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장르를 섭렵(?)하다보면 종종 오페라는 무엇인가… 의문의 벽에 부딪히게 될 때가 있곤하다. 복잡하다고나할까, 쉬운 말로 음악도 연극도 아닌 것이, 어렵기는 또 무지막지하게 어려워서 작곡하기에도 어렵고 공연하기에도 어려운 오페라를 왜 꼭 만들어야하는지…. 베토벤 또한 오페라(피델리오) 에서 참패를 경험하게 되는데 음악의 열정도 높고 작품(원작)이 후진 것도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오페라란 생물은 음악과 극을 조합해 놓고나면 묘하게 한 쪽이 일그러지는 것이 통례이곤 했다. 그러므로해서 (오페라는)흥행에도 실패하고 작품성도 평가받지 못한 채 그늘에서 묻혀버린 작품들이 수없이 많았다.
아마 이 때문에… 오페라라고 하는, 다소 부르조아적이긴 하지만 또 한편으론 사람들의 사치 심리라고나할까, 어떤 권위성을 내세우는데 있어 적격인 장르도 없었는지도 몰랐다. 이집트 정부가 ‘아이다’ 라는 오페라를 내세워 전세계 사람들에게 수에즈 운하라고 하는 그들의 역사적인 국책 사업을 세계 만방에 알리는데 이용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찾아 볼 수 있겠지만 사실 이 작품은 제 아무리 유명한 베르디라해도 처음부터 수락하기가 그렇게 만만한 작품은 아니었다.
개런티로 15만 프랑을 선불 지급했는데(이 정도면 베르디가 평생 먹고 살고도 남을 만한 거액이었다) 그러나 꼭 히트를 쳐야하는 상황에서, 스트레스 속에서 작곡해야한다는 조건을 감안하면 베르디로서도 그렇게 만만한 작업은 아니었을 것이란 추측이다. 이집트 국왕 등의 간곡한 부탁으로 마지 못해 수락한 작품은 그 결과 만루 홈런은 아니었지만 홈런을 치게 됐는데 그것은 순 음악적인 이유 때문만이 아니라, 무대적인 화려함이 한 몫했다는 것이 ‘아이다’ 의 아이러니기도했다.
오페라는 만들기도 힘들지만 또한 ‘오페라란 무엇인가’ 에 대해 쓰기에도 만만치않다. 누가 언제 무엇을 어떻게 만들었느냐 따위의 이야기는 읽는 사람도 식상하고 쓰는 자신도 따분할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오페라의 내용이 궁금하다면 인터넷 등으로 찾아보면 되겠지만 지난 해 초, 런던 데카에서 녹음한 오페라 아리아 100곡 시리즈를 구입해서 약 50여 차례를 돌려 들은 적이 있었다.
한 차례 듣는데 8시간이 걸린다고치면 무려 400시간… 즉 20여일을 밤낮 들은 셈인데, 참 좋아서 가능한 일이었지 억지로는 못 할 일이었다. 들을 때 마다 새롭고 또 운전하면서 들었기 때문에 특별히 지루한 줄 모르고 들을 수 있었지만 이상한 것은 아무리 들어도 어떤 시상이나 한 줄의 영감도 떠오르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즉 좋긴 좋은데 딱히 무엇이 좋은지를 표현할 수 있는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내린 결론은 자신컨데 ‘가장 지루한 얘기를 쓰려거든 오페라를 쓰라’ 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웬 또 오페라이야기?
사실 오페라는 인류가 만든 가장 도전적인 예술 중의 하나였다. 이 말은 철학자 니체가 (‘비극의 탄생’ 등에서) 거론한 말이기도 했는데 베르디는 이 위대하다는 오페라의 나라 이태리에서도 악신(樂神)으로 불리우는, 오페라의 거장이었다. 그에게 1860년도 말 수에즈 운하의 개통을 기념하는 오페라 개관을 위해 공연할 작품을 하나 써 달라는 의뢰가 들어왔다.
물론 베르디는 주문성 작품에 대한 부담감과 괜히 돈때문에 썼다가 체면구기는 일이 있을지몰라 처음엔 거절했지만 그러던 베르디가 아이다를 쓰게 된 것은 이집트 국왕 등의 간곡한 부탁때문이기도했지만 사실 엄청난 금액의 개런티도 거부하기 힘든 이유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
이후 베르디는 실질적으로 오페라쓰는 일에서 은퇴하게 되는데, 추후 30여년간은 놀면서 오델로, 팔스타프 등 2작품만을 남기게 된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아이다’는 초연부터 대단한 성공을 거두게 되는데 6개월 뒤 라 스칼라로 옮겨왔을 때는 베르디 자신이 총 지휘를 하여 다시한번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러나 이 오페라를 본 어느 관객이 음악적으로 크게 실망스러웠다는 의견을 써서 보내자 베르디는 (그답지 않게) 대노하여 당장에 입장료를 돌려보내 줬다고한다.
사실 ‘아이다’ 는 음악적으로 베르디의 그 다른 수작들… ‘리골레토’, ‘나부코’, ‘일트로바로레’ 등에 비해 그렇게 대단하다고 할 만한 것은 없었다. 그러나 극적으로 훓어볼 때 다소 허약한 아이다의 대본을 손에 쥔 베르디는 이 이야기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 극적인 약점을 극복할만한 비장의 무기가 있음을 예감하게 되는데 그것은 4막 중 2막(전 2막이 마치 행진곡 풍이다)의 하일라이트를 장식할 개선행진곡 부근이 가져다 줄 파급효과였다.
‘아이다’는 누가 뭐래도 2막 때문에 존재(먹고사는?)하는 오페라라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개선행진곡의 무대가 그만큼 화려하기 때문인데 이집트 초연 때는 황금관이나 코끼리 등이 동원되는 등… 무대예술의 규모에 있어서도 레벨이 따로 있음을 ‘아이다’ 는 보여주었다. 물론 ‘아이다’ 의 성공은 압도적인 무대외에 음악의 힘에 힘입은 바도 컸지만 ‘아이다’의 팡파레야말로 한 작품을 위한 승리의 팡파레이기에 앞서, (모든) 오페라를 위한 ( 마치 벼락처럼 닥진) 승리의 팡파레이자 감동의 팡파레이기도 했다. 이 오페라를 보고 감동하여 (오페라)작곡가가 된 사람이 바로 그 유명한 푸치니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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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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