 다른 음식에 적용하는 순간 호기심이 치솟는다. 요괴라면의 ‘국물 떡볶이맛’, 오리온 스윙칩의 ‘오모리 김치찌개 맛’, 해태 ‘돈코츠라멘 맛’ 과자에 소비자들의 귀가 쫑긋하는 이유다. 오모리 김치찌개맛 스윙칩의 경우 출시 당시 밥과 함께 먹어보았다는 후기가 줄을 이었다.
천일식품 측은 요괴라면처럼 스낵 볶음밥 2, 3가지 맛을 섞거나 같이 먹기를 제안하고 있다. 소비자의 독창적인 재조합과 거기서 나올 재미를 기대하는 것. 이제 후기도 단순히 ‘맛있다’로는 부족한 시대다.
잇새에서 바스러지며 입 안을 할퀴는 꼬깔콘의 면모를 좋아해온 이들에게 ‘꼬깔콘 젤리’는 배신이었다. 소비자들은 꼬깔콘의 옥수수맛이 물컹하게 녹아 내리는 것에 망연자실해했고, 그 경험을 역시나 SNS에 공유했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요소들을 과감히 결합시킨 음식들이 업계의 한 부류로 자리잡고 있다. 연유와 어묵(롯데푸드의 말랑카우 키스틱), 막걸리와 커피(국순당의 막걸리카노), 사이다와 감자칩(코스모스제과의 이상한 감자칩), 탄산과 꿀물(호연당의 스파클링 꿀물), 수박과 우유(서울우유의 수박우유). 이색적인 조합은 좋게든 나쁘게든 계속 입에 오른다는 점에서 일정량의 화제성을 보장 받는다. 지난달 말랑카우 키스틱 출시 소식이 SNS에 올라오자 반응은 “이걸 누가 사먹어” “먹어보고 싶긴 하다”로 갈렸다. 중요한 건 ‘좋아요’가 1,500개를 넘었다는 것. 13일 출시 이후 인터넷엔 지금까지도 체험담이 올라오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선 업체가 장난을 치는 것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해 볼만도 하다. 그러나 업체의 표정은 진지하다. 정성원 롯데제과 홍보팀 과장은 “음식을 만들 때 특이한 걸 만들자고 해서 만드는 경우는 없다”고 단언했다. 소위 말하는 노이즈 마케팅은 없다는 것. 지난해 하반기 한차례 ‘체험담’이 돌았던 깔라만시맛 빼빼로에 대해 그는 “신제품에 소비자들이 갖는 심리적 장벽을 줄이기 위해 참신한 맛을 시도하는 경우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음식 갖고 장난을 치진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쩌면 좋을까. 음식으로 장난치고 싶어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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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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