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욱 스탠포드대 아시아태평양 연구소 소장
서울을 방문할 때 주로 이용하는 레지던스 호텔이 일본 대사관과 연합뉴스 건물 옆에 있어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위안부 소녀상을 지키는 젊은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더운 여름에도 추운 겨울에도 텐트를 치고 합숙을 하며 365일 24시간 소녀상 지킴이 노릇을 하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인상적이다.
위안부는 일제 강점기의 우리 민족의 비극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다. 강제로 끌려갔던 속아서 따라 갔던 꽂 다운 나이에 일본 군인들의 성노예가 되었던 위안부는 적게는 8만 명에서 많게는 20만 명까지로 추산되는데 그 중 단 243명만이 위안부 피해자로 정부에 등록되어 있고 그 중 생존자는 31명뿐이다. 생존 피해자 수는 더욱 급격히 줄어들겠지만 그간 정부와 시민단체의 여러 노력들이 이들의 한을 풀어주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이다.
물론 그 일차적인 책임은 일본에 있지만 한국정부와 언론도 위안부 문제를 국내 정치에 이용한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한일 간의 과거사 문제는 여러 영역에 걸친 복잡한 사안이지만 그 중에서도 위안부 문제는 정치적으로 가장 폭발력이 크다 보니 그동안 국내 정치에 활용되거나 한일관계의 지렛대로 쓰여 왔고 언론 또한 이에 편승해왔다.
전임 박근혜 정부의 경우 임기 첫 3년 동안 위안부 문제 해결을 한일관계 개선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우다 2015년 말 다급하게 ‘불가역적인’ 합의를 했고, 문재인 정부는 민간인 태스크포스를 가동해가면서 이를 비판하였지만 결국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어정쩡하게 봉합해 버리고 말았다. 한국정부가 발표한 6가지 기본처리 방향은 명확한 해결책이나 설명은 빠진 채 ‘일본정부의 자발적이고 진정한 사과 촉구’ ‘일본정부가 출연한 화해와 치유재단 기금 10억 엔은 우리 정부 예산으로 충당’ 등에 그치고 말았다.
위안부 문제를 더 이상 국내 정치에 이용하거나 한일관계의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피해자 중심의 접근을 강조하지만 사실 대다수의 위안부 할머니들이 2015년 합의에 따른 보상을 받아들이기도 했고 또 외교에는 상대가 있는 만큼 전임 정부의 결정을 무효화 하는듯한 행동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일본정부가 지불한 10억 엔의 보상금만 해도 만족할만한 액수는 아니더라도 일본이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한 결과라 볼 수 있으므로 이를 거부하는 것이 좋을지는 곰곰이 따져볼 문제이다.
그동안 일본은 과거사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한국이 합의를 하고도 계속 새로운 이슈를 제기하며 이른바 ‘골 포스트를 옮긴다’고 비판해 왔는데 앞으로 국제사회에서는 이러한 일본의 주장이 더욱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위안부 문제를 정치적 논리와 이해에 따라 다루면 국내에서는 효용가치가 있을지 모르지만 미국 등 국제사회에서는 한국의 입지를 더욱 좁히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2015년 합의 자체를 파기하거나 재협상을 요구할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그 보다는 미진한 부분을 보완하는 ‘발전적 추가조치’를 협의하는 미래지향적 접근을 택했어야 했다. 중국의 부상과 북핵문제 등 동북아의 외교안보적 도전이 더욱 심해지는 현실을 감안할 때 한일관계가 더 이상 과거사 문제에 발목을 잡혀선 안된다. 외교적 관계와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는 분리하여 투 트랙으로 움직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은 이미 경험으로 입증된 바 있다.
그렇다고 위안부 문제를 경시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가 좀 더 보편적인 인권문제로 승화시켜야 한다. 성노예는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는 대표적인 인권유린 행위로서 과거뿐 아닌 현재의 문제이며 미래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를 이슈화하고 바로 잡는데 한국이 앞장 설 수 있고 그래야 한다. 그런 면에서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진행되고 있는 소녀상 건립은 성노예의 아픔을 인권유린의 차원에서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프로젝트로서 민간차원에서 지속할 필요가 있다.
이젠 위안부 할머니들을 국내 정치나 한일관계의 굴레로부터 놓아드릴 때가 되었다. 그들을 정치나 외교사안의 볼모로 잡기 보다는 그들의 아픔과 슬픔을 보편적인 인권문제로 승화시키는 것이 진정으로 그들을 위하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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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욱 스탠포드대 아시아태평양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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