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GPS’ 호스트 예일대 졸, 하버드대 정치학 박사
마이클 울프의 책을 둘러싼 화염과 분노는 백악관 내부의 인물들과 권력투쟁에 중심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 뒤에는 도널드 트럼프와 그의 전 수석 전략가였던 스티브 배넌이 갈라선 진짜 이유를 설명해주는 중요한 정치적 변동이 놓여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중주의(populism)를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대통령후보 시절의 트럼프를 기억하는가? 그의 대표 공약은 이민정책이었다. 그는 멕시코 장벽과 불법이민자 대거추방을 포함한 강경노선을 줄기차게 밀고나가겠노라 약속했다.
그의 “미국인 유권자와의 계약”은 중국에 대한 강경조치에서부터 수 조 달러에 달하는 공공사업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대중주의적 조치들로 가득 채워졌다.
경제 플랜은 중산층 가정에 대한 35%의 감세에서 부양자녀공제와 노인복지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중산층 유권자들을 겨냥한 것이었다.
그는 또 로비활동과 연방의원들의 임기를 엄격히 제한할 것을 촉구했다.
억만장자 금융업자 조지 소로스, 재닛 옐런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 골드만삭스 최고경영자(CEO)인 로이드 블랭크페인 등의 사진을 등장시킨 대선전 막바지 광고에서 트럼프는 음울한 목소리로 “미국 근로계층의 지갑을 털고, 국부를 빼돌려 몇 안 되는 대기업과 정치집단의 주머니에 찔러주는 경제적 결정을 내린 글로벌 권력구조(global power structures)에 엄중한 경고”를 날렸다.
여기서 오늘날의 트럼프로 순간이동을 해보자.
국경장벽은 아직도 서지 않았고 대통령은 추방을 공언했던 수백만 명의 불법체류 어린이들에게 시민권 획득의 길을 열어줄 “사랑의 법”에 관해 이야기한다.
중국과의 관계는 대단히 다정하고, 대선전에서 맹공을 가했던 또 다른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경제 프로그램의 주안점은 엄청난 액수의 돈을 대기업들에게 돌려준다는 것이었다. 그가 서명한 감세법의 주된 수혜 대상이 바로 이들 대기업과 최고소득세율을 적용받는 부유층이었다.
그리고 이같은 경제정책은 골드만삭스 시절 블랭크페인의 오른 팔이었던 개리 콘과 골드만의 전 파트너 스티븐 므누신이 설계하고 시행했다.
트럼프 행정부 초기의 몇 달간 백악관 내에 일어난 거대한 분열은 배넌과 재럿 쿠슈너의 성격차이에 따른 충돌이라든지 백악관에서 누가 뜨고 지는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중심이동이었다.
배넌은 공화당에 맞서 불같은 아웃사이더로 선거전을 이끌던 트럼프 후보가 정부를 통제할 권력의 고삐를 폴 라이언 하원의장과 미치 맥코넬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에게 헌납하는 믿지 못할 광경을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보았을 것이다.
울프의 책 ‘화염과 분노’에서 맥코넬은 “이번 대통령은 그의 앞에 놓인 것에 무조건 서명할 것”이라 말한 것으로 인용됐다.
지난주 트럼프가 배넌을 내치기 무섭게 맥코넬의 정책팀은 다수당 원내대표가 환하게 웃는 GIF파일을 트위터를 통해 내보냈다.
트럼프의 대중주의 시발점이 어디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얻으려면 가십으로 채워진 달달한 울프의 책보다 조슈아 그린의 품격 높은 저서 “악마의 흥정”(Devil‘s Bargain)을 읽어보아야 한다.
그 책에서 그린은 트럼프가 어느 특정한 방향으로 치우치지 않은 뒤죽박죽인 정치적 견해를 가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토크 라디오에 출연해 보수적 청중을 상대하기 시작하면서 트럼프는 군중을 흥분시키는 것은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 이민과 같은 사회적, 문화적 이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린에 따르면 트럼프는 애초 장벽 건설에 무관심했다. 그러나 그린은 트럼프의 선거 보좌관인 샘 넌버그를 인용, 2015년 1월 아이오와 프리덤 서밋에서 처음 국경장벽이라는 아이디어를 선보였을 때 “군중이 미친 듯 환호했다”고 밝혔다.
심오한 이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버락 오바마의 출생지 시비에서 보듯 윤리적 부담감조차 전혀 느끼지 않는 트럼프는 공화당 경선에 나선 16명의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 이런 이슈들을 훨씬 신속하게 자신의 공약으로 채택할 수 있었다.
그는 초강경 노선을 취함으로써 차별화를 시도했고 결국 공화당 지지기반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여기에 컬러풀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스타일이 보태지면서 그는 자신과 공화당의 새로운 지지층인 백인 근로계층 사이에 현재로선 도저히 끊을 수 없을 듯 보이는 강력한 유대를 만들어냈다.
나는 스티브 배넌이 쏟아낸 숱한 제안에 대부분 동의하지 않지만 그가 미국의 광범위한 지역을 휩쓴 대중주의자들의 분노를 제대로 알아보았다는 점은 인정한다.
시간이 흘러 트럼프를 지지한 유권자들이 그들이 당초 상상했던 것과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온 사실을 뒤늦게 알았을 때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지 궁금하다.
대통령 인수위시절, 배넌은 울프에게 트럼프의 시대는 블루칼러 근로자들을 조선소와 방직공장, 광산 등지로 되돌려 보내는 방대한 공공사업 프로그램이 시행되는 등 1930년대의 미국을 방불케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고삐 풀린 자본주의, 현기증 나는 시장성장, 위축된 정부와 극적으로 팽창한 불평등의 시대인 1920년대의 미국으로 돌아가는 듯이 보인다.
과연 이것이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오하이오 주의 해고된 철강근로자들이 원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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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GPS’ 호스트 예일대 졸, 하버드대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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