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포구 연남동 ‘호텔 어라운드’, 호젓한 땅 모퉁이에 잡지사 사옥
▶ 접힌 종잇장처럼 보이는 아찔함, 앗! 지나가던 사람들도 멈춰세워
서울 마포구 연남동을 가로지르는 경의중앙선 철길 앞 호텔 어라운드. 2015년부터 매월 잡지를 내고 있는 어라운드의 사옥이자 갤러리 겸 카페다. <김용관 건축사진작가 제공>
지하에서 1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작은 정원도 호텔 어라운드를 찾는 이들을 위한 것이다.
6층의 주거. 삼각형의 가장 날카로운 부분에 발코니를 만들어 재미있는 공간으로 바꿨다.
2층 어라운드 사무실. 천장과 탁자를 통해 삼각형 평면을 정직하게 드러난다. 일반인 출입이 가능한 곳은 지하와 1층 라운지까지다.
삼각형 평면이 그대로 드러나는 1층 라운지. 예전 단층집 앞에 놓여 있던 평상을 재현했다. 어라운드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한 사랑방이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조성된 경의선 숲길공원, 일명 ‘연트럴 파크’의 열기를 살짝 비껴나 경의중앙선 철길을 따라 걷다 보면 기묘한 착시 하나를 만나게 된다. 건물들 사이에 서 있는 접힌 종잇장 하나. 앗 하고 발걸음을 떼는 순간 종잇장은 건물이 된다. 신기한 표정으로 지나치는 사람, 굳이 가까이 다가가 안을 살펴보고 싶어하는 사람, 모두에게 열린 이곳은 지난 여름 잡지사 어라운드 매거진이 새로 둥지를 튼 사옥이다.
오래된 골목에서 만나는 날카로운 착시
건물 벽에 작게 쓰인 ‘HOTEL’이란 글씨 때문에 많은 이들이 숙박업소로 착각하지만 이곳은 어라운드의 사무실이자 카페, 갤러리, 그리고 송원준 어라운드 대표의 집이다. “원래 있던 상암동 사무실엔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어요. 어라운드가 지향하는 문화를 독자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우리만의 공간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2012년 여름 첫 호를 낸 어라운드는 ‘닮고 싶은 삶’을 주제로 매달 조용히 잡지를 만들어 오고 있다. ‘Home’을 주제로 한 2015년 12월호에 젊은 건축가 그룹 푸하하하 프렌즈 건축사사무소(푸하하하)의 인터뷰가 실렸다. 윤한진, 한승재, 한양규 세 명의 젊은 건축가는 대형 설계사무소를 다니다가 “진짜 건축”을 하겠다고 뛰쳐나와 독립했다. “큰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건축주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어요. 프로젝트의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런 감정이 없는 거예요. 가슴이 뜨거워지는 일을 하고 싶어서 나왔어요. 저희는 아무리 돈 많이 준다고 해도 무조건 하지 않아요.”
펄펄 끓는 피는 어라운드의 ‘닮고 싶은 삶’의 하나로 선정됐고, 이는 건축주와 건축가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사옥 자리로 낙점된 곳은 철도를 둘러싼 옹벽을 마주한, 번화가의 열기가 옮겨 붙기 어려운 호젓한 땅이다. 그 중에서도 모퉁이에 있는 이 땅엔 바로 작년까지도 오래된 단층집이 서 있었다. “집 앞에 평상이 있었는데 마을 어르신들이 늘 그 앞에 나와 앉아 계셨다고 해요. 어찌 보면 어라운드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어라운드가 주목하는 삶도 특별한 것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한 삶에 가까우니까… 건축주도 평상을 보고 이런 정취는 남겼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윤한진 건축가의 말이다.
문제는 비정형 사다리꼴의 희한하게 생긴 땅이었다. 일반적인 사각형 건물을 짓자니 면적이 너무 작아지고 대지 형태를 따르자니 공간 효율성이 떨어졌다. 가장 효율적인 배치를 찾다가 나온 게 삼각형이다. 동쪽에서 본 건물이 선처럼 보이는 것도 삼각형의 유난히 날카로운 모서리 때문에 일어난 착시다.
일단 평면을 삼각형으로 정했다면 건축가의 말처럼 “그저 죽 올리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건축가들은 6개 층을 3개의 삼각형으로 나눠 북쪽으로 조금씩 조금씩 밀면서 쌓았다. 삼각형이 밀리면서 드러난 아래쪽 삼각형의 좁은 윗면엔 천창과 발코니를 냈다. 남쪽에서 들어오는 햇볕을 최대한 받기 위한 것이다.
“철도가 지나는 북쪽에 15m 높이 경사면이 있어 채광을 전혀 기대할 수 없었어요. 소음 문제도 있었고요. 북쪽엔 아예 창을 포기하고 대신 남쪽으로 활짝 열기로 했습니다.”
창문 하나 없이 닫힌 건물이 무거운 느낌보다 담담한 인상을 주는 건 외벽재로 쓴 흰 타일 덕분이다. 정교함이나 내구성 면에서, 국내 주방에 쓰이는 것과는 한참 다른 일본산 타일이지만 외관만으로는 친근하기 그지없다. 이 조용하고 오래된 동네와 가까워지는 건축가들의 방식이다. “지역에 녹아 드는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저희는 재료에 집중했어요. 어쩌다 보니 외관은 독특해졌지만 재료 자체는 평범하고 친근한 느낌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모눈종이처럼”… 삶을 기록하는 벽
그럼 호텔이란 말은 대체 어디서 나왔을까. “호텔은 지하에 있어요” 송 대표의 말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보면 거기에 어라운드의 사무실 겸 갤러리 카페가 있다. 어라운드 잡지 작업에 참여한 영상, 일러스트, 사진 작가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커튼 하나로 어라운드 사무실과 경계가 나눠진 이 작은 갤러리에서 방문자들은 작품을 둘러보고 원하면 구매도 할 수 있다.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한 켠에 놓인 멋진 나무 캐비닛으로 눈길이 간다. 요즘 가장 ‘핫’한 디자이너 그룹 중 하나인 스튜디오 씨오엠이 제작한 이 캐비닛이 바로 호텔 어라운드의 ‘객실’이다.
“호텔은 그냥 이름이에요. 캐비닛 하나하나를 작가가 머무는 방이라 생각하고, 전시를 할 때 이 안에 작가의 붓, 펜, 노트 같은 소품을 넣어두는 거죠. 전시 기간 동안 작가가 게스트로 입주해 작품 활동을 하고 그걸 호텔에 전시한다는 콘셉트예요.” 송 대표의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호텔에는 의자가 없기 때문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려면 1층 라운지로 이동해야 한다. 삼각형 평면을 정직하게 따른 라운지는 19㎡(약 5.7평)로, 실제 평상보다 조금 큰 정도다. 과거 동네 어르신들의 사랑방이었던 이 곳은 지금 어라운드를 좋아하고 찾아오는 이들의 사랑방이 되었다.
“어라운드가 닮고 싶은 삶이 뭔지 하나로 이야기할 순 없겠죠. 어라운드가 조명해온 사람들 하나하나가 모여 우리의 정체성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요. 이 건물이 그걸 잘 보여주는 배경이 되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송 대표의 바람은 캔버스처럼 펼쳐진 건물 외벽에 작품을 전시하면서 자연스럽게 구현됐다. 조밀하게 늘어선 타일 위에 오와 열을 맞춰 전시된 작품을 두고 건축가는 “마치 모눈종이 같다”고 말했다. “타일의 줄눈이 이렇게 활용되는 걸 보고 놀랐어요. 마치 기록하는 벽이 된 것 같아 멋졌습니다. 어라운드가 닮고 싶은 삶이 이런 식으로 건물에 서서히 기록됐으면 좋겠어요.” 물론 푸하하하의 삶도 삼각형 동측 모서리에 날카롭게 기록됐다.
●사진 - 김용관 건축사진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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