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수백만명의 다른 지구촌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트럼프가 ‘대단히 안정적인 천재’라는 사실을 전해 듣고 안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만약 그가 안정적인 천재가 아니라 변덕스럽고, 뒤끝이 있으며, 아는 게 없고, 게으를 뿐 아니라 독재자인 양 처신하는 인물이라면 당장 우리가 심각한 지경에 처하게 된다.
우리 정직해지자. 미국이라는 위대한 나라를 이끈 지도자들 가운데는 평범한 능력에, 성격마저 좋지 않은 인물들이 더러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전반적으로 미국에 큰 해를 끼치지는 않았다.
첫째 이유는 무능한 2급 대통령이라 해도 대부분의 경우 유능한 특급 공무원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건국 이후 역대 재무부 장관들의 예를 들어보자. 물론 재무부장관직을 수행한 인물들 모두가 알렉산더 해밀턴처럼 유능하지는 않았지만 전반적으로 충분한 자격을 갖춘 인물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이 같은 사실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퇴임 후 5년 만에 알츠하이머 확진판정을 받은 로널드 레이건이 집권 2기 중 이미 인지력 저하 징후를 보였는지 여부가 지금까지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러나 제임스 베이커가 재무부를, 조지 슐츠가 국무부를 능숙하고 원활하게 관리하고 있었던 상황이라 미국민은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사람들의 자격에 관해 달리 의구심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둘째로 미국의 견제와 균형 시스템이 법치주의를 무시하고 직위를 남용하려는 유혹으로부터 대통령을 철저히 제어했다. 비평가들을 감옥에 처넣고, 직위를 이용해 부를 축적하고 싶어 했던 대통령이 전혀 없었다고 단언할 수야 없지만, 그들 중 누구도 사적인 욕심을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건 그 때의 일이다. 대단히 안정적인 천재 통수권자 아래서 예전의 룰은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 V.S.G.(대단히 안정적인 천재)는 백악관에 입주할 때 최악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는 기이한 부하들을 줄줄이 데리고 들어왔는데 이들 중 마이클 플린을 비롯한 일부는 이미 퇴출됐다.
플린은 당시 외국정부와의 내통을 둘러싸고 의문이 증폭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에 의해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임명됐다. 그는 지난달 러시아 유착설과 관련, 연방수사국(FBI)에 거짓 진술을 한 혐의를 시인한 바 있다.
트럼프의 또 다른 측근이었던 톰 프라이스 보건후생부장관도 값비싼 전세기 여행에 거의 중독 증세를 보이다가 임기초반에 강제 하차를 당했다.
스티브 므누신 재무장관은 죽은 해밀턴이 영면에 들지 못한 채 관 속에서 뒤척이게끔 만들 인물이다. 이들보다 낮은 직위에 임용된 트럼프의 불량스런 따라지들은 대중의 레이더망에는 잡히지 않는다. 자신의 이력을 속인 인디언보호구역 보건부 장관 지명자의 경우처럼 우리는 간간이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통해 트럼프 행정부가 얼마나 형편없는지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보건후생부 대변인은 토네이도가 장관 후보자의 취업기록을 완전히 파괴해버렸다고 말했다.)
부적격자들이 줄줄이 트럼프 행정부에 입성하고 있는 반면 적격자들은 앞 다퉈 그곳에서 도망치고 있다. 먼저 국무부의 고참 직원들이 대거 엑소더스를 감행했다. 이보다 한층 더 우려스러운 일은 국가안보국(NSA)에서도 비슷한 규모의 엑소더스가 일어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지 1년 만에 우리는 역대 최악의 관리들과 최고의 멍청이들로 짜여진 정부를 맞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고 지도자가 똑똑하다는 것은 대단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 그렇다면 대통령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견제장치는 제대로 작동되고 있을까?
아이구, 견제와 균형이라니 그거 너무 70년대식 아닌가?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졌을 당시 공화당 사람들은 대통령의 범법 행동에 우려를 표시했지만 오늘날의 공화당원들은 V.S.G.가 하고자 하는 일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그의 특권을 보호하는 것이 그들이 담당해야 할 의무 가운데 하나라는 확실한 견해를 갖고 있다. .
나는 마이클 울프가 새로운 책을 통해 폭로한 내용에 그다지 충격을 받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다. 책에 등장하는 내용은 이미 보토를 통해 알려진 백악관 내부의 사실들을 확인해준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지난주에 나온 가장 중요한 뉴스는 의회의 공화당 지도부가 사법방해에 공공연하게 개입하려든다는 시사다. 지금까지 러시아의 미국 대선방해를 조사하려는 법무부의 시도에 훼방을 놓은 데빈 넌스처럼 사실 은폐를 지지하는 의원들이 각자 개인적 판단을 따라 행동하는 것인지 여부는 분명치 않았다.
그러나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지금 넌스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사법방해를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동시에 두 명의 공화당 상원의원은 양원 의원들 가운데 처음으로 러시아의 선거개입에 연루된 사람들을 형사고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그 대상은 적대국과 내통한 트럼프의 측근들이 아니라 트럼프와 러시아 사이의 유착을 보여주는 문서철을 준비했던 영국의 전직 첩보원이었다.
다시 말해 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트럼프가 대통령직에 적합한지 의문을 표시하고 있지만 그를 제어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그를 법의 지배 위에 올려놓는 데에 ‘올인’ 하고 있다.
이제까지 미국 정치규범의 내파는 미국인의 일상생활에 거의 눈에 뜨일만한 영향을 주지 않았다.(만약 당신이 연방정부의 부적적한 대응 탓에 아직도 전기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리는 푸에르토리코의 허리케인 이재민이 아니라면 말이다.)
대통령은 매일 TV시청과 분노의 트윗팅으로 아침시간을 보낸다. 트럼프는 정부의 역량을 박살냈고 공화당은 그가 적대국과 내통했는지 여부를 미국민이 아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럼에도 주가는 올랐고, 미국 경제는 성장하고 있으며 새로운 전쟁에 빨려 들어가지도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트럼프 행정부의 초반기에 불과하다. 우리는 200여년에 걸쳐 이 위대한 국가를 건설했다. 제 아무리 ‘대단히 안정된 천재’라 해도 미국을 완전히 망쳐 놓기까지는 2~3년의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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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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