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키디데스는 ‘진짜 역사의 아버지’로 불린다. ‘역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헤로도투스가 전설과 소문이 뒤섞인 이야기를 쓴 반면 투키디데스는 증거와 증언에 기초한 역사책을 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가 죽은 지 2,4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가장 위대한 역사가의 하나로 남아 있는 것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덕이다. 기원전 431년부터 404년까지 30년 가까이 계속된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 전쟁 기록인 이 책이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동감을 주는 것은 책의 저자가 한 때 아테네의 장군으로 전쟁에 참여해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직접 만나고 사건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스파르타의 공격을 받고 있던 암피폴리스라는 도시를 구하라는 명을 받고 출병하지만 그가 도착했을 때 이 도시는 이미 항복한 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해임된 후 추방당한다. 그 후 그는 그리스 전역을 떠돌며 자료를 수집해 책을 쓰다 완성하지 못한채 사망한다.
이 책은 단지 역사서일뿐 아니라 ‘현실주의 정치학’의 고전으로 지금도 대학과 군사 학교에서 연구되고 있다. 전쟁의 원인과 진행 과정은 물론 국가와 권력의 본질을 냉정하게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대 정치학의 창시자인 토마스 홉스는 이 책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 나머지 그리스어에서 영어로 직접 번역하기도 했다.
이 책에는 수많은 에피소드가 등장하지만 그 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은 ‘멜로스인과의 대화’라는 부분이다. 멜로스는 에게 해의 작은 섬이다. 이곳 사람들은 아테네나 스파르타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 중립국임을 선언한다. 그러나 이는 아테네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이 섬이 스파르타에게 점령당한다면 아테네의 존립이 위협받기 때문이다.
아테네는 대사를 보내 멜로스인들에게 자기 편이 돼 줄 것을 부탁하지만 멜로스인들은 자신들은 누구를 해친 적도 없고 전쟁에 휘말리기 싫다며 이를 거부하고 정의가 우리 편에 있기 때문에 하늘은 우리를 도울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아테네 측은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는 것은 정의가 아니라 힘이며 “강자는 원하는 것을 하고 약자는 당해야 하는 것을 당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며 “이 법칙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며 우리는 다만 이를 따를 뿐”이라고 말한다.
협상은 결렬되고 두 도시 국가간의 전쟁이 벌어지자 아테네는 압도적인 전력의 우세로 멜로스를 함락시킨다. 멜로스의 성인 남자들은 모두 살해되고 여성과 아동은 노예로 팔려가며 멜로스라는 나라는 허무하게 사라지고 만다.
북한은 29일 한밤중 일방적으로 금강산에서 하기로 돼 있던 합동 문화 예술 공연을 취소한다고 통보했다. 이번에는 친절하게 남쪽 언론이 자기네 행사를 모독했기 때문에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까지 곁들였다.
지난 번 현송월 일행 파견 취소 때는 역시 한밤중에 일방적으로 통고하면서 이유를 밝히지도 않았다. 그러다가는 또 느닷없이 파견 취소를 취소했다. 개인 간에도 한 번 한 약속을 일방적으로 뒤집는 것은 경우에 어긋나는 일이다. 뒤집은 약속을 또 뒤집고도 아무런 사과도, 양해도 없다.
북한이 이렇게 무례하게 계속 말을 뒤집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궁금한 사람은 투키디데스를 읽어보면 된다.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는 것은 강자의 특권이고 당해야 하는 것을 묵묵히 당하는 것은 약자의 숙명이다. 북한은 이번 협상을 통해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이며 누가 한반도의 운전석에 앉아 있는 지를 분명히 보여주기로 작심한 것이다.
출범 초부터 남북 대화에 목을 맨 문재인 정부는 북한이 어떻게 나와도 ‘노’라고 말할 수 없는 입장이다. 남북 관계 파탄의 책임을 이명박 박근혜 탓으로 돌려왔는데 자신도 똑같은 책임을 뒤집어 쓸 수는 없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 말대로 북한이 뛰라면 “얼마나 높이요”라고 물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북한은 망해가는 평창을 자신들이 구해줬다고 허위 사실을 유포하며 기고만장이지만 문재인을 모욕한 댓글과 포탈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추미애는 쥐죽은듯 조용하다.
투키디데스는 “자신에게 잘 해주는 사람을 경멸하고 양보하지 않는 사람을 우러러 보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말도 했다. 책 읽기를 좋아한다는 문재인에게 투키디데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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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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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의 (시국아리랑)과 벌레소년의 (평창유감) 노래가 유행인데 들어보니 우울한 고국소식에 조금은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라 추천합니다.
오 재앙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