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유대인 나오미와 두 모압 며느리 얘기(룻기)가 나온다. 모두 과부다. 생계가 막막해진 나오미가 가나안으로 역이민 간다. 며느리 중 룻(Ruth)은 시어머니를 따라 유다로 이민 가 하나님을 섬기지만 동서 오르바(Orpah)는 눌러앉는다. 룻은 그 후 귀인 보아스와 재혼하고 다윗의 증조모가 돼 결과적으로 예수의 족보에 이름을 올리는 영광을 얻는다.
오르바는 ‘행불’이다. 그 후 성경에 언급이 없다. 하지만 사람팔자 시간문제다. 그로부터 장장 2,600여년 뒤 현세의 가나안으로 불리는 미국에 그녀의 이름을 딴 여걸이 탄생해 차기 대통령 자리를 넘보고 있다. 오프라 윈프리가 주인공이다. 출생증명서에 기록된 그녀의 본명은 ‘오르파(Orpah)’지만 모든 사람이 ‘오프라’라고 부른 탓에 ‘Oprah’로 굳어졌다.
지난 7일 골든 글로브상 시상식에서 평생업적상인 세실 B. 데밀 상을 받은 오프라가 인종적, 성적 불평등에서부터 ‘#Me Too’(성희롱 피해여성 고발 캠페인)와 언론자유의 중요성에 이르기까지 짧고도 강력한 연설을 사자후로 토해내자 그녀를 2020년 대통령선거에서 트럼프에 맞설 민주당 대항마로 내세우자는 목소리가 소셜미디어에 봇물을 이루고 있다.
오프라 본인은 대통령 출마여부를 직접 밝히지 않았지만 가까운 친구들은 그녀가 기필코 출마할 것이라고 장담한다. 오프라는 작년 CBS와의 대담에서 “나는 공직에 결코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2020년 민주당의 최고희망: 오프라”라는 보수논객 존 파드호렛츠의 칼럼이 작년 9월 뉴욕 포스트지에 게재되자 그녀는 이를 즉각 리트윗 했다.
골든 글로브 시상식 연설에서 오프라가 “새 날이 지평선에 뜨고 있다”며 낙관적으로 결론 내린 점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지난 2004년 민주당 전국대회에서 희망적 연설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버락 오바마 당시 연방 상원의원(일리노이)이 4년 뒤 2008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지명돼 공화당의 존 매케인 후보를 꺾고 당선된 것과 비교된다는 것이다.
오프라가 희대의 여걸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토크쇼의 여왕’으로 불리는 그녀는 배우, 제작자, 사업가, 자선가로도 입신했다. 총재산이 28억 달러로 추정된다. 미국최초의 억만장자 흑인이자 최고 갑부 흑인이며 미국 역사상 손이 가장 큰 흑인 자선사업가로 꼽힌다. 오바마 대통령에게서 자유훈장을, 하버드와 듀크 대학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각각 받았다.
오프라는 영향력이 가장 큰 현세대 인물이기도 하다. 그녀가 ‘오프라 윈프리 쇼’의 북 클럽에서 소개한 책들은 모조리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광우병 소동이 한창이었던 1996년 쇼에서 그녀가 “햄버거도 겁나서 못 먹겠다”고 말한 후 쇠고기 매출이 떨어졌다며 텍사스 축산업자들이 1,100만 달러 배상소송을 냈다. 2개월 걸린 재판 끝에 그녀가 승소했다.
연예인 출신 정치인은 여럿 있다. 트럼프도 한 다리 끼지만 최고성공 사례는 단연 로널드 레이건이다. 배우로는 2급이었지만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대통령 직(40대)을 연임했다. 냉전시대의 막을 내린 위인 급 대통령으로 꼽힌다. 오스트리아 이민자인 아놀드 스와제네거는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연임했고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캘리포니아, 카멜 시장을 지냈다.
오프라의 대통령 당선 가능성은 높다. 하지만 말리고 싶다. 거목은 바람을 많이 맞는다. 캠페인 과정에서 완전히 발가벗겨진다. 그녀가 설립한 남아공 소녀원의 허위 성추행 소동이 문제될 수 있고, 자신도 모르는 탈세가 드러날 수도 있다. 벌써부터 인터넷에는 그녀가 ‘#Me Too’의 원인제공자인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 뺨에 키스한 사진이 나돌고 있다.
오프라는 이미 대통령 못지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 영향력을 킹이 아닌 킹메이커로 사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리얼리티 쇼 진행자와 토크쇼 진행자가 맞붙는 말싸움은 상상만 해도 어지럽다. 새로운 문외한 대통령을 맞기보다는 4년간 시행착오를 거친 문외한을 놔두는 게 나을 수 있다. 오프라도 ‘오르바’로 되돌아가는 위기를 자초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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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시애틀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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