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 창설자 빌 게이츠가 알츠하이머병의 원인과 치료법 연구를 위해 5,000만달러를 기부했다는 신문기사를 몇 달 전 읽었지만 별 감동이 없었다. 세계최고(현재는 2위) 갑부인 그의 통 큰 기부가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흘 전 한 TV 대담 프로에서 그가 밝힌 알츠하이머 기부금 총액이 처음보다 갑절로 늘어나 깜짝 놀랐다.
열두 자릿수 거액에 놀란 것이 아니다. 1억달러는 그의 전 재산 940억달러와 비교하면 새 발의 피다. 감동한 진짜 이유는 그의 기부금 증액이 효심의 발로였기 때문이다. 그는 아버지 빌 게이츠 시니어(92)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고 털어놓고 “나는 낙천가다. 기부금의 절반만 투입해도 10~15년 내에 치료약을 개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게이츠와 마이크로소프트를 공동 창업한 시애틀의 또 다른 갑부 폴 앨런도 알츠하이머에 한이 맺혔다. 그의 어머니가 알츠하이머로 고생하다가 죽었기 때문이다. 앨런은 2003년 막대한 돈을 풀어 ‘앨런 뇌 과학 연구소’를 세웠다. 워싱턴대학(UW)도 ‘뇌 과학 교육원’을 운영하고 있다. 변호사 출신인 게이츠 아버지는 생전에 UW 평의회 의장을 역임했다.
게이츠와 앨런이 알츠하이머 약 개발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는 자신들도 가족력 상 발병할 소지가 있다는 우려 때문일 수도 있다. 그들이 속한 베이비부머 세대들 중 알츠하이머 환자들이 폭증하고 있다. 65세 이상 미국인 10명 중 한명이 환자다. 이들이 80대 중반에 이르면 10명 중 5명꼴로 늘어난다. 알츠하이머는 미국인들의 6번째 큰 사망원인이다.
알츠하이머는 기억력 장애, 판단력 상실 등 정신기능을 전반적으로 망가뜨리는 노인성 치매질환 중 50% 이상을 차지한다. 알츠하이머 외에 혈관성 치매, 알코올성 치매, 파킨슨병 치매도 있다. 노화과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만 알 뿐 발병원인도, 치료방법도 모른다. 특히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누구에나 발병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두려워한다.
알츠하이머에 희생된 유명인사는 무척 많다. 찰턴 헤스턴, 제임스 스튜어트, 찰스 브론슨, 오마 샤리프, 로빈 윌리엄스 등 당대를 풍미한 영화배우들과 페리 코모, 글렌 캠벨, 조니 만 등 인기가수들, 그리고 풍속화가 노먼 록크웰도 환자였다. 특히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배리 골드워터 연방 상원의원, 마가렛 대처와 해롤드 윌슨 등 두 영국수상도 병을 피해가지 못했다.
레이건은 69세에 백악관 주인이 된 후 73세에 재선돼 역대 최고령 대통령이 됐다. 그가 임기 중 알츠하이머를 앓았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도널드 트럼프(71)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 74세로 최고령 대통령 기록을 깨게 된다. 그래선지 그의 언행과 판단력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실제로 그의 아버지 프레드 트럼프는 알츠하이머로 93세에 사망했다.
알츠하이머는 한국에서도 문제다. 매 15분마다 새로운 치매환자가 생긴다. 현재 환자 수는 50여만명이지만 20년마다 갑절씩 늘어나 2030년엔 100여만명을 헤아리게 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알츠하이머 환자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본국 관광공사 감사를 지낸 재미한인 코미디언 자니 윤씨도 치매에 걸려 LA의 한 요양병원에서 비참한 말년을 보내고 있다.
밤에 자다 깨기를 반복하며 숙면 못하고 낮에 찔끔찔끔 고양이 잠을 자면 알츠하이머에 걸릴 위험이 있다는 연구논문이 엿새 전 미국의학협회보에 발표됐다. 에어로빅댄스가 치매예방에 좋다는 세계보건기구(WHO) 보고서도 나왔다. 일본-호주 합동연구팀이 알츠하이머 유발 독성물질을 측정하는 혈액 테스트 방법을 창안했다는 보고서도 엊그제 발표됐다.
게이츠의 ‘효심 약’도 머지않은 듯싶다. 솔직히 나도 켕기는 구석이 있기는 하다. 오늘이 며칠인지 생각 안 날 때가 있다. 전화번호나 자동차 면허판 번호가 오락가락하기 일쑤다. 지난 주말 무슨 칼럼을 썼고, 어느 산에 올랐는지 깜깜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이는 건망증일 것이라고 자위한다. 치매라면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 자체를 모를 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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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시애틀 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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