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이 지나고 봄은 왔건만 겨울 날씨는 매섭기만 하다. 음력으로 입춘이었으니 앞으로 한 달은 지나야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지 않을까. 사계절이 없는 남쪽에 사는 사람들. 겨울추위는 잘 모를 것 같다. 추운 겨울이 있는 북부에 살던 노인네들. 일 년 내내 따뜻한 바람이 부는 곳을 찾아 이사를 가는 걸 많이 보게 된다.
나이가 들어 무릎이 저려오고 잘 못 걷게 된 어느 부부. 뉴욕에서 수십 년을 살다 은퇴 후, 애리조나 투산으로 이사를 갔다. 그곳에서 몇 년을 살더니 다시 더 좋은 곳이라며 샌디에고로 이사를 했다. 또 한 부부는 플로리다로 이사를 갔고 또 다른 부부는 애틀란타로 떠나갔다. 날씨가 추우면 마음도 추운건가 다들 떠나간다.
강원도 하면 감자로도 유명하고 또 추위로도 한 몫 한다. 특히 평창과 강릉을 가로지르는 대관령. 기상관측소가 30년 동안 측정한 통계에 의하면 겨울에는 가장 춥고 여름에는 가장 시원한 곳이 대관령이다. 대한민국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올림픽로 108-27. 제23회, 2018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가 자리 잡은 현주소다.
세계올림픽조직위원회가 평창을 택한 것도 가장 추운 곳에다 눈이 많이 내리기 때문이었으리라. 타임지는 이번 올림픽 중 평창의 기온은 영하 25도까지 떨어지기에 역대 가장 추운 올림픽이 될 것이라 전망한다. 추위가 경기의 변수가 될 수 있는 이번 올림픽. 그래서인지 미국은 특수 발열 재킷을 개발해 선수들에게 나눠주었단다.
영월과 평창은 바로 이웃에 있다. 아니, 붙어 있다. 평창에서 나고 자란 친구가 영월에서 나고 자란 친구에게 만날 때 마다 이런 말을 한다. “너는 내가 오줌 싼 물을 먹고 자랐다”고. 평창이 영월보다 훨씬 더 고지대라서 그렇다고. 영월과 평창. 강원도에서도 산간벽지에 속하는 곳. 단종 대왕의 능이 있는 영월은 평창보다 좀 괜찮았다.
평창. 이제는 전 세계인이 다 알게 된 너무나 유명한 명소가 돼버렸다. 평창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소설가 이효석. 대표작에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이 있다. 뇌척수막염으로 36세의 젊은 나이로, 단명했다. 경성제국대학을 졸업한 그였지만 가난한 작가였다. 중학시절의 선생이 취직자리를 알선해 주었다.
일제 치하 조선총독부 경무국 검열계. 문인들이 쓴 작품들을 사전에 검열하는 곳이다. 이효석의 직장이었다. 친구들이 비난하자 단 열흘 만에 직장을 차버리고 나왔다. 우직스럽고 고집스런 강원도 감자바위 같은 순수한 힘이 그에게도 있었나보다. 일제치하 당시 조선총독부 경무국을 우습게 알고 단번에 차버렸으니 그렇다.
땅과 하늘이 맞닿은 곳이라 불리는 평창. 고구려 때엔 ‘욱오현’이라 불렸고 고려 때 평창으로 바뀌어 원주에 귀속됐다. 현재 인구는 4만3000여명. 평창, 영월, 태백. 정선, 횡성이 합쳐져 국회의원 1명이 나온다. 이러니 이곳이 얼마나 인구가 적은 오지인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세계의 젊은 기운이 함께해 기량을 뽐내는 땅이 되었다.
1998년 개봉된 영화 <강원도의 힘>. 칸 영화제에 초청됐었고 청룡영화제 감독상, 각본상을 수상했다. 한국 영화 중 ‘가장 낯 설은 작품’이란 평을 들었다. 강원도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의 엇갈리는 행적이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어찌 보면 평범, 그 자체다. 그런데도 그 안엔 일상의 재발견이란 주제가 담겨 있다고 평가 된다.
그래, 강원도의 힘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강원도의 산과 들과 강 속에 숨어 있는 힘들은 세계의 기운을 모으고 있다. 세계뿐만이 아니다. 한 세기에 가깝게 원수처럼 지나던 남과 북의 기운을 하나로 모으고 있다. 모아진 기운이 악함과 정치적으로 이용당하지 않고 선함과 평화로움으로 뻗어져만 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피어나는 꽃들이 있다. 동백꽃, 수선화, 매화, 복수초 등. 한 겨울에도 푸른 잎의 나무들이 있다. 상록수와 소나무 등. 이런 꽃과 나무들처럼 겨울 같았던 한반도에도 통일의 꽃이 활짝 피어나기를 소원해본다. 주체사상과 공산주의가 아닌, 자유와 민주사상이 넘치는 통일의 꽃이. 평창의 기운이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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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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