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에서 영원으로. 한 사람이 생을 사는 것은 순간순간을 살아가는 거다. 그러다 생을 다하면 영원 속으로 들어간다. 육신이든 영혼이든 마찬가지. 육신은 죽으면 땅속에서 땅과 함께 영원히. 화장하여 재를 뿌리면 공기와 함께 영원히. 납골당에 안치되면 납골당에서 영원히. 강물에 뿌려지면 물과 함께 영원히 흐르게 된다.
집 가까운 곳에 규모가 꽤나 큰 공원묘지가 있다. 산책로로 이곳을 택하기도 한다. 가톨릭계통의 묘지인지 기독교용어로 새겨진 묘비도 많이 보인다. 제일 많은 묘비문은 ‘Rest in Peace'(평안히 쉬소서)이다. 생을 마친 후 이곳에 누워 있는 사람들. 순간순간의 생에서 벗어나 영원 속에서 편안히 쉬고 있는 사람들이다.
생 자체는 태어남이다. 태어남이 없다면 생도 없다. 태어난다는 것은 사람과 다른 생물체에게도 적용된다. 아니,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 즉 새로 탄생하는 별에게도 해당된다. 이렇듯 우주 안에는 수많은 생명체가 태어났다 사라진다. 그런데 순간과 영원을 직시하며 사고하고 풀어보려고 하는 생명체는 사람, 인간만이 유일하다.
90년이 넘도록 생을 사시다 10년 전에 돌아가신 아내의 어머니. 화장을 했다. 한국에서 뿌리고 남은 유골 재를 미국으로 가져왔다. 산에 가서 뿌려야지 하면서 아직도 거실에 두고 10년을 함께 살아오고 있다. 순간순간의 시간을 90년 넘게 사신 분. 그분은 영원 속에 가셨을지 몰라도 아내와 나의 마음속에선 아직도 살아계신다.
물리적 시간 안에선 순간과 영원을 달리 해석할 수 있다. 순간이란 바로 과거가 되기 때문이요 영원이란 오지 않은 미래의 연속일 수 있기에 그렇다. 그러나 마음의 시간 속에선 순간과 영원은 둘이 아니요 하나로 풀이될 수 있다. 사람으로 태어나 어릴 적 가졌던 기억은 90이 되어도 마음속 시간에선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순간과 영원. 시간과 공간의 상관적 개념이다. 공간이 없다면 시간도 없게 된다. 공간이란 하나의 생명체가 태어난 위치가 된다. 위치는 흔적이요 실존이다. 흔적이 없는 곳에서 시간을 찾을 순 없다. 거기엔 무, 아무것도 없음만 있게 된다. 이렇게 풀이하면 시간과 공간은 살아있는 실존이요 순간과 영원도 살아있는 실체가 된다.
영원과 순간. 보이지 않는다. 시간과 공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실존하고 있다.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순간이 없는 영원. 영원이 없는 순간. 있을 수 없다. 둘은 하나다. 순간을 한 점이라 한다면 영원은 점들의 이어짐의 한 줄이다. 사람의 일생이란 이거다. 순간순간, 하루하루의 날들과 공간이 모며 집합으로 모여 나타난 상태다.
“오늘도 신비의 샘인 하루를 맞는다. 이 하루는 저 강물의 한 방울이/ 어느 산골짝 옹달샘에 이어져 있고/ 아득한 푸른 바다에 이어져 있듯/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다. 이렇듯 나의 오늘은 영원 속에 이어져/ 바로 시방 나는 그 영원을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죽고 나서부터가 아니라/ 오늘서부터 영원을 살아야 하고/ 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을 비운 삶을 살아야 한다.”
구상 시인의 시, ‘오늘’ 전문이다. 강물의 한 방울이 산골짝 옹달샘과 푸른 바다에 이어져 있듯이 우리네 생의 순간순간 하루하루도 영원 속에 이어져있음에야. 그래서 영원에 합당한 삶, 즉 마음을 비우며 살자고 구상시인은 말한다.
마음이 가난한 삶, 마음이 비워진 삶은 어떤 생일까. 아마도 욕심이 없는 생이 아닐까. 욕심. 좋은 욕심과 나쁜 욕심이 있다. 이웃을 사랑하려고 하는 좋은 욕심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러나 이웃을 해치려고 하며 자신만을 위해 살려고 하는 나쁜 욕심은 없으면 없을수록 좋다. 순간순간을 좋은 욕심으로 살아보려면 어떨까.
영혼불멸을 믿는 종교에선 순간순간을 착하게 살아야 함을 강조한다. 그래야 죽은 다음에 영혼이 영원히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가르친다. 순간과 영원을 직시하며 살아가고 있는 유일의 생명체인 인간. 하늘이 사람에게만 내린 복인 것만 같다. 영원에 합당한 오늘을 살아가는 지혜를 필요로 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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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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