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친이 지었던 옛집 배치 그대로, 정원 마주보고 좌우에 인왕ㆍ북악산
▶ 세월의 녹이 묻어나는 벽돌과 그 벽돌에 가장 어울리는 아치…
서울 종로구 청운동 주택은 이 동네에서 평생을 산 한 노학자의 집이다. 내년에 정년퇴임을 앞둔 그는 부친이 돌아가신 뒤 60년 가까이 산 집을 허물고 다시 집을 지었다. <신경섭 건축사진작가 제공>
마당을 향해 난 아치형 창문과 식당과 거실을 나누는 콘크리트 아치.
길 쪽에서 본 청운동 주택. 모든 창이 정원을 향해 나 있어 닫힌 느낌을 줄까 봐 길쪽으로 아치형 창문을 만들었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머리 위 원통형 아치와 거실의 콘크리트 아치, 식당의 아치형 창문 등 3개의 아치와 만난다.
3층 계단실의아치형 창문. 집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이들에게 선물하는 마지막 하이라이트 장면이다.
정주(定住). 한 곳에 자리를 잡고 평생 동안 사는 일은, 2년 단위 삶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이제 낯선 것이 되었다.
서울 종로구 자하문 터널 인근 청운동 주택은 이 동네에서 평생을 산 한 교수의 집이다. 아버지는 그가 중학생 때 현재의 땅에 집을 지었고 그는 이 집에서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를 맞았다. 내년 정년퇴임을 앞둔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 자리에 다시 집을 지었다. 집의 외관과 내부 구조는 달라졌지만 배치는 옛집 그대로다.
아치, 벽돌이 꾸는 꿈
60년 가까이 산 집을 허물면서 건축가에게 가장 먼저 한 말은 “예전의 마당을 그대로 쓰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전 집에 큰 마당이 있었어요. 아버지께서 정원 가꾸는 걸 즐겨 하셨고 저도 손에 흙 묻히는 걸 좋아합니다. 나이 들면 아파트에서 살아야 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지만, 2층 제 방에서 내려다보던 마당을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어요.”
설계를 맡은 김현대(테크토닉 랩)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는 땅 위에 옛집 배치 그대로 집을 앉혔다. 남쪽에 너른 정원을 마주한 채 북동쪽으로 북악산을 가까이, 남서쪽으론 인왕산을 멀리 바라보는 모양새다. 그러나 계승하는 것만으론 충분치 않았다. 은퇴 후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아갈 건축주에겐 지난 시간을 간직하면서 새로운 시간을 맞을 준비가 된 집이 필요했다. 건축가는 그 재료로 벽돌을 택했다. 이 집의 핵심을 이루는 아치도 여기에서 시작됐다.
“전 이 집이 세월의 녹이 묻어나는 품위 있는 집이 됐으면 했습니다. 거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게 고벽돌이라고 생각했어요. 아치를 사용할 생각을 한 것도 벽돌에서 제일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형태를 고민하다가 나온 결론입니다.”
그는 미국의 건축가 루이스 칸이 한 말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했다. ‘건물은 무엇이 되기를 원하는가’란 질문에 평생 천착했던 칸은 ‘벽돌에게 뭐가 되고 싶냐고 묻는다면 “아치가 되고 싶다”고 할 것’이란 장난스러운 얘기를 여러 강연에서 한 적이 있다.
가장 오래된 건축 양식 중 하나인 아치는 많은 고전이 그렇듯 기능으로 출발해 장식으로 남았다. 지금은 지하철역사에서도 아치를 흔하게 볼 수 있지만 과거 위대한 건축물들에 사용됐던 아치의 위용은 여전히 우리의 머릿속에 남아 있고, 그래서 아치는 아직도 낯설고 생경하다. 건축가는 이 낯선 양식을 외부뿐 아니라 집 내부까지 끌어들였다.
현관에 들어선 이들은 동시에 3개의 아치와 마주한다. 마당을 향해 난 아치형 창문, 거실과 식당 사이의 콘크리트 아치, 그리고 머리 위의 볼트(반원통형의 천장)다. 진입과 동시에 웅장한 아치 구조물들과 대면하는 압도적인 경험을 위해 건축가는 현관-거실-식당-마당으로 이어지는 동선을 일직선으로 짰다.
이중 정점을 찍는 건 거실의 콘크리트 아치다. 천장을 튼 2층 높이의 거실을 온통 감싼 콘크리트는 천근 같은 중량감으로 지난 세월의 무게를 대신 한다. 작은 성소에 들어선 듯 입을 다물게 되지만 거실 벽을 부드럽게 감싸는 곡면이 긴장을 풀어준다.
“아치는 조적문화 중심의 서양에서 주로 발달했지만 동양, 특히 우리나라에서도 꾸준히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아치에는 수천 년의 역사성에서 오는 편안함이 있어요. 집의 내부에 콘크리트 아치를 둠으로써 몇 백 년 뒤에도 그 자리에 있는, 지속적인 삶터를 상징하는 집의 원형이 됐으면 했습니다.”
지속적인 삶을 약속하는 집
콘크리트를 톱으로 잘라낸 것처럼 보이는 아치는 실은 수작업에 가까운 노동의 결과다. 기존 거푸집으론 작업이 불가능해 아치의 형태를 따라 굴곡 있는 거푸집 여러 개를 제작해 연결하는 식으로 작업을 했다. 웅장하되 상업공간의 노출 콘크리트처럼 거친 느낌이 나지 않도록 윤활제를 써서 최대한 표면을 평활하게 만들었다.
고운 모래색의 콘크리트 벽은 내부에 떨어지는 자연광과 만나 한층 온화해진다. 건축가는 3층부터 1층을 관통하는 일종의 ‘빛 굴뚝’을 만들어 햇볕이 흰 벽에 부닥치며 온 집 안을 은은히 밝히도록 했다. “천창에서 직사광선이 떨어지면 여름에 너무 더울 수 있어요. 천창의 한쪽을 기울여 볕이 비껴 들어오며 반사돼 퍼지도록 했습니다.”
1층과 2층으로 필요한 공간은 모두 충족됐지만 건축가는 3층에 작은 방을 하나 더 만들었다. 선박의 꼭대기 선실처럼 옥상 한가운데 자리한 3층 방은, 이전 집에서 옥상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건축주를 위한 곳이다. “옥상에서 북악산 보는 걸 좋아했는데 신발을 갖고 올라가는 게 생각보다 번거로워 잘 안 쓰게 되더라고요. 겨울엔 너무 춥기도 하고요. 옥상에 작은 실내 공간이 있어서 바로 나가면 얼마나 편할까 늘 생각했어요.”
3층 방을 나와 옥상 베란다에 서면 북악산이 코 앞이다. 어느 한 지점에 서면 우로 북악산, 좌로 인왕산이 동시에 들어오기도 한다. 이 집에서 최고의 전망을 자랑하는 3층엔 마지막 하이라이트가 숨어 있다. 산세에 감탄한 뒤 돌아 내려오는 길에 계단에서 마주하는 거대한 아치 창문이다. 건축가는 계단실 천장을 약간 위로 들쳐 올려 사람들이 계단을 오를 때는 창문의 존재를 잘 인식할 수 없게 하는 위트를 발휘했다. “이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3층은 마지막 코스잖아요. 돌아가는 길에 한번 더 감동을 주고 싶었습니다.”
건축주는 새로운 집이 사람과 식물로 가득하길 꿈꾸고 있다. 물론 가장 큰 관심사는 다가올 봄이다. 여름에 입주했기 때문에 내년에 맞는 봄이 첫 봄이 된다. “은퇴를 하면 사회와 갑자기 단절이 되잖아요. 이 집이 찾아오는 사람에게 위로가 되는 공간이면 좋겠어요. 저도 이 집을 충분히 누리기 위해 느리게 사는 법을 연습 중입니다.”
<신경섭 건축사진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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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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